‘2015 KEB하나은행 FA컵’은 FC서울의 차지였다. 서울은 31일 오후 자신들의 홈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인천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2015년 대한민국 최고 클럽의 자리에 올랐다. 최용수 감독과 주장 차두리의 3년 간의 동행이 우승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차두리가 합류한 뒤 매년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지만 앞선 두 차례 도전에서 모두 실패했던 서울은 2전 3기의 정신으로 결국 정상에 올랐다. 최용수 감독은 지난해 결승전의 실패를 만회하며 2012년 K리그 우승 이후 감독 커리어에서 두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시즌 중 중국 슈퍼리그 장쑤 순톈이 제시한 거액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팀에 잔류한 그가 지도력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셀틱 시절 유럽에서 두 차례 우승을 경험한 차두리는 프로 선수 커리어 세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올해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차두리에겐 서울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기도 했다. 경기 종료 직후 눈물을 왈칵 쏟아 낸 차두리는 주장의 자격으로서 가장 먼저 트로피를 받아 번쩍 들어올렸다.
지난해 말 서울과 1년 재계약을 하면서 일찌감치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차두리는 시즌 중 주장 역할까지 맡았다. 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특유의 인화력과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지난 한달 간은 발바닥 통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자신에게 온 마지막 우승 기회를 잡기 위해 진통제를 먹어가며 참고 버텼다. 그 인내의 끝에서 만난 것은 우승이라는 선물이었다. 자신이 직접 설득해서 영입, 떠나는 순간 멋진 마무리를 만들어 낸 최용수 감독은 차두리에게 “후배지만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친구다. 차두리의 축구는 오늘이 끝이 아니다.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이다. 새로운 축구 인생의 시작이 오늘이 되길 기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 결승전은 선수 차두리의 마지막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 차두리 자신도 “오늘 우승으로 동기부여가 사라졌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한 해기 때문에 잔여 경기는 뛰지 않는 것을 생각 중이다. 팀에게도 그게 더 나을 것이다”라며 진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떠나는 차두리는 스포트라이트가 자신과 경기를 뛴 11명에게만 쏟아지지 않길 바라는 바람도 남겼다.
서울의 결승전 상대였던 시민구단 인천의 도전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에 일방적인 공세 속에 다카하기의 선제골이 터질 때만 해도 서울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후반 초반 김도훈 감독의 과감한 교체 전략은 이효균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기세를 탄 인천의 대반격이 펼쳐졌다. 승부를 가른 것은 서울의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아드리아노가 후반 42분 결승골을, 몰리나가 추가시간 돌입 직후 쐐기골을 넣으며 서울에게 승리를 안겼다. 결승전에서의 2골 차 승리는 2008년(우승 포항) 이후 7년 만이고, 총 4골이 터진 결승전도 2007년(우승 전남) 이후 8년 만이다.
인천은 서울로부터 이적할 당시 계약 사항으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김동석과 김원식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김도혁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박세직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웠다. 서울은 최근 선수 구성과 달리 오스마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고, 박용우를 다시 쓰리백 중앙으로 내렸다. 최용수 감독은 “오스마르로 하여금 케빈을 앞에서부터 저지하고자 했다”며 그 의도를 설명했다. 전반 시작 후 10분까지 양팀 모두 슈팅을 기록하지 못한 채 상대 공격의 진격을 막기 위해 터프한 수비를 이어갔다. 전반 13분 서울 수비를 힘으로 밀어내고 날린 케빈의 슛으로 처음 의미 있는 공격이 나왔다. 서울도 곧바로 윤일록의 중거리슛으로 응수했다.
전반 22분 서울에게 첫 득점 기회가 왔다. 몰리나의 월패스를 받은 윤일록이 올려준 크로스를 아드리아노가 문전으로 쇄도해 슛으로 연결했다. 하지만 유현의 선방으로 인천은 위기를 넘겼다. 기세를 탄 서울은 공격 템포를 올리며 인천을 계속 위협했다. 2분 뒤에는 윤일록의 과감한 중거리슛을 유현이 몸을 날려 막아냈다.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다카하기가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했지만 공은 크로스바 위를 살짝 넘어갔다. 28분에는 몰리나의 왼발 프리킥이 큰 호를 그리며 감겨 들어왔지만 유현이 다시 한번 막아냈다.
결국 서울의 세찬 공격은 전반 33분 인천의 골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이웅희로부터 넘어 온 패스를 윤일록이 중앙으로 내줬고 다카하기가 달려들며 오른발 발리로 때린 공이 감겨져 들어가다 골문 앞에서 뚝 떨어졌다. 그 전까지 선방쇼를 펼치던 유현도 손 쓸 수 없는 드롭 슛이었다. 골을 터트린 다카하기는 벤치의 윤주태를 불러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스모 세리머니를 펼쳤다. 윤주태는 세리머니 막판 씨름의 뒤집기 기술로 다카하기를 넘어트리며 함께 기쁨을 나눴다. 전반에 선제골을 넣으며 계획대로 우위를 점하는 서울이었다.
선제골을 내주고 헤매던 인천은 후반 6분 김도훈 감독이 2명의 선수를 동시에 교체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김인성을 빼고 진성욱을 투입해 전형적인 투톱을 가동했다. 김도혁을 대신해 용재현을 투입해 허리 싸움을 우위로 가져가려 했다. 후반 15분엔 일찌감치 세번째 카드를 소진했다. 박세직을 빼고 이효균을 넣어 전방에 3명의 스트라이커를 세워 어떻게든 득점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천은 후반 16분 예상 밖의 세트피스 플레이로 서울 간담을 서늘케 했다. 2분 뒤에는 권완규의 긴 크로스를 케빈이 헤딩으로 연결했고, 문전에서 이효균이 다시 헤딩 슛까지 마무리했지만 서울 골키퍼 유상훈의 정면으로 향하고 말았다. 인천도 결국 이 변화가 적중하며 동점골이 터졌다. 후반 26분 김대경이 길게 올린 크로스를 케빈이 다시 한번 헤딩을 떨궜고 공을 받은 이효균이 터닝슛으로 서울 골문 오른쪽 아래를 갈랐다. 케빈의 제공권을 저지하지 못하던 서울이 결국 흔들렸다.
하지만 서울에겐 해결사 아드리아노가 있었다. 후반 42분 박용우의 과감한 패스가 페널티박스 안으로 향했고 인천의 권완규가 헤딩으로 걷어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뒤로 넘어갔다. 공을 잡은 아드리아노는 침착한 터치에 이은 마무리로 골망을 흔들었다. 기세가 오른 서울은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넣었다. 몰리나가 코너킥 상황에서 그대로 왼발로 감아 찼고 공은 예리하게 꺾여 들어왔다. 인천은 골포스트 앞에 윤상호가 있었고 뛰어올라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공은 윤상호 머리를 스치며 들어가 골망을 흔들었다. 2골 차로 앞선 서울은 우승을 확신했고 고형진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 승부처: 두 감독의 수 싸움, 믿음이 이겼다
먼저 수싸움에서 이긴 쪽은 최용수 감독이었다. 그는 결승전에 오스마르를 다시 전진 배치시켰다. 케빈의 높이는 위협적이지만 쓰리백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한 최용수 감독은 오히려 허리에서 인천의 흐름을 끊고 몰리나와 다카하기가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카하기가 지속적인 공격 가담 끝에 선제골을 만들며 그 판단은 적중했다. 전반 22분부터 다카하기의 선제골이 나온 10분간 이어진 파상공세는 인천의 패스 흐름을 차단한 뒤 일방적인 공격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반면 인천은 두 미드필더의 공백을 결국 메우지 못했다. 김원식이 빠진 수비는 서울의 공격을 도중에 차단하지 못하고 계속 위기를 허용했다. 팀 내에서 가장 정확한 패스로 역습 전술의 시발점이 된 김동석의 빈 자리도 크게 느껴졌다. 김도훈 감독은 윤상호의 기동력과 박세직의 왼발로 커버하려 했지만 전반은 의도대로 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에 김도훈 감독이 반격했다. 그는 후반 7분, 그리고 16분에 3장의 교체카드를 모두 썼다. 그만큼 변화가 절실했다는 얘기였다. 진성욱과 용재현이 들어가 각각 전방과 허리에 힘을 실었다. 마지막 교체카드였던 이효균이 결정적이었다. 볼 경합과 슛까지 다 해야 했던 케빈은 진성욱과 이효균이 들어오며 가장 강점이 있는 경합에 초점을 맞췄다. 진성욱과 이효균은 세컨드볼을 잡는 데 집중했고 결국 후반 26분 기대했던 과정에 의해 이효균의 동점골이 터졌다. 두 감독의 수 싸움의 끝엔 믿음이 있었다. 최용수 감독은 동점골을 내주고 작년 FA컵 결승전의 실패를 떠올렸다. 선수들에게 질타를 하고 많은 지시를 내리기보다 믿음을 보였다. 특히 케빈에게 번번히 공중볼을 허용하던 박용우를 빼지 않고 끝까지 믿었다. 그 결과 박용우는 정확한 롱패스로 아드리아노의 결승골을 도왔다. 최용수 감독이 결국 웃는 순간이었다.
:: 킥오프 선정 MOM: 몰리나
이날 결승전은 차두리뿐만 아니라 몰리나에게도 어쩌면 마지막 우승 기회였다. 올해로 서울과의 계약 종료를 앞둔 몰리나는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전반기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노쇠화를 의심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 후반기에 보란 듯이 일어서며 아드리아노, 다카하기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날도 몰리나의 역할은 특별했다. MVP는 다카하기의 몫이었지만 만 3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활동량과 K리그 역대 최고로 꼽히는 왼발을 이용한 패스와 킥으로 경기를 조율했다.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까지도 몰리나의 역할은 돋보였다. 1-1 동점으로 심리적인 동요가 일어날 수 있던 시간대에 그는 프리킥과 코너킥 상황에서 팬들의 응원을 유도하며 홈경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결국 그런 노력이 결과물을 만들었다. 후반 추가시간 돌입 후 허를 찌르는 코너킥으로 추가골을 넣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몰리나는 그 동안의 아쉬움을 폭발시키듯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지고 환호했다. 2012년 K리그 우승 당시 멤버 중 현재도 팀의 중추로 활약하는 거의 유일한 선수인 몰리나로서는 감회가 남달랐을 순간이다. 벗어 던진 몰리나의 유니폼은 다카하기가 대신 입고 그의 등번호를 보이며 경의를 보냈다. 경고를 받았지만 몰리나로서는 가장 특별한 골 세리머니였다.
:: 비하인드 스토리: 투혼의 인천, 다시 실패한 비상
객관전 전력 상 열세라 판단됐던 인천은 후반 42분까지 팽팽한 승부를 펼치며 마지막까지 선전했다. 그들의 투혼은 빛났다. 특히 공격수 김인성의 마스크 투혼이 인상적이었다. 수요일 훈련 중 가진 미니게임에서 동료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내려앉았던 그는 당초 출전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본인이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며 안면보호 마스크를 쓰며 경기에 나섰다. 김인성은 후반에는 아예 마스크를 벗고 나왔다. 코 부위에 하얀 밴드가 붙여진 상태로 뛰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외국인 선수 케빈은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만일 인천이 승부를 뒤집었다면 이날 최고 수훈 선수는 인천의 정신을 온 몸으로 보여준 케빈이었을 것이다. 원정팬들의 응원도 돋보였다. 구단이 꾸린 비상 원정대는 10대가 넘는 버스를 타고 550여명이 참가했다. 개별적으로 합류한 팬들까지 2000여명이 S석 40% 가량을 채웠다. 우승을 위해 준비한 여러 걸개들과 경기 시작 전 트로피를 형상화한 퍼포먼스 등이 인상적이었지만 정상에 서고 아시아를 향해 비상하겠다는 인천의 꿈은 아쉽게 무산됐다. 2005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이은 창단 후 두번째 우승 도전이었지만 10년 만에 다시 온 기회도 인천의 차지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