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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일맥)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바르게보기
글/정봉화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세 종류의 나무가 나온다.
1) 포도나무(삿9 : 20) 2) 감람나무 (삿9 : 9) 3) 무화과나무(삿 9 : 10)
포도나무=포도나무는 영적 이스라엘을 뜻한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요,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 성도들은 그 가지다.
감람나무=감람나무는 종교적 이스라엘을 뜻한다.
왕이나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울 때, 감람나무에서 나는 기름으로 하며, 솔로몬 성전의 두 그룹과 외소 문의 문설주도 감람나무로 만들어졌다.(왕상 6:23, 6:31-33) 감람나무는 접붙임으로 증식이 되는데, 로마서 11장 17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 불순종으로 나뭇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다고 하신다.
무화과나무=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신앙적 상태를 상징한다.
무화과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다. 실은,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매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 꽃(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숨기시고 열매만 맺고 가셨다. 무화과나무는 심은 지 3년이면 열매가 열리게 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
누가복음 13장 6-9절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3장 9절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태복음 21장 43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은 백성이 받으리라”
무화과나무의 식물해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마가복음11장13절)
柱=일맥:무화과는 열매와 잎이 동시에 맺어지는 식물이다. 잎이 무성하면 열매가 커가고 있다는 증거다. 목사님들은 자세히 알고 설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것은 열매를 처음부터 맺지않음을 지적하신 것이다.무화과 열매는 처음 잎이 나올때 이미 맺어 있어야 한다. 잎만 무성하다는 것은 자기의 사명을 잊은 것이다. 무화과는 열매가 맺을 시기가 되면 열매가 먼저요.그 다음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무화과사진 자료보기 ◀크릭
무화과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나무로서 이름이 확실하고 우리가 지금도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무이다.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나무로서 아담과 하와는 이 나무의 잎을 따서 자기들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 매년 6월과 9월 두 번씩 수확하므로 거의 10달 동안 열매를 볼 수 있다. 열매를 두 번 수확하는 이유는 작년 가을에 달린 비정상적인 열매가 겨울 내내 자라지 못하다가 6월에 익기 때문이다. 이것을 처음 익은 무화과(비쿠라 בכורה)라고 하는데, 억지로 익었기 때문에 푸르고(아2:13) 수분이 적으며 푸석하다. 그러나 양식이 부족하던 옛날에는 귀한 먹이가 되었다(나3:12, 계6:13).
8~9월에는 3월에 달린 정상적인 무화과를 거둘 수 있는데, 이것을 늦무화과(테에나 תאנה)라고 한다. 처음 익은 무화과보다 부드러우며, 수분이 풍부할 뿐 아니라 햇볕을 많이 받아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무화과는 저장성이 약하므로 건과(乾果)로 보존되며, 건조시킬 때 단맛이 더해진다(삼상25:18, 대상12:40). 잼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으며, 단백질 분해 효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므로 고기를 먹은 후 후식으로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 상처에 고약으로 쓸 수 있으며(왕하20:7, 사38:21) 부스럼이나 옴, 사마귀에도 좋다.
무화과는 유액이 있는 낙엽성의 관목으로 키는 5-8m까지 자라며 껍질은 회색이다. 재배식물이므로 가지치기를 하여 열매를 거두기 좋도록 다듬는데, 팔레스틴에서는 성서시대에도 재배되었다. 잎은 두껍고 거칠며, 7~15cm 정도로 자라 손가락 3개 또는 5개를 펼친 모양이 된다. 잎겨드랑이에서 음화과(隱花果)로 달리므로 꽃을 볼 수 없으며, 열매 속에서 오가는 작은 등에가 꽃가루받이를 해 준다. 야생종에는 수꽃과 암꽃이 따로 있는 자웅이주(雌雄異株)도 있다. 열매는 지름이 2~5cm 정도로 크며, 물방울 모양으로 생겼다.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익으면 주로 검붉은 색으로 변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껍질째 먹을 수 있으며, 90%의 즙과 10%의 당분을 가지고 있다. 과일 속에는 아주 작은 씨앗들이 가득 차 있어서 톡톡 씹히는 맛이 특이하다.
계시록 6장 13절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일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에서 무화과나무의 잎은 율법주의, 형식주의, 인본주의를 뜻한다.
창세기 3장 6-7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앞을 가렸다. 무화과 잎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다. 죄는 하나님께 회개를 해야 용서를 받는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무 잎으로 그것을 가렸다. 이것이 사람의 힘, 사람의 생각을 따라 죄를 가리려고 하는 율법주의의 시초이며, 모든 인본주의의 첫 시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양을 잡아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짐승 한 마리가 죽어야 한다. 인간의 죄를 가리기 위해 한 짐승이 죽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당신의 어린양이신 예수를 십자가 위에서 잡으셨다. 우리를 대신하여서 양을 잡으신 하나님!
무화과나무의 저주
누가복음 13장 6-9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 비유의 말씀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이요,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과원지기는 예수님이다.하나님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아들인 예수님께 맡기고 3년을 기다렸으나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 하나님은 과원지기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과실을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인 과원지기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과원지기인 예수님은 대답하신다.“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두루 파고 거름을 주다” 십자가에 달려서 물과 피를 땅에 다 쏟다.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예수님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믿고 회개를 하면.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은 천국 복음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유대 사람들에 대하 경고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완악한 유대 사람들은 이 비유의 말씀의 뜻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경고를 하신다. 마태복음 21장 18-20절에 그것이 나온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이 말씀을 풀어보자.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 이 날은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감하는 마지막 한 주간의 첫날인 월요일이었다. 이 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와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들 내쫓으시는 성전 숙정을 하신다. 이 아침, 베다니를 떠나 성으로 들오시는 그 이른 아침.
“시장하신지라” 아침 일찍이 베다니를 나오시느라 아침 식사를 못하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날 저녁 식사도 못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육신의 배고픔 보다는 여기서는 영적인 배고픔을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시고 이제 승천하실 기한이 다 되었는데,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한 영적 배고픔을 느끼셨던 것이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구약시대의 길은 율법이었다.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이다. 예수님이 곧 진리요, 예수님 걸어가신 길이 바로 천국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예수님은 당신의 그 길, 십자가를 향한 그 길을 향해 걸으시며 길가(율법)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이스라엘 백성)를 보신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율법은 그 그림자일 뿐이다. 참 길이신 예수님은 그림자만을 고집하고 그 길가에서 끄떡도 않고 서 있는 무화과나무(유대인들)를 보신다.
“그리로 가사”
유대 나라에 오셔서 그들을 가르치셨으나.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빛을 보지 못하고 그 그림자만을 고집하여 열매는 없고 형식만 무성한 유대인들을 보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행해 말씀하신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형벌.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 동시에 이스라엘처럼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자들의 영적 고갈 상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는 잎 밖에 없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무화과나무가 왜 말랐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누가복음 13장 6-9절에서 열매 맺지 아니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열매 없는 이스라엘이 찍혀버리리란 경고를 하셨다. 그때 누구도 그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씀 아닌 눈에 보이는 이적, 곧 멀쩡한 나무가 눈앞에서 말라버리는 이적을 통해 재차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주신다. 그러나 눈을 뜨고 그것을 본 제자들조차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멸망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신다. 그때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아 죽으시고 승천하신지 30년쯤 지난 주후 64년, 로마제국은 황제 네로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그는 아그립바 2세를 이스라엘 분봉 왕으로 임명한다. 아그립바 2세는 친누이 동생 베니게와 결혼한 인물로 사도행전 25장 13절에서 총독 베스도와 함께 바울 사도를 심문한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풀로루스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는데, 이 풀로루스란 자 또한 몹시 탐욕스럽고 포악한 성격의 인물로 약탈과 학정을 항의하는 유대인 수천 명을 처형해버린다. 여기에 분개한 유대인들이 분봉 왕 아그립바 2세에게 상소했으나 묵살 당했고 이에 분개한 유대 민중은 반란을 일으켜 로마 군인 300여명을 죽인다.
네로 황제는 주후 66년 장군 베스파시안에게 반란 진압을 명령한다. 베스파시안은 아들인 디도와 함께 유대를 공격하여 반란군의 지도자 요세푸스를 사로잡는다. 그 무렵 네로 황제가 죽고 베스파시안이 로마 황제가 된다. 황제가 된 그는 아들 디도에게 6만의 군대를 주어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한다.
주후 70년, 6만의 로마 대군은 성 주위에 토성을 쌓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했다. 성 안은 식량이 바닥났고,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성 밖으로 도망쳐 나오기 시작했는데,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 중 부자들은 금이나 보석 등을 뱃속에 삼키고 나왔다고 한다. 탈출에 성공했을 때, 배설물과 함께 몸 밖으로 나오는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특히 제사장들은 성전의 귀한 금과 보석을 뜯어 뱃속에 삼켜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 군인들은 성에서 탈출해 나오는 사람들, 특히 제사장들을 잡아 산 채로 배를 갈라 배속에 든 금과 보석을 찾아냈다. 아이 밴자나 배가 나온 자도 보석을 삼킨 것으로 여겨서 배를 갈랐다. 살고자 배속에 삼키고 나온 금이 오히려 그들을 죽게 했던 것이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금과 은이 아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죽게 한다. 마태복음 24장 19절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누가복음 21장 23절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주후 70년 8월 28일, 디도 장군은 예루살렘 성을 행해 총공격을 시작한다.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간 로마 군사들은 성전을 불태우고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모조리 배를 가르고 창자를 잘라내어 금을 찾았다. 옆에서 이것을 보고 겁에 질려 울부짖는 어린 아이들을 귀찮다는 듯 집어 땅에 메어쳐 죽였다.
성전은 불타고, 그 뜨거운 불길로 해서 성전 안에 있던 모든 금붙이와 성전 벽에 입혔던 금이 녹아내려 돌과 돌 사이로 흘려 내렸다. 로마 병정들은 이 금을 캐내기 위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파헤쳐 버렸고, 성전 땅바닥은 마치 씨뿌리기 전의 밭처럼 갈아 엎어졌다.
누가복음 19장 41-44절에서 예수님은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예언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글자 그래도 이루어진다. 장차 임할 종말의 때에도 성경에 예언된 말씀들이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글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을 때, 살아남은 960명의 이스라엘 용사들은 마사다 요새로 가서 결사 항전을 계속한다. 마사다 요새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00킬로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로 깊은 골짜기로 둘러싸인 높은 바위산 위에 건설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디도 장군은 로마에 굴복하지 않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부하인 프라비우스 실바에게 마사다 요새 공격을 명령한다. 로마 군대는 요새를 포위하고 3년에 걸쳐 마사다 요새의 성벽보다 더 높게 토성을 쌓아 올린다.
3년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서 성내에는 모든 샘이 발라버렸고, 식량도 바닥이 났다. 로마군의 토성은 요새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만큼 높이 올라갔다. 최후의 날이 한순간씩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갈증과 허기로 헐떡이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굶주림의 고통, 그리고 눈앞에서 어린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고통을 참지 못하고 여인들은 어차피 죽을 어린 자식들을 죽여 화덕에 구워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주후 73년 5월 1일, 드디어 최후의 날이 왔다. 로마군이 총공격을 시작했다. 석궁으로 성문을 파괴하고 불화살을 쏘아 마사다의 식량 창고를 불태워버렸다. 마사다 요새 최후의 날, 이스라엘의 대장 엘리야살은 성에 남아있는 용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잡혀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자고 제의한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가족들을 죽이고, 그 다음에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찔러 진원 자결을 하고 만다.
600년 전에 다니엘이 예언한 것처럼, 그렇게 이스라엘은 멸망을 하고 말았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라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다니엘 9:26)
다음날,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간 로마 병정들이 본 것은 이미 숨이 끊어져 싸늘하게 식은 960구의 시체뿐이었다. 그때, 한 로마 병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성경의 양피지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그냥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그것이 다시 발견되었다. 흙더미 속에서 찾아낸 그 성경 말씀은 에스겔 37장 1-6절, 37장 11-12절, 21절이었다.우리도 그 말씀을 찾아 읽어보자.
에스겔 37장 1-6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37장 11-12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에스겔 37장 21절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마사다의 용사들은 이 말씀을 읽으며 언젠가는 이스라엘이 반드시 이 땅에 부활하여 나라가 다시 세워질 것을 믿으며 죽어갔다.
유랑하는 민족
주후 70년,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로마의 디도는 유대 사람들을 하루에 500명씩 십자가에 달아 죽였고, 더러는 성전 꼭대기로 끌고 올라가 밑으로 떠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그는 유대인들을 전 세계에 노예로 팔았다. 젊은 사람들은 이집트 광산에 팔았고, 건장한 남자들은 로마의 투기장으로 끌려가서 짐승들과 싸우다 그 밥이 되었고, 어린 소년소녀들은 노예 시장으로 보내졌다. 너무 많은 노예들이 나오는 바람에 세계의 노예 값이 폭락을 해서 나중에는 공짜로 데리고 가라고 해도 데려갈 사람이 없어서 많은 노예들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주후 81년, 디도가 죽는다. 그리고 그의 아들 하드리안이 로마 황제가 된다. 그는 더욱 악독한 자로 무자비한 이스라엘 말살 정책을 쓴다.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유대 사람들을 추방하고, 할례를 금하고, 안식일과 유대 절기 지키는 것을 금지시킨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앨리아 카폴리나”라고 로마식 이름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이에 반항하는 유대인 5만 명을 처형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골고다 언덕에 이방인의 신인 비너스와 주피터 신정을 세우고, 성전 터에는 돼지 우상을 세워놓고, 또 유대 지역의 지명을 “팔레스틴”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였다. 그는 철저한 유대 말살 정책을 시행했다.
유대 사람들은 이에 반항해서 몇 사람만 모여도 조국 회복을 위한 모의를 했고, 또 로마군에 대해 저항을 했다. 이에 대해 로마 황제는 주후 115년, 모든 유대인들의 국외 추방을 명령한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유랑생활, 고향과 나라를 잃고 세계 각처로 떠돌아다니는 디아스포라가 시작된다. 그들은 온갖 천시와 수모와 박해 속에서 전 세계로 흩어져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주후 376년부터 395년까지 로마 황제였던 데오도시우스는 유대인 멸절을 위한 최악의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우대인은 죽여도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피비린내 나는 수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제1차 십자군 전쟁 때, 독일의 라인란트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백성이라는 이유로 1만 명 이상이 학살을 당했고, 제2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1144년에는 영국에서도 유대인 대학살이 있었고, 1290년 영국 에드워드 1세는 영국 내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국외 추방령을 내렸다.
제3차 십자군 때에는 일단의 십자군 병사들에 의해 유대인 거주지가 습격을 당했고, 십자군 병사들은 그들에게 기독교 세례 받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유대인 3천명을 말발굽으로 밟아버렸다. 1254년, 프랑스에서는 루이 9세에 의해 유대인들은 학살을 당하거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국외로 추방을 당했다. 1348년, 유럽에 흑사병이 만연했을 때, 그 원인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모함을 하여 유대인 거주 지역 우물에 독물을 풀어서 1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죽였다.
1492년, 스페인에서는 종교 재판을 열어 유대인 30만 명을 강제 추방하였고, 그 밖에 러시아, 폴란드, 스웨덴 등지에서도 수십만 명이 학살을 당했다. 그리고 1936년에서 1945년까지의 세계 2차 대전에서 독일의 히틀러는 그 악명 높은 수용소를 만들어 놓고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무참히 죽이는 대학살 극을 연출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들은 이처럼 끔찍한 수난을 당해야 했는가?
하나님은 왜?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이토록이나 몸서리치는 비극 속으로 몰아넣으셨는가?
거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하나님을 배역한 죄 2) 사단의 역사 3)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을 배역한 죄
마태복음 23장 29-36절의 말씀을 읽어보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조상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선지자와 의인들의 무덤과 비석을 만들어 놓고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살았다면 그들처럼 선지자나 의인들을 죽이는 어리석은 죄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너희에게 보낼 터인데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할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이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들이 그 조상 때에 살았다면 결코 그런 어리석은 죄는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더러는 죽이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찾아다니며 구박을 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와 의인들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대한 죄벌을 받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그들을 일깨우셨다. 그들은 그것을 깨달아 알았다고 자만했다. 그래서 자기들이 그 조상 때에 살았다면 그들을 죽이는 어리석은 죄는 범치 않았을 것이라고 자만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교만함으로 영의 눈을 뜨지 못하고 그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보다도 훨씬 더 크고 무서운 죄, 오신 메시아를 잡아 죽이는 죄를 저지르게 된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개탄하신다.
마태복음 23장 37-38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다시 마태복음 27장 22-25절의 말씀을 보자.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어리석고 소경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그 피, 예수를 죽이고 피 흘리게 한 그 죄의 대가를 자기와 자기들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외친다. 만일, 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피 값은 그 당대로만 끝나고 말았을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가 않다. 예수를 죽인 죄는 너무나도 크고 중하기 때문에 그 죄 값은 당대로만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죄 값은 그들과 그 자손들이 나누어지고 감당해도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외치도록 만드시고 그대로 모든 죄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짊어지게 하신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수는 안식일을 범했다. 이것만 가지고서도 예수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더욱이, 예수는 참람하게도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런가 하면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했다. 유대 율법대로 한다면 그는 열 번 죽어 마땅하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놓고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하고 외였던 것이다. 아, 그런데, 그들의 그 외침대로 그 피가 그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목이 곧은 민족이었다. 아니, 모든 민족은 하나님 앞에 목이 곧은 민족이다. 하나님은 그 많은 민족들 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 앞에 나타나시고,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며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계명을 주시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지켜 향하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그런 것이었다. 구약성서 신명기가 바로 이것을 기록한 책이다.
신명기 28장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그리고 3절에서 13절까지 그들이 받을 복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그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게 되는데,16절에서 68절까지 그 받아야 할 저주가 아주 자세하게 기록 되어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다고 하면서 그것을 지키면 하나님 백성을 삼고 세계에서 으뜸되는 민족이 되게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때에 온 이스라엘은 '그것을 우리가 다 지키겠나이다.' 하고 선언을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과 맺은 소금언약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못했다. 그것 지키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우상 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을 떠났다. 그래서 16절에서 68절까지 기록된 그 모든 저주가 하나 빠짐없이 모두 그들 위에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사를 알지 못하고 신명기 28장 16-68절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한다. 말하자면 읽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적 수난을 조금이라도 알고 그 말씀을 읽으면 거기에 기록된 말씀들이 단순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경고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기에 기록된 저주의 말씀들이 모두가 문자적으로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시는데, 신명기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하게 하셨다.신명기 28장 6-68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 수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 준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한 그 말이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 위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자, 하나님을 배역한 이스라엘이 받을 저주, 신명기 28장 16-68절의 말씀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내 보자.
신명기 28장 25-26절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자가 없을 것이며”
신명기 28장 32-33절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알아봄으로 눈이 쇠하여지나 네 손에 능이 없을 것이며”,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신명기 28장 36-37절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신명기 28장 39-41절 “네가 포도원을 심고 다스릴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신명기 28장 48- 49절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신명기 28장 52-53절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신명기 28장 57절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신명기 28장 63-68절 “너희가 들어가 얻는 땅에서 뽑힐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열조의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을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실으시고 전에 네게 고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대적에게 노비로 팔려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마5장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살아서 다 이루어진다. 종말에 대해 말씀하신 모든 말씀도 이제 때가 되면 문자 그래도 이루어진다.
사단의 역사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시면 사단은 그 뒤를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한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만들어 그 곳에 살게 화셨을 때에, 사단이 와서 그들을 유혹해서 범죄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세기 3장 15절)
이때부터 사단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단은 그가 자기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사단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다. 예수님은 이 시험에서 사단을 이기신다. 사단은 이번에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게 한다. 과연 사단의 이 계략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므로 사단은 이번에도 지고 말았다.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사단은 꼼짝없이 무저갱 속에 결박되고 만다. 계시록 20장 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사단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사단이 살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재림을 막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재림을 막을 수 있나? 그 방법은 오직 하나, 이스라엘 만족을 이 땅에서 멸절시켜 버리는 것이다. 어째서 그게 예수님의 재림을 막는 방법이 되는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영토가 회복되고, 성도 예루살렘에 회복되고, 그리고 성전이 재건되고, 그래서 옛날처럼 성전에서 제사와 예물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은 재림하시기 때문이다.
어째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이 되어야 재림하시는가? 그 이유가 뭔가? 그래야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이스라엘은 영영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어 그들이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고, 이스라엘이 백성들은 구원받는다. 그래서 신약 성도들이 아무리 소리 높여 예수님 주 재림을 외칠지라도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기 전에는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 곧 이스라엘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곧 영적으로 회복을 하면, 주 재림이 문 앞에 이른 줄로 알라, 그 말씀이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절되어 없어져 버리면 예수님은 재림하실 수가 없다. 그래서 사단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역사를 정면으로 맞서서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그 뒤를 바짝 뒤따라가며 하나님과 비슷한 방향으로 그 간교한 악한 역사를 펼쳐 나간다. 하나님을 배역한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나라를 잃게 하시고 백성들을 세계 열방으로 흩으시고 돌보지 아니하실 때, 사단은 슬그머니 옆으로 끼어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구 학살하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함으로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해서 그들이 좀처럼 예수를 영접하지 않도록 역사했다. 참으로 간교한 사단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제 사단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예수를 죽인 못된 유대인들을 죽여라!” 하고 외치며 예수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기독교도들은 겉으로는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예수님의 재림을 막아버려는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나긴 이스라엘의 형벌 기간이 끝나간다. 동시에 이방인 구원의 기간인 이방인의 때도 끝나가고, 사단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
주후 70년,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1948년 이스라엘은 나라를 찾았다. 그 긴 기간 동안을 한 무리의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공백기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이 공백기는 바로 우리 인생의 무덤에서의 긴 잠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멸망, 그에 이은 부활은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과 같다. 우리는 태어나서 자라고 죽어 무덤에서 긴 잠을 자다가 마지막 때에 다시 부활하는 우리 인생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마귀의 종, 죄의 종으로 내어주셨고, 예수의 보혈로 대속하여 다시 마귀에게서 우리를 찾아오셨다.하나님은 택하시고, 내어보내시고, 다시 불러들이신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향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①남 왕조 유다의 멸망, 바벨론 포로생활, 귀환. ②탕자, 객지에서의 허랑방탕한 생활, 아버지 집.
③이스라엘의 멸망, 디아스포라,이스라엘의 회복. ④아담과 하와의 범죄, 죄악 세상,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시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마음이고, 그들을 내어 보내셨을 때, 그때가 하나님이 그들을 연단하고 믿음을 시험하시는 때이다. 이 연단과 시험이 끝나면 그 시험에 불합격한 쭉정이는 밖에 내어버리시고 시험에 합격한 알곡만 추려서 천국으로 불러들이신다. 이제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역사가 그 마지막 한 단계만을 남겨 놓고 있다. 시험에 이겨 알곡이 된 자들을 추려 하나님 나라로 불러들이는 것, 그 한 단계만 남겨 놓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그 기나긴 디아스포라가 끝나고 마지막 단계만 남겨 놓았다.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만을 남겨 놓았다.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이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잡아 죽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다시 당신의 품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하는 7년 환난이 있고, 이어 하나님의 나라 천년왕국이 지상에 임한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방을 떠돌던 이스라엘 형벌의 기간은 이방인에게는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이며, 이스라엘의 고통의 시기는 이방인의 은혜의 시기가 된다. 택함 받은 종의 고난과 순교의 덕택으로 많은 죄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듯, 이스라엘의 고통과 수난으로 인해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은 비록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범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은 것이지만, 이방인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그 형벌의 고통과 수난의 대가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고통과 수난의 대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달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우리 이방인을 위한 고통과 수난의 제물로 삼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이제 마지막 때에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들의 그 긴 수난의 시간은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시간인 동시에 하나님께 배역했던 그들 자신의 회복을 위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 그들은 노예라고 하는 가장 처한 하층 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당했고, 그래서 그들은 애굽 민족과 동화되거나 혼혈이 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의 혈통을 지킬 수가 있었다. 또한 심한 노예 노동의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모세를 따라 출애굽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로 흩어져 살 때에, 그들이 받은 그 심한 학대와 핍박으로 인해서 그들이 가서 거주한 땅의 민족들과 쉽게 민족적으로 동화되거나 쉽게 혼혈이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민족적 종교적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심한 민족적 수난으로 해서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 건국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받은 그 모진 핍박과 고난이 그들로 하여금 민족성을 지키게 하였고 혈통을 이을 수 있게 하였고, 종교적 전통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이스라엘 건국의 열망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한 고통을 주심으로 그들로 계속 하나님의 선민으로 남아 있도록 지켜주셨던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로 흩으시고 그런 고통을 주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은 2000년이란 세월 동안 차츰 이방 민족과 혼혈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은 이 지구상에서 벌써 없어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하신 그 숱한 고통과 핍박은 이 지구상에 이스라엘 민족을 살아남게 하여 이 땅에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사단은 여러 적그리스도들(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모형들)을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게 함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 지구상에서 멸절시켜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저지해 보려고 혈안이 되었었다. 그러나 실패를 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그 고통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게 한 힘이 된 것같이, 우리들이 지금 이 땅에서 받는 고통은 장차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이 세상에 고통이 없을 때, 우리는 믿는 자들은 이 땅에 동화되고 만다. 광야에 고통이 없으면 누구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제 대환난의 날이 가까이 다가올 수록 이 땅위에는 많은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견디기가 너무 힘겨워 하루 빨리 종말의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그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택함 받은 자들을 깨어 있게 하신다.그러나 고통을 모르는 자들, 편안하고 안일하게 날들을 보내고 있는 자들은 환난의 날이 다가옴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에게 주의 날은 밤에 도적같이 임한다.
글쓴이: 정봉화 자료보충:예수가좋다오/ 일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