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는
우리 민초들을 잡아다 족치는
친일에 가담했다던 그가
군사 반란을 일으켜
쿠데타를 승리로 이끈 후
정권을 빼앗아
우두머리(首長)자리에 앉아
나라를 열심히 경영한 결과
헐벗고 굶주린
배고픈 백성들을 구제하여
온 백성으로 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날
고령박씨가 주체하는 만찬장 회식 중에
김재규 장군께서
유신총알이 든 권총에서 불을 뿜어내자
그가 안타깝게도
요단강 쪽배를 타고 이승을 건너가야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저승으로 떠나가 버리자.
하늘이 울고
땅도 같이 울고 온 백성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던 정치꾼들이 있었다.
이름 하여 3金
바다에서
멸치를 키워? 팔아서 떼돈을 번 아버지를 둔
거산이라는 분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으로
들떠있었고
이승을 떠난 朴씨로부터
대립되는 처지에 놓여
핍박을 받으며 살던 후광이라는 인물
그에게도 기회가 온 것처럼 보였으리라
청구동에서 바둑을 두며 일상을 보내던
2인자 였던
충청도 부여金씨 운정께서도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때
문어 대가리모양을 한 어떤 양반이
매일 텔레비전에 나와
얼굴이 알려지면서
그자가 전 땡땡이라는 것이었다.
그 민머리가 등장하면서
김칫국부터 마셨던
3김들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상도동 신사
거산에게서는
정치에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
청구동 고목
충청도 부여 金씨는
가지고 있던 제주 목장과 밀감밭
그리고 충남 서산 목장 초지를
나라에 헌납하겠다는 각서에 도장
동교동 지팡이
후광에게는 최악의 경우였다.
민머리 전 땡땡은
그를 좌파로 낙인
북쪽 진달래마을과 내통했다는
빨갱이 누명을 씌워
군 법정에서 사형을 내린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기도 했던 그에게
전땡땡의 은혜로움을 받아
사형을 면하게 된다.
주걱턱 여사와
후광 내조자 李여사가
같은 李씨로 인척관계였다고 전해 지기도...
총 맞아 죽은 고령 朴씨가
황소를 상징물로 내 세워 만든당이
전땡땡으로 이어지면서
수 차례 이름이 바뀌면서 계속하여
지금의 임금님을 배출한 당이 된다.
딱 두 번 임금자리를 뺏앗긴 적이 있다.
사형수였던 金씨한테 한 번
그리고 민초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젊은 노씨
새로운 임금님이 용좌에 앉으면서
그 젊은 노씨가 정적이 대상이 되어
어느 날 봉화마을
부엉이바위를 뒤로한 채
고향의 별나라로 무심히 떠나게 되었다.
그를 추모하는 민초들이
지금 까지도
떠나보낸 아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2023년 1월 29일 이른 새벽녁
서울택시기사 김승현의 시사일기였습니다.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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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일기 두 번째 3김 시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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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대 문씨는?
주인장은 카페를 방관하나 ?
교통정리가 필요한데 않되는 듯.....
김영삼,김대중 본인들도 정치자금 받아놓고
전두환 노태우에게 프레임 걸어서 빠져나가고,노무현은 본인의 자살로 수사마무리 했던거 아닌가?
노태우 비자금사건때 김영삼에게 3000천억 갔었다고 분명히 진술했는데 무마되었고,평생 반정부 활동만 했던 동교동 양반은 재산이 어디서 나서 아들들이 맨날 재산싸움하나?
봉화는 2억짜리 피아제시계 논두렁사건과,딸 뉴욕 120만달러짜리 아파트와 600만달러 수수의혹등 제대로 수사한거 맞나?
재수사로 국민의 의혹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부고속로 건설할때,왜 농토에 건설하냐고,데모했던게
양김이었고,중화학공업 시작할때 농업국가로 가야지 왠 중공업이냐고 했던게 양김이다,본인에게
자리양보 안해준다고,배신한게 청구동이고,현재의 혼란도
모두 삼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후기시대 노론 소론, 유교탤레반들과 다른게 무엇인가?
💕
임자는 예리한 역사관에 하버드 논문실력을 갖추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