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휴~ 다행이다!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음력 辛丑年 칠월 초엿샛날
이제 아침 공기가 선선해진 느낌이라서 상쾌하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며 뜨겁고 힘들게 하던 한여름
폭염도 세월앞에는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옛 선조들로부터 전해오는 말
'세월앞에 장사가 없다'란 이 말은 틀린 말 아닌 것
같다. 흐르는 시간에는 그 어떠한 자연현상은 물론
우리네 일상의 변화도 거슬릴 수가 없는 것이라서
이런 말이 생겼겠지 싶다. 이렇게 여름은 또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말이다.
전날밤까지 많이 힘들어했던 아내를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읍내 의원으로 달려갔다. 걱정스럽고 급했던
마음이라서 의원이 문을 열자마자 일찍 달려간 것,
산골이라 그런지 우리고장에 하나뿐인 의원이라서
그런지 일찍인데도 환자들이 꽤 많았다. 아내 차례,
아내가 진료실로 들어가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너무
불안하고 초조했다. 제발 별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
원주의 큰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었다. 얼마후 진료를 받고 나온 아내가
주사를 두 대나 맞아야 한다며 빙그레 웃는 것이다.
그때서야 안심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단다.
과로로 인한 피로누적이 원인이며 몸에 두드러기가
돋은 것은 풀독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그러면서
주사를 맞고 연고를 바르고 사흘치 약을 복용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정말 다행이기는 하다.
그런데 아내가 과로에 의한 피로누적이 원인이라고
하는 의사의 진단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다. 아내는 지난 6월말부터 평창군 보건의료원이
주최하는 "12주 건강 체중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
매일 아침 5시반에 일어나 단지내에서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거의 하루에 평균 5.3km 가량의 거리를
한시간 조금 넘는 시간동안 걷는 것을 하루도 빠짐
없이 하였다. 아무래도 이 운동이 아내에겐 무리가
따른 것 아니었나 싶다. 그 외는 무리하는 일이 별로
없다. 풀독은 밭일보다 산골이라서 걷기운동을 하며
풀에 스쳐서 독이 오른 것 아닌가 싶다. 피부가 약해
가능한 하절기에는 잡초를 뽑는 일이나 채소 수확은
물론이고 또다른 밭일은 아내에게 시키지 않는다.
있다고 하면 거의 매일 아침마다 밭에서 수확한 것을
갈무리하여 햇볕에 말려 저장하려는 것을 준비하는
것 뿐이다. 가지를 썰어 말리고 오이지를 담그고 또
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라 그 일은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니까 결국 원인은 걷기운동이 무리가
따른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그만두라고 했는데
낫고나면 또 하지않을까 싶다.
아내가 아픈 날에 처제네가 와있어서 또한 다행이다.
언니를 위해 죽을 준비해주고 이것저것 도와주면서
말동무까지 해주니까 제때 잘 와주었구나 싶다. 허나
아내가 불편한 몸이라서 이것저것 챙겨주지를 못해
모처럼 친정에 오고 동서는 처갓집에 온 듯한 느낌이
반감되지 않았나 싶다. 아내는 처제의 정성에 도움이
되었는지 의원 진료 덕분인지 많이 좋아져서 저녁에
넷이서 단지 산책을 함께 했다. 매일 둘이서 하다가
넷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산책을 하였더니
기분좋은 것은 물론이고 모처럼 정겨움과 정다움을
느끼게 된다며 흐뭇해 하는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늘 이렇게 좋았으면 싶다.
어제 아침나절 아내를 데리고 읍내 의원에 다녀와
아내가 쉬고 있는 사이에 멀뚱멀뚱 아내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 밖에 나와 마당 야외탁자에 앉아있다
보니 문득 떠오는 생각이 있었다. 새로 만든 밭에는
며칠전에 씨앗을 넣은 쪽파와 무우가 싹이 올라오고
있는데 잘못하면 고라니 녀석들이 출몰할 수 있어
그물망을 쳐야할 것 같았다. 전날 아내가 걱정하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농재재를 놓아둔 곳을 뒤져
그물망과 지지대를 꺼내 설치를 했는데 반도 못했다.
나머지는 철물점에 나가 그물망을 사와야만 될 것
같아 망설였다. 그물망은 필요한 만큼씩을 파는 것이
아니라서 몇 m도 안되는데 쓸데없이 한 뭉치를 사는
것은 낭비라서 어떻게 해야할까 궁리를 했다.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스키폴대와 바베큐 철망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스키폴대는 스키장에서 버린 걸
많이 주워다 놓았고 바베큐 철망은 예전 펜션운영을
하던 때 쓰고나면 모아둔 것이 많이 있다. 스키폴대를
촘촘히 박고 철망을 묶었더니 훌륭하게 그물망 대신
야생동물 방어막이 된 것이다. 재활용을 아주 제대로
한 것 같다. 혹시 누가 보면 너무 없어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싶지만, 있는 것을 재활용하는 것은
이제 촌부 특기가 된 것 같다. 남이야 뭐라 하든말든
상관없다. 내가 좋고 내가 유익하면 되는 것이니까.
스키폴대와 바베큐 철망으로 만든 야생동물 방어막,
야외 인테리어 치고는 괜찮은 아이디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