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장. 성문과 보살
聲聞은
宴坐「林中이나 被魔王捉이고
菩薩은 遊戱世間이나 外魔不覓이니라.
성문은 숲속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마왕에게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지만 의도나 마군이 찾지를 못한다.
《註解》
聲聞은 取靜爲行故로 心動이니 心動則 鬼見也라. 菩薩은 性自空寂故로 無迹이니 無迹則 外魔不見이라. 此合論二乘菩薩이니라
주해
성문은 고요한 경계를 취하여 수행을 삼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니 마음이 움직이면 귀신이 본다.
보살은 그 성품이 본디 비어 고요하므로 그 마음에 자취가 없으니
자취가 없다면 외도와 마군들이 볼 수가 없다.
여기서는 이승과 보살을 함께 말했다.
頌
三月懶遊花下路인데 一家愁閉雨中門이로다.
산들 바람 꽃길에서 오락가락 노니는데
어느 집은 빗속에서 문을 닫고 근심 걱정.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
첫댓글 문 단속을 꽁꽁해도 천리만리 돌아다니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마왕이 오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세간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하는 보살님!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세상에 붙잡아서 유지할 수 있는 게 없지요
왜냐? 그런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라 그래요
세상에 무한동력 무한에너지는 없듯,
붙잡는 건 언젠가는 놓아버리게 되어 있어요
에너지가 고갈 되거든요?
그러나 처음부터 놓아버리는 건 에너지가 필요없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무한입니다
성문은 마음을 붙잡아 적정에 들지만
보살은 마음을 놓아 버리고 세상 속으로 흩어지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에너지 고갈될 일이 없습니다
@普賢. 우와~~
고맙습니다. _()_
三月懶遊花下路 一家愁閉雨中門
산들 바람 꽃길에서 오락가락 노니는데
어느 집은 빗속에서 문을 닫고 근심 걱정
참 멋있는 말!
이 정도경지에 이르려면 6지-現前地-에 가야 비로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경지에서는 다른 논리-외도의 논리-와 번뇌를 두려워하지않고 하였으니까요.
일반 중생들에게는 엄청 어려운 일일겁니다.
이로보면 서산대사님은 상당한 경지에 간것으로 보입니다.
새삼 그분의 말씀이 와 닿습니다.
선가귀감에 실린 글들은 전부 서산대사가 하신 말씀이 아니라 참선 공부에 도움 될만한 가르침들을 경전과 조사 어록에서 당신께서 직접 발췌 한 겁니다
발췌한 글들을 묶어 책을 만들며 선가의 거울이 되라는 의미로 선가귀감 이라 이름 부치셨지요
예전에는 불,보살님들이 먼데 계신다고만 느꼈는데,자꾸 접하다보니 그 분들이 자신이 존재를 드러내지않고 가까이 계신다는것을 알게됐습니다.
서산대사님도 그런분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원효,의상대사정도만 보살님 화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범위가 넓어짐을 느낍니다.
비록 조사 어록등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는 하나 이를 통해 서산대사님의 사상을 엿볼수있지요.
제 생각입니다만 이런 높은 차원경계에 가신 존재들이 이 세상이 많이 태어났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런 글을 알아보는 안목도 공부가 익어야 가능하지요
제가 금타스님이 과거 성인들 공부 경계 평가 하신거 법당 게시판에 올려 봅니다
보현선생님, 진리는 하나님,
댓글 가르침 정말 감사드립니다._()()()_
멋진 말씀들, 울림을 주는 말씀들,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말씀들...
모든 가르침. 고맙습니다. 배우고 익혀 저도 일꾼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