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티븐 허프, Stephen Hough (November 22,1961 - )
영국 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는 음악의 유행이나 일시적인 경향을 초월하는 비범한 비전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세계음악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2001년 맥아더 펠로우쉽(MacArthur Fellowship, 당대에 과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특별한 공헌을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음악적 공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사카리 오라모(Sakari Oramo, 1965- )가 지휘하는 시티 오브 버밍햄 심포니와 녹음한 생상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하이페리온)으로 “골드 디스크”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음반은 2001년에 그라모폰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프랑스 황금 디아파종상을 수상하였고,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폭넓은 찬사와 사랑을 받은 명반이다.
카라얀의 말러 <교향곡 9번>, 존 엘리엇 가디너 경의 바흐 <칸타타> 등 쟁쟁한 음반을 제치고 “골드 디스크”를 수상한 이 음반에 대해, 저명한 평론가 리처드 모리슨은 “생상 <피아노 협주곡>을 스티븐 허프처럼 열정을 가득 담아 매력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를 생각해 보기 어렵다”고 극찬하였다.
또한 스티븐은 올해(2008년) 세계 음악계의 권위있는 잡지인 영국 그라모폰지가 수여하는 “골드 디스크(Gold Disc)”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골드 디스크”상은 그라모폰상 30주년을 맞아 지난 30년간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던 음반을 대상으로 가장 뛰어나며 인기있는 음반에게 주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특별상이다.
스티븐 허프는 1961년 11월 22일, 영국 위랄반도의 헤스월(Heswall)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부친의 고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민권을 얻었다.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1978년 "BBC Young Musician of the Year Competition" 결선에서 피아노부문에서 우승하였다.
그리고 1982년, 영국의 테렌스 쥬드 상(Terence Judd Award)을 받았다.
198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나움버그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Naumburg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에서 영예의 1등을 함으로써 국제적으로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그는 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1937- ), 에르네스트 폰 도흐나니(Ernest von Dohnáni, 1877-1960), 샤를 뒤투와(Charles Dutoit, 1936- ),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1953- ),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2014), 오스모 벤스케(Osmo Vanska, 1953- ) 등의 지휘자가 이끄는 미국과 영국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하였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연주 홀에서 정기적으로 리사이틀과 콘서트를 열며, 유럽의 잘츠부르크, 에든버러, 올드버러 등의 페스티벌 과 미국의 모스틀리 모차르트(뉴욕),아스펜, 라비니아, 탱글우드, 블로섬, 헐리우드 볼 등의 페스티벌에 게스트로 자주 참여해 왔다.
특히 런던의 BBC 프롬스에서는 지금까지 12번 이상 초청되어 연주했다.
스티븐 허프는 최근 뉴욕 필하모닉 외에, 보스톤 심포니,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디트로이트, 신시내티, 토론토, 휴스턴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해왔다.
2006년과 2007년 시즌에는 클리블랜드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루이스, 몬트리올 심포니와 협연했다.
그리고 2007 년 6월, 베를린 발트뷔네 콘서트에서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하며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1955- ) 경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첫 협연무대를 가졌다.
스티븐은 이번 시즌에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함께 협연하였으며,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Vladimir Jurowski, 1972- )가 이끄는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미국을 투어중에 있다.
그는 미국 아스펜, 카네기 젠켈 홀에서의 리사이틀과, 6월 1일, 한국에서의 연주회를 비롯하여 아시아 지역 리사이틀 투어와 미국 인터내셔널 길모어 키보드 페스티벌 등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열정적인 작가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스티븐은 학구적인 음반내지와 많은 음악 관련 기사를 저술해 왔다.
또한, 그의 신학적 관심은 <The Bible as Prayer>라는 책으로 2007년 봄 영국에서 편찬되기도 했다.
2007년 3월, 스티븐은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Steven Isserlis, 1958- )와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자신의 첼로 협주곡 <The Loneliest Wilderness> 초연을 지휘했다.
같은 해, 그가 작곡한 2개의 미사곡 중 <Mass of Innocence and Experience>는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서, <Missa Mirabilis>는 웨스트 민스터 대성당 에서 각각 초연되었다.
미국 작곡가 조지 숀타키스(George Tsontakis, 1951- ), 로웰 리버만(Lowell Liebermann, 1961- ) 그리고 영국 작곡가 제임스 맥밀란(James MacMillan, 1959- )은 현대 음악을 연주하고 증진하는데 크게 헌신한 스티븐 허프를 위해 신곡 위촉 협주곡을 이미 써왔거나 쓰고 있다.
그리고 스티븐 허프는 널리 알려진 작곡가의 숨은 피아노 명곡이나 익숙치 않은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발굴하는데 헌신해왔고, 지금까지 40장 이상의 음반을 녹음했다.
대부분의 음반이 그라모폰상(1996년과 2003년 ‘올해의 음반’ 등 포함 7회 수상), 독일 음반비평가상, 프랑스 황금 디아파종, 르 몽드 드 라 뮈지크에서 수상했으며, 여러 차례 미국 그래미 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2005년 앤드류 리튼(Andrew Litton, 1959- )이 이끄는 달라스 심포니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실황으로 레코딩한 음반은 하이페리언 역사상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이 판매된 음반으로 기록 되었다.
그의 1987년 훔멜 협주곡 음반은 현재까지도 샨도스 레이블의 베스트 셀링 음반이다.
가장 최신 허프의 레코딩으로는 2007년에 발매된 타카치 콰르텟(Takács Quartet)과 함께한 브람스 피아노 퀸텟 음반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허프는 모차르트와 쇼팽의 솔로 음반뿐만 아니라,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함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곡 전곡을 실황으로 레코딩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려 7회(골드 디스크 포함 8회)의 그라모폰상을 받은 ‘단골’ 수상자 스티븐 허프의 다음 앨범은 2009년 3월 <Stephen Hough in Recital>(하이페리온)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될 예정이다.
■ 참고
*. 스테판 허프 / - 글:이재준 -
그의 피아니즘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초절기교를 뽐내다가도 문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심에 잠기고,음악에 취해 멜로디를 탐닉하다가도 곧 포효하며 무서울 정도로 몰아 부친다.
완벽한 테크닉을 지녔지만 테크닉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려는 과시적 용모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다 그렇다고? 천만에.
허프처럼 레퍼토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양한 표현을 일구어내는 피아니스트는 드물다.
달콤한 맛을 내는 고전적인 훔멜에서부터 몽푸의 시큼한 멜로디의 편린까지,그는 경험 많은 요리사처럼 가지각색의 재료들이 지닌 맛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음악인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성공할 수 있는 요건 가운데 레코딩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순회 공연이 비교적 용이한 피아니스트들도 예외는 아니다.
들판에 핀 무수한 잡초 중 진정한 화초를 가리기 위해 지구촌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음반상의 연주를 그 잣대로 삼는다.
특히 신인의 경우에는 유력지들의 평가가 그들의 미래 예보를 '맑음' 혹은 '흐림,때때로 비'로 결정짓는 중대한 인자이며,결과적으로 그들이 갖게 될 명성을 좌지우지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음반의 평가와 그가 얻는 명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제 얘기할 영국의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가 그런 경우를 잘 설명해준다.
1961년 영국 중부 체셔 지방에서 태어난 허프는 1983년 멘체스터 왕립 음악원 졸업 직후 출전한 나움부르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소위 말해 '명반 제조기'이다.
90년대 이후 내놓은 음반들은 하나 같이 '주옥'이었다.
가장 권위 있다고 인정되는 그라모폰 상도 세 번이나 수상했고,후보에 오른 것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인지도는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영국 밖에서는 그다지 유명세를 타지 못한다.
그보다 조금 나이가 어린 부닌과 비교를 해보자.
부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사실 부닌은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변변한 명연 하나 음반에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인기는 여느 피아니스트를 능가한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청소년 팬들까지 몰고 다닐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겨우 두 번 찾았을 뿐인 우리 나라에서도 평판이 자자한 것을 보면 그는 사람을 끄는 어떤 힘을 지녔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있는 해석은 청중 몰이의 비결 밑바탕에 그가 쇼팽을 친다는 사실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인기에는 대중적인 속성이 있다.
그 때문에 연주인의 인기는 그가 가진 레퍼토리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부닌이 드뷔시나 라벨의 일인자였다고 해도 청중의 우상이 될 수 있었을까?
훔멜 피아노 협주곡의 초석이 된 데뷔반
스테판 허프를 눈여겨 보아온 독자라면 그가 남다른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87년 샨도스에서의 첫 레코딩에서 훔멜을 선택했을 때,많은 이들은 스물여섯 살 젊디젊은 신인의 당돌함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것은 모리스 앙드레가 작곡가의 트럼펫 협주곡을 세계적인 레퍼토리로 만든 것과 맞먹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훔멜은 창의적인 영감을 받아 정갈하고 섬세한 멜로디를 써놓았고 허프는 '참을 수 없는 기교의 가벼움'으로 그것을 표현하였다.
허프의 데뷔 앨범은 이후 등장한 훔멜의 피아노 협주곡 녹음의 초석 역할을 했다.
훔멜의 서거 150주년에 때맞춰 녹음한 두 개의 협주곡으로 허프는 같은해 그라모폰 상을 움켜쥐면서 그야말로 기분 좋은 레코딩 데뷔식을 치뤘다.
이후 허프의 연주 인생은 대중 레퍼토리와 숨어있는 명곡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점철되기 시작했다.
..."저는 우리가 한동안 너무 하나의 레퍼토리 권에만 매달려 왔음을 압니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우리는 지독하게 심각해졌죠.
하지만 제 생각엔 한 쪽에 집착 하게 되면 다른 쪽에 필요한 피아니즘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각 작품들은 그 자체에 필요한 표현력을 개별적으로 담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만약 당신이 베토벤,모차르트,슈베르트,브람스까지로 식이요법을 조절한다면,라흐마니노프나 고도프스키,심지어는 쇼팽과 리스트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피아니즘의 개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첫 음반 직후 버진 클래식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허프는 '피아노 앨범'이라는 소품집 형식의 음반을 기획했다.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반반씩 녹음한 수록곡은 맥다우얼,고도프스키,파데레프스키,가브릴로비치,로젠탈,도흐나니 등 여러 작곡가의 잡다한 소품들이었다.
연주회에서 굵직한 정규 프로그램 뒤에 간단히 이어지는 앙코르용 작품들이다.
이들이 구조적인 조형미나 심오한 내용의 깊이를 담았다고는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허프는 빈틈없는 기교와 섬세한 터치,특유의 본능적인 루바토 감각을 살려 짧은 시간 안에 응축돼 있는 작곡가의 영감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도흐나니의 '카프리치오 f단조'에서 들리는 반짝이는 재치는 훔멜의 3악장에서 들려주었던 절묘한 기교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흔히 연습용으로 치부해 버릴 재료들을 모아 독집 앨범을 꾸민 이유는 앞서 「그라모폰」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다양한 피아니즘의 습득을 위해서이다.
..."모차르트는 당신의 라흐마니노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편식하지 않고 섭취한 음악성이 서로에게 도움된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음반과는 달리 연주회장에서의 활동은 훨씬 폭넓은 레퍼토리 범위를 자랑했다.
90년 초에 잇단 런던 리사이틀의 주제는 모차르트 협주곡이었고,베토벤과 슈베르트도 다수 들어 있다.
위그모어 홀에서 가졌던 쇼팽과 브람스의 발라드 연주회는 일간지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좋은 평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결국 몇 개의 앨범을 통해 사람들은 허프를 '낭만주의 비르투오조'로 인식했다.
그가 녹음한 브람스와 슈만의 진지한 사색보다는 리스트나 브리튼이 보여주는 숨가쁜 테크닉을 더 많이 기억했다.
그에 대해 제한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명 레퍼토리에 너무나 많은 경쟁자가 몰려 있었고,그 치열한 레이스에서 허프가 반듯하고 모범적인 연주를 빚어냈을지언정 다른 이와 차별되는 독특한 색깔을 연출하지 못했던 요인이 크다.
쇼팽이나 리스트 등 스탠더드 급 비르투오조 레퍼토리에서도 허프는 같은 시기 런던에 출연한 니콜라이 데미덴코의 그늘에 가려졌다.
하이피리언과의 뜻깊은 만남
91년 후반 무렵 허프는 버진과의 전속 계약을 마감했다.
콘서트에 전념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간은 의외로 꽤 길게 이어졌다.
수십 회의 순회 공연보다 한 장의 음반 출연이 더 큰 홍보 효과를 갖는 세상이다.
3년 동안 앨범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뛰는 피아니스트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훔멜로 새겨졌던 허프의 이름은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져 갔다.
그런데 그라모폰 상의 '약발'이 거의 다 끝나가는 95년 11월,허프는 돌연 하이피리언이라는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음반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이피리언이 기획하는 일련의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11번째 발매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 잊혀졌거나 소외된 피아노 협주곡의 발굴을 목적으로 삼은 이 시리즈에서 허프가 맡은 작곡가는 프란츠 크사비어 샤르벤카와 에밀 폰 자우어.
이들은 낭만주의의 전통을 20세기에 이어준 대가 피아니스트들로서,스스로 많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허프가 새로 들려주는 작곡가-피아니스트들의 두 협주곡은 아주 안정되어 있다.
올이 단단하게 여문 굵은 터치가 그 기저를 형성하고 곳곳에 서정적인 프레이징을 심어놓으면서 낭만주의의 양극을 적절히 오고 간다.
작곡가가 피아노의 달인이었다는 점에서 작품에 나타난 외적인 화려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칫 조악한 기교의 장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작품에 격조와 무게를 실은 것은 허프의 재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리스트의 애제자였던 자우어의 1번 협주곡을 들으면 나이 서른을 지나면서 허프의 음악성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외향적인 1악장과 종악장에서 천박하지 않은 기교로 긴장을 조성하고,내성적인 카바티나 악장에서 쇼팽을 연상시키는 꾸밈없는 시정으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솜씨는 대가의 경지에 성큼 다가선 느낌을 준다.
「그라모폰」은 이 음반에 대해 "초기 그라모폰 수상작인 훔멜을 능가한다"고 평했으며 이듬해 그라모폰 상 '협주곡과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동시에 수여했다.
이 앨범은 레퍼토리에 대해 허프가 지닌 일관된 생각을 반영한다.
'균형있는 피아니즘의 발전'이라는 데뷔 시절 가졌던 음악관은 하이피리언과 함께 맞이한 제 2의 전성기에 더욱 빛을 발하며 내실있게 다져졌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튜디오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의 행보가 철학적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신중하다는 점.
과거에는 모차르트나 브람스의 협주곡과 같은 인기 곡이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실내악을 편안하게 녹음했었다.
그러나 하이피리언과 만난 이후 그의 레퍼토리는 더욱 한정되었고,진정 자신이 최고로 재현할 수 있는 곡에 한해서만 냉정하게 녹음으로 선택되었다.
가장 많은 제의가 들어오는 라흐마니노프를 계속 미룬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프는 곧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그 결과 허프가 소개하는 작곡가들은, 샤르벤카와 자우어의 경우도 그랬지만,음악사의 음지에 속한 '희귀한' 인물로 이어졌다.
하이피리언에서 잇따라 발표한 음반은 그런 점에서 또 하나의 개가를 올렸다.
허프는 자신이 태어나던 해 죽은 영국의 작곡가 요크 보웬(1884-1961)의 피아노 작품들과,자신과 같은 해에 태어난 미국의 신예 현대 음악가 로웰 리버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세계 최초로 녹음하였다.
특히 많은 찬사를 받은 보웬의 경우 몇 개의 곡이 녹음된 적이 있지만 체계적으로 뛰어난 수준의 연주를 담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최초 레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웬 역시 세기초 뛰어난 작곡가-피아니스트로서 허프의 입맛에 맞아 맞아떨어진 인물이다.
허프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를 잊혀진 음악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그 사이 활동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 애써왔다.
보웬의 작품집은 그 맥락이 같다.
허프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긴 순수한 서정을 잘 살림으로써(특히 13편의 전주곡들),보웬을 당당히 근대 영국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무엇보다 허프는 이 앨범으로 때로 자신에게 멍에가 되었던 비르투오조 연주가라는 성격 규정에서 탈피하게 됨으로써,보다 원숙한 연주자로서의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97년 발표한 페데리코 몽푸의 작품집도 보웬과 같은 개념이다.
여기 실린 스페인의 작곡가 몽푸의 '노래와 춤곡'은 어쩌면 기교 면에서 보웬보다 더 쉬울지 모른다.
..."몽푸를 위대한 작곡가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결코 2류 작곡가로 등급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의 보이스는 너무나 개성있고, 음악은 괴팍하기까지 하지만,그는 그러한 음악적 의도를 완벽하게 달성했습니다.
2류 작곡가는 자신이 설정한 이상에 도달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허프가 터득한 몽푸는 기교로 말할 수 있는 작곡가가 아니다.
간단한 한 소절의 프레이즈에도 이국적인 색채와 민요적인 색채를 배합시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독특한 어법을 구사하는 미식가들의 작곡가이다.
허프는 과거 미켈란젤리의 연주를 능가하는 이상적인 해석으로 몽푸의 몽환적인 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많은 평론가, 애호가들의 찬사와 세 번째 그라모폰 상이었다.
감춰진 비경을 들추는 능력
음반으로 살펴본 그의 피아니즘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우리는 보통 브렌델을 독일의 중후한 멋,아르헤리치를 여성답지 않게 선이 굵은 타건,쉬프나 페라이어를 명징한 톤,데미덴코를 폭풍 같은 기교와 연관지어 생각한다.
하지만 허프의 레퍼토리와 연주는 딱히 이와 같은 결정적인 심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초절기교를 뽐내다가도 문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심에 잠기고,음악에 취해 멜로디를 탐닉하다가도 곧 포효하며 무서울 정도로 몰아 부친다.
완벽한 테크닉을 지녔지만 테크닉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려는 과시적 용모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다 그렇다고? 천만에.
허프처럼 레퍼토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양한 표현을 일구어내는 피아니스트는 드물다.
달콤한 맛을 내는 고전적인 훔멜에서부터 몽푸의 시큼한 멜로디의 편린까지,그는 경험 많은 요리사처럼 가지각색의 재료들이 지닌 맛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는 무명 작곡가만을 전전하며 호평을 얻지 않았다.
멘델스존의 두 협주곡(Hyperion) 이나 브람스의 협주곡,리스트의 피아노곡집(Virgin)에서 낭만주의 주류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굳이 허프를 추상화하려 한다면,'제네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특징을 고루 갖춘 피아니스트 정도가 어울릴 듯하다.
해외 음악지들은 그의 음반을 리뷰 하면서 한결같이 'revelation(啓示)'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허프는 어떤 레퍼토리를 맡건 작곡가의 의도와 음악의 비경을 들추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주 듣던 음악으로부터 새로운 인상을 전해주는 반면,꼭꼭 숨겨졌던 음악으로부터는 친근한 요소를 부각시켜 마치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과 같은 친숙함을 전해준다.
그 '계시적인' 능력은 앞서 말했듯이 허프가 음악 세계의 자양분을 고루 섭취했기 때문에 갖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정된 인기를 누리고 소수의 열광적인 팬을 갖는 따위의 문제는 그의 음악 수준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제 40줄을 바라보는 허프의 앞날에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가능의 시간이 열려있다.
[출처] ■ 스티븐 허프, Stephen Hough (1961 - )|작성자 빈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