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고품 거래 멀리 갈 필요 있나요, 앱 하나로, 동네서 다 됩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01호(2019. 12.15)
김용현(경제97-03) 당근마켓 공동대표
1000만 사용자 앱 ‘당근마켓’ - 거래 신뢰성·편이성 높여 인기
“만족스러운 중고거래는 뿌듯함을 느끼게 합니다. 같은 물건을 싸게 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원 절약과 환경보전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죠. 돈 때문이 아니라 바람직한 가치를 실천하는 한 방법으로서 중고거래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당근마켓’은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이렇듯 새로운 소비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그 시스템과 디자인을 똑같이 베껴 화제가 된 중소기업 앱이 있다. 같은 동네 주민 간 직거래를 표방, 중고거래의 신뢰성과 편리성을 동시에 충족시킨 당근마켓이 바로 그것. 김용현(경제97-03) 공동대표는 이번 카피캣 논란을 계기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사용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8일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당근마켓 휴게실에서 김용현 동문을 만났다.
“유저인터페이스 즉 UI와 관련한 디자인 특허는 버튼 하나의 위치만 바꿔도 피해갈 수 있습니다. 삼성 애플이 아니고서야 특허등록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실효성 또한 극히 미미하죠. 결국 문화의 힘으로 극복해야 될 과제라고 생각해요. 법적 처벌보단 양심에 거리껴 스스로 자제하는, 그런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김 동문의 비전 또한 문화와 맞닿아 있다. ‘당신 근처의 마켓’을 뜻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당근마켓은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면서 몰락한 오프라인 지역 상권의 재건을 지향한다. 누적가입자 수 1,000만명, 월평균 거래액 600억원에 달하는 방대한 거래 규모를 기반으로 로컬 광고시장의 재창출을 꾀하고 있다.
“대기업의 전국 단위 광고를 받으면 빨리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그건 앱의 트래픽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저희는 시군구 단위 지역 소상공인의 광고만 받습니다. 집 근처 업체 광고는 사용자의 생활에
직접 스며들어 거부감은 줄고 정보성은 커지죠. 당근마켓에 게시된 지역광고의 클릭률은 11%에 달합니다. 0.03%에 그치는 인터넷 배너광고의 클릭률과는 차원이 다르죠. 4차 산업혁명기에도 전단지 외엔 마땅한 홍보 수단이 없는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쉽고 빠른 마케팅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내는 방법도 무척 쉽다. 앱의 초기 화면에서 ‘글쓰기’를 누른 후 ‘동네홍보’를 클릭, 블로그 하듯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하면 끝이다. 광고가 노출되는 지역 범위와 기간을 광고주가 직접 선택할 수 있고, 몇 명의 사용자에게 관심을 받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미용실·카센터·안경점·퀵서비스·식당 등 과거 벼룩시장이나 상가 수첩 등에 실렸을 만한 생활밀착형 광고물들이 올라온다.
김 동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온라인의 편의성과 오프라인의 친밀함을 융합시켜 지역 커뮤니티를 복원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핵가족화와 주거형태의 변화로 인해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우리나라엔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가까이 사는 사람들과 친밀히 교류했습니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며 서로 돕는 문화가 건재했을 땐 지금처럼 아이 맡길 데가 없어서 학원을 돌릴 이유가 없었죠. 당근마켓은 한 아파트단지 내에서 모든 중고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현재 400만명인 월평균 방문자 수가 1,000만이 되고 2,000만이 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좁은 지역 안에서 거래가 거듭되면 자신의 시간이나 재능을 함께 나누려는 지원자가 나타나고, 이들을 바탕으로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지역 문화가 바뀔 것이라는 게 김 동문의 복안이다. 버려질 물품이 새 주인을 만나 다시 쓰이니,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
알토스벤처스·굿워터캐피탈·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누적 투자액 480억원을 기록했지만, 당근마켓 대표로서의 김 동문의 비전은 이렇듯 세속적인 성공에만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큰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당근마켓을 알리기 위해 아파트단지를 돌며 전단지를 붙이던 때도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무역업에 종사하던 그는 애초에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새로운 광고시장을 창출하고 전통적 지역문화를 복원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김동문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가능성을 엿보게 된 장기적 비전”이라고 답했다.
“2007년 네이버, 2011년 카카오에 입사해 4년씩 근무하면서 사업 아이템을 물색했습니다. 당근마켓은 IT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작은 단지에서 시작됐어요. 이제 막 출시된 중고거래 서비스가 ‘중고나라’를 이길 순 없으니 작은 틈새시장부터 잡아나가야 했죠. 판교 분당 수지 동탄 순으로 한 땀 한 땀 서비스 지역을
넓혀가다가 출시 3년 만인 2018년 전국적인 서비스망을 구축했습니다. 중고거래의 꽃은 뜻밖에도 유아용품이었어요. 값은 비싼데 사용주기는 짧아 새것 같은 중고물품이 차고 넘쳤죠.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편하고 믿을 수 있는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입 소문을 타면서 급성장했습니다.”
이웃 간 직거래를 위시하여, 거래 후기를 기반으로 한 ‘매너온도’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됐고, 무료 나눔·친구 초대·매일 접속 등으로 획득되는 ‘활동배지’는 모으는 재미와 함께 은근한 자부심을 선사한다.
찜 해둔 물품의 가격이 낮아지면 실시간으로 알림을 받을 수 있고, 구매자가 생각하는 적정가를 판매자에게 제안해볼 수도 있다. 중고거래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변수를 직관적인 UI 디자인으로 구현해 중 장년층한테도 인기가 좋다. 매월 11일엔 감성을 자극하는 무료 나눔 이벤트로 사용자들의 충성심을 고양시킨다.
“조만간 머신러닝 기술을 확대 적용해 당근마켓의 모든 중고물품과 지역홍보 게시물을 개인맞춤형으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앱의 사용 이력을 수집·분석함으로써 개인정보 없이도 사용자의 성별이나 연령대, 취향 등을 확률적으로 알아낼 수 있죠. 이를 통해 지역 기반 서비스의 오용을 방지하고, 더욱 정밀한 매칭으로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려고 합니다. 집에 안 쓰는 물건 많으시죠? 당근마켓 깔고 글 올려보세요.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느끼실 겁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