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그대가 되어
첫 눈에 운명이라는 굴레의 의미가 여운처럼 스쳤습니다
마치 미지의 세상에 손을 내밀 듯 당신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 . . 억겁의 세월이 우주에 머물 듯 스쳐가는 바람 천상의 소리에 하늘이 열리는 떨림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사바세계 고해바다 한 모퉁이를 외롭게 돌아가는 길목 안개비 내리는 밤거리에 홀로 서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 이제 그대의 그대가 되어 산 같은 바위로 머무르리라
그대의 그대가 되어
2003년 6월 시인이자 작가인 윤경숙씨는 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 최명숙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서울 노원구청 생활복지부 전희구 국장의 소개로 시낭송회 초대 시인으로 초청을 받았던 것. 그는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장애인인 것을 알아차렸고 그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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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숙 시인과 장애우 제자 시인 지망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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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명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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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회 초청 시인에서 뇌성마비 장애우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자원봉사자로 3년여를 함께 한 그가 얼마 전 자신의 제자 6명과 함께 <그대의 그대가 되어>라는 4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그는 여느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아 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두고 출가하여 오랫동안 ‘법정’이라는 법명으로 주지스님으로 지내기도 했고 무고한 사기 사건에 휘말려 사계절을 감옥의 차가운 바닥과 벗하는 동안, 사랑하는 남편을 사고로 저승에 보내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울 때 세상을 등지기 위해 자살도 두어 번 시도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장애우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뇌성마비 장애우들의 글쓰기 선생님으로, 서울시 자원봉사자를 위한 전문 강사로, 시인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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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낭송 중인 윤경숙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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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명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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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밝은 얼굴 그 어디에서도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고통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보면 세상의 바람과는 무관한 문학소녀를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경이로운 세상을 느끼도록 해 준 장애우들과의 만남에 늘 감사를 한다고 한다.
남들 앞에서 단 한번도, 심지어 남편의 죽음을 정리하느라 일주일간 말미를 얻어 장례를 치르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던 그가 이번 시집을 출간하면서는 무던히도 울었다고 한다. 그 어느 출판사에서도 선뜻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한 시집을 출간해 주겠다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참담했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제가 첫 아이를 낳을 때 난산으로 3일간 죽음을 넘나들며 고통을 겪었어요.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지 그 이후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번 시집을 낼 때 꼭 첫 아이를 낳을 때 그 기분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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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경숙은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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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작가 1989년 전화상담기관 상담원으로 자원봉사 시작. 서울구치소 불교종교위원, 군부대 상임법사 등으로 활동함. 2003년 KBS-1TV (이것이 인생이다)에 ‘사노라면 잊을 날 있으리오‘ 방영됨. 파란만장한 삶을 사회봉사와 문학을 버팀목 삼아 굳세게 살고 있다.
현재 서울시 자원봉사교육 전문 강사, 노원구 사회복지시설 운영위원 ‘한국뇌성마비 복지관’ 작문수업 봉사를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시집 <차라리 침묵하고> <가슴에 있는 사람>과 소설<스쳐간 바람>이 있으며 네 번째 작품집인 <그대의 그대가 되어>는 그가 가르친 뇌성마비 장애우 6명과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 이명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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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게 세상에 내놓은 네 번째 시집에 대한 윤 시인의 애정은 각별하기만 하다. 인세의 10%를 장애우를 위한 기금으로 내놓도록 출판사와 계약서에 명시해 놓았다. 그의 꿈은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인격과 자질을 갖추도록 교육하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전문교육 시설‘을 세우는 것이다.
또 네 번째 시집을 통해 맺어진 6명의 자녀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는 자신에게 글쓰기를 배우려는 학생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그를 위해 시간을 비워 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그는 남은 그의 생애를 그들에게 담보하기로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런 충고도 잊지 않았다.
“서너 달 혹은 일년도 안 되게 자원봉사를 한 뒤 어디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거나 한 적이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적어도 3년 이상 지속적으로 봉사를 한 뒤에야 비로소 봉사를 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봅니다. 아, 이건 제 개인적인 기준이에요.“
지금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제자들과 함께 한 처녀작 시집인 <그대의 그대가 되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더 많은 이들이 뇌성마비 장애우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가져 주는 것이다. 그의 작고 소박한 꿈이 이루어져 그들의 사랑스런 제자들의 얼굴에 늘 기쁨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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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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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명옥 |
올해 39세인 김영자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다. 그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지금은 언니네 집에서 지낸다. 뒤늦게 공부에 빠진 그의 꿈은 시인.
그리운 엄마
목 놓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그래도 나는 가끔 하늘을 향해 소리쳐 부른다
하늘에서 늘 나를 지켜보고 계실 우리엄마 너무 보고 싶어 엄마에게로 가고 싶다 엄마는 영혼 구름이 되어 비로 나에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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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수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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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명옥 |
올해 34세인 권수애씨. 38Kg 밖에 안 되는 가냘픈 몸으로 남양주시에서 중계동 까지 2~3시간 거리를 오가기엔 1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그는 1급장애인으로 수년간 대입검정고시에 도전, 3과목을 남겨두고 모두 합격한 상태이다.
사진
난 사진 찍기가 싫다 사진만 찍으면 내 몸이 너무 긴장이 되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그걸 이기려고 사진 찍을 일이 있으면 꾹 참고 찍는 편이다
아무리 뒤틀려도 내 몸이니까 너무 거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참고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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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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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명옥 |
올해 29살이 된 홍영희씨. 장애가 있지만 성격이 밝고 명랑하며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은 고등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희망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복지관에 나와서 공부를 하며 나에게도 좋은 희망이 많이 생겼다
컴퓨터도 배우고 글 쓰는 것도 배우고 또 다른 공부도 많이 배운다
배울 때는 힘들어도 배우고 나면 참 기쁘고 신난다
그래서 희망은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나에게도 시인이 되고 싶은 꿈과 희망이 있다 |
첫댓글 시집을 한권 사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하신 윤경숙 시인님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_()_
모두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