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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산마을
 
 
 
카페 게시글
추천여행자료 스크랩 [여행] 보길도....가던 길도 멈추게 한 수려함!!
이삭 추천 0 조회 41 08.08.23 13: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강진과 보성, 그리고 월출산을 거쳐

 이번 남도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보길도이다.

 5 년전쯤 보길도를 처음 찾았을 땐 배 시간을

 잘못 아는 바람에 시간에 ?겨 미처 다 돌아보지 못했었다.

 이번엔 아예 완도에서 하루 묵은 뒤 일찌감치 '해신'촬영장을

 둘러보고 서둘러 보길도에 들어갔다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과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완도읍 대신리 소세포 바닷가에 있는 드라마 '해신'촬영장

    1200 여년전 의 청해진을 재현한 세트장.

    청해포구마을, 장보고본영, 객사, 저잣거리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

 

 **완도 불목리에도 촬영장이 있다는데 그긴 가보지 못했다

 

 **궁복 장보고!  비록 정치에 관여하여 석연챦은 죽음을 맞았지만

    동양삼국의 바다와 무역을 좌지우지했던 그는 분명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이다.

    청해진은 또다른 신라였던가?

    걸출한 인재가 크기 어려운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포부와 애석한 죽음을 생각하며....

 

 **보길도로 향하는 뱃전에서 다녀나오는 배를....

 

 **부용동 세연정.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의

    세연정은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정원의 걸작으로 꼽히는 곳!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세연정. 현판도 고산선생의 솜씨이리라

    그의 풍류가 느껴지는 듯!

 

 **세연정 앞의 연못.

 

 **자연과 건축의 절묘한 조화!

    결코 순탄하지 못한 생애였으나 이 곳에서 그는 세상시름을 잊고

    주옥같은 시들을 남겼다

 

 **고산선생이 마지막을 보냈던 낙서재,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후학을 가르치며 글읽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던 고산.

    그래서 자신이 머무는 곳도 낙서재라 이름하였을까.

 

 **보길도 백도리 바닷가 바위에 새겨놓은 우암 송시열의 시문.

    조선유학의 대가이며 노론의 영수였던 그는 숙종때 영의정으로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반대상소를 올렸다가 83세의 나이에 제주도로 귀양을 떠났다

    가는 도중 보길도 근처에 이르러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물며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지금은 글씨를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송시열이 남긴 시.

     83세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한 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남쪽 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초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 있어
     감격한 외로운 속 마음 눈물 지우네

     *숙종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은근히 보인다. 그당시 장희빈에게 푹 빠져있던

      숙종에게는 경륜있는 노신하도 다만 귀챦은 존재일 뿐이었던가.    

 

 **세연정에서 20 여분 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올라간 산자락에 동천석실이 있었다

    고산선생이 말년에 머물던 곳으로 그는 이처럼 아슬아슬한 절벽위에 한칸짜리

    정자를 지어놓고 부용동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셨다고 하니...

    그의 여유와 풍류가 부럽기만 하다.  

     

 **석실에서 멀리 조망하니 보길도 격자봉이 마치 병풍처럼 부용동을 감싸고 있는

    그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이 곳의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울창한 상록수림과 몽돌밭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예송리 해수욕장.

    이 곳의 일출은 완도팔경중의 하나로 그 경치가 일품이라고 한다.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인으로 불리는 고산 윤선도.

     그는 26세에 출사했으나 강직하고 타협을 모르는 성품으로 자주 유배를 당했다

     당쟁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자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에 이르러

     이 곳의 풍광에 반하여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여생을 보냈다.

     잦은 유배와 당쟁으로 세상에 염증을 느낀 그에게 이 곳은 더할 나위없는

     위로가 되었으리라

     아니 어쩌면 그는 이곳에서 풍류와 낭만을 즐기며 인생의 또다른 즐거움을

     오롯이 느꼈을 지도 모른다

     윤고산의 풍류가 있기에 보길도의 자연은 더 의미있고 빛난다.

     그의 絶唱 '어부사시사' 한 수가 어찌 생각나지 않으리!!

        

         날이 덥도다 물위에 고기 떳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 하는고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낚대는 쥐어 있다 탁주병 실었느냐

 ** 뱃길 ; 완도 화흥포항에서 보길도가는 배가 하루에 9번 쯤 있다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배삯은 편도 7000원.

              차를 싣고 갈 수도 있다.(운임비 2만원)

              보길도안에서는 갤로퍼택시로 관광을 할 수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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