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전기차 배터리 성능 뚝… “주행거리 반토막”
[한반도 덮친 한파]
1회 충전 주행 최대 110km 줄어
운전자들 “차 멈출까봐 마음 졸여”
충전소도 모자라 긴줄 “충전 난민”
전기차를 2년간 탄 한모 씨는 지난 설 연휴에 차 대신 고속철도를 이용해 고향인 대구를 찾았다. 평소 kWh(킬로와트시)당 6∼7km 정도 나오던 전기차 전비가 겨울이 되면서 3∼4km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씨는 “한파로 주행거리가 더 짧아질 수 있어 기차를 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다른 전기차 소유주 이모 씨는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가려고 아예 내연기관차를 빌렸다. 이 씨는 “전비가 이미 30∼40%는 떨어져 있더라”라며 “내연기관차는 여차하면 기름통을 들고 뛸 수라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
겨울철만 되면 급격히 줄어드는 전기차 주행거리 때문에 차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저온 상태에서 리튬이온의 이동이 둔해지면서 성능이 떨어진다.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이유다.
25일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국내에 출시된 전기차의 상온(25도)과 저온(영하 7도)에서의 1회 충전 시 주행가능 거리는 최대 110km 이상 차이가 난다. 지난해 8월 출시된 현대차 ‘아이오닉6’(롱레인지 2WD 기준)는 상온에서 544km를 한 번에 가지만, 저온에서는 116km(21.3%) 짧은 428km가 한계다. 기아 ‘니로EV’도 상온(404km)과 저온(303km) 간의 주행가능 거리 차이가 101km(25.0%)에 달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한파가 몰아쳤던 이번 설 연휴 기간에 예상치 못한 불편을 겪은 차주들의 경험담이 줄을 잇고 있다. “주행가능 거리가 빠르게 줄어드는데 심장이 쫄깃 했다” “히터를 켜니 배터리 주행거리가 녹아내리더라” “충전소마다 밀려 있어 충전 난민이 따로 없었다” 등이다.
전기차를 모는 택시와 택배 기사들도 혹독한 겨울나기는 마찬가지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손님을 태우는데 히터를 안 켤 수도 없다. 겨울엔 하루 두 번 이상 충전을 해야 하니 시간이 돈인 기사들로선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충전 인프라 부족도 문제다. 고속도로에서 ‘충전소 레이스’를 펼친다는 농담 섞인 하소연까지 나온다. 게다가 겨울철엔 충전 속도도 느려진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성능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행거리는 배터리 성능뿐만 아니라 주행 습관이나 외부 환경 등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전기차는 아직 혁신의 과정에 있다”고 지적했다.
변종국 기자, 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