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정부가 자랑하는 '세계 20위 국가경쟁력'의 진실 / 6/28(금) / 한겨레 신문
◇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매년 발표하는 67개국 중 20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
기업 실적이 좋아 법인세를 많이 내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
얼핏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표현이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실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맞는 문장이다. IMD가 최근 발표한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전체 67개국 중 20위의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하면서 그 평가의 신뢰성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앞서 이 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 보도자료를 배포해 1997년 평가대상에 오른 이후 최고 순위를 기록,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이상인 7개국 중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 기록 등을 내세워 윤석열 정권의 경제 성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국가경쟁력 세계 20위라는 지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4일 IMD의 국제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이 평가는 경제성과▽정부효율성▽기업효율성▽인프라 등 4대 분야와 20개 부문을 조사한 뒤 336개 세부항목(통계적 자료 164개, 설문조사 92개, 보조지표 80개)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지표를 구성한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를 끌어올린 분야는 기업 효율성과 인프라였다. 기업 효율성 순위는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33위에서 23위로 10계단 올랐다. '인프라' 순위는 16위에서 11위로 5계단 상승했고, '경제 성과'와 '정부 효율성'은 각각 14위→16위, 38위→39위로 하락했다.
이 평가의 가장 큰 약점은 순위 산정에 활용되는 256개 항목 중 36%(92개)가 주관식 설문조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도 올해 지표가 크게 상승한 점에 대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의 지표 순위가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IMD 측은 최소 80개 기업으로부터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설문조사에 응하는 기업 자체가 일관되지 않아 시계열로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개별 기업인의 주관적인 인상 평가로 순위가 크게 변동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통계적 자료의 해석에도 의문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효율성 분야의 조세정책 항목이다. 경영하기 좋은 환경인지 여부를 최우선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법인세율이 낮은 경우뿐만 아니라 법인세수가 적을수록 긍정적인 지표로 판단한다. 이번 평가에서는 2022년 지표가 반영됐지만 한국 기업들의 실적 호조에 따라 2022년 법인세수가 전년보다 47%나 급증한 것이 부정적인 평가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평가에서 한국은 정부 효율성 분야에서 전년보다 한 단계 떨어졌지만 법인세수 실적 증가 때문에 조세정책 항목이 하락(26위→34위)한 영향이 컸다고 한다. 낮은 법인세율이 국가경쟁력이라는 단순한 논리도 문제지만 기업 실적이 좋아 세금을 많이 냈는데 국가경쟁력이 거꾸로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IMD 평가 국내 협력사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순위 자체보다 개별 지표 관리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GDP 대비 세수 비중이 커지더라도 순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됐다며 명목 법인세율도 낮을수록 평가는 긍정적이지만 조세정책은 각국에서 사회경제적 합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반드시 낮은 세율만이 정답이 아닌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2016년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발표할 때는 "평가 방식에 따라 설문조사 비중이 높고 질문할 당시 사회·경제 여건과 분위기에 조사 결과가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며 지표를 보수적으로 해석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