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641(2022.7.2.)
■ 문학관으로 초대합니다_김수영문학관_서울시 도봉구 2013년11월27일 개관
■ 권두언 신달자_사과 한 알 속에 태양이 있다
어느 모임에서 어떤 분이 말했다. 봄도 다 갔다. 3월초의 맵싸한 바람이 부는 날인데 곧 여름
이 온다는 뜻이다. 곧 덥다고 냉면집 앞에 줄을 설 거야.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는가. 지난해
9월에 막 들어섰을 때 아, 올해도 다 갔다 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다.
아직 거의 절반이 남았는데 무슨 한 해가 다 갔다는 말인가. 이런 경우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
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로 시간을 너무 폭력적으로 당겨 버린다. 자신을 과거
나 미래에 두길 좋아하고 현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현ㅅ리이 고통스러워 그런 것일
까. 이상적인 상상세계에 빠져 있는 것일까?
내 친구 하나는 오후 7시만 되면 오늘 하루도 다 갔다 라고 말하고, 어느 후배는 50세인데
80이 다 되어 간다고 노래처럼 늘 말한다. 그 중에서도 아직 여름 햇살이 남아 있는데 하루가
싹 가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짜증스럽다. 아니 앞으로 5시간이 남았는데 하루가 다 갔다
니? 5시간이면 역사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시인은 명작 하나를, 화가는 명작의 밑그림을 거
의 그릴 수도 있는 시간이다.
60세가 된 사람이 시간을 확 당겨 아, 이젠 다 살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고 있는 것도
보았다. 불교에는 일일일야 만생만사라는 말이 있다. 하루 낮 하룻밤에도 만 번 태어나고 만
번 죽는다는 뜻이다.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린 시간성에 대해 너무 불성실하다. 한 개를 한두 개라고 하고 세 개를 서너 개라고 말하기
도 하지 않는가. 널 좋아해 가 아니라 널 좋아하는 것 같다 라고 불투명하게 진실을 고백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긴 하다. 불확실을 하나의 희망 징조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요즘 따라 저리게 느낀다. 오늘 바로 지금이야
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게 되고 창밖 녹음을 감사하게 바
라본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먼저 핀 봄꽃은 복수초였다. 몸을 흔들어 스스로 열을 내어 얼음을 털어
내며 솟아 피어오르는 노오란 꽃이다. 주로 가까운 산에서 피어난다. 뒤를 이어 산수유 영춘
화 생강나무 히어리가 피어나고, 매화가 요염하게 웃기 시작하면 다시 개나리 목련 벚꽃이 피
어난다. 그 안에도 입술을 간질이는 풀꽃들이 동네 골목 주변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 집 작은 뜰에는 지금 수선화과 노오랗게 피어 있다. 조화처럼 손으로 만든 것 같은 수선
화는 고맙게도 참 오래도 간다. 아침마다 나는 인사를 한다. 고마워! 수선화도 내게 인사를 한
다. 그래 힘내! 뜰에 얼굴을 내미는 파란 새싹들의 저 눈부신 생명력은 하늘을 이고 바람에
나부낀다. 눈엽이었다가 신록이었다가 차차 녹음이 될 것이다.
지난겨울에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어쩔 뻔했는가. 이토록 어여쁘고 아름다운 꽃들을 못
보았을 지난겨울의 죽음을 피한 것만도 얼마나 행운인가.
감사하고 감사하여라.
구상 선생님의 시 한 알의 사과 속에는 에는 한 알의 사과 속에는 구름이 논다/한 알의 사과
속에는 대지가 숨쉰다/한 알의 사과 속에는 태양이 불 탄다라고 했다. 한 알의 사과 속에 모
든 자연이 다 숨어 있다면 우리들의 1초 시간에도 기적이 숨어 있는 것이다.
삶이란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찰나라는 말이 그래서 섬뜩할 정도다. 과거는 지
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머무는
것일까. 그것이 종교가 지적하는 인간의 한결같은 지적이지 않겠는가. 마음을 현재에 머물게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정념수행이라고 한다. 념은 현재를 뜻하는 금과 마음을 뜻하는 심이 합
쳐진 말이라고 읽었다. 곧 정념이란 마음이 현재에 머무는 것이란다. 흔히 마음챙김이라 부른
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를 사랑하기 위해서 중국 송대 성리학자인 장사숙의 좌우명
하나가 떠오른다. 견선여기출 견악여기병이라. 착한 일을 보거든 자기가 한 것처럼 기뻐하고
나쁜 일을 보거든 자기가 한 것처럼 아파하라는 말이 발끝을 울린다. 남의 아픔에 귀 기울여
야 하며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오늘 하루도 참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생각해 보면 너무 많다. 반성해야 할 성찰도 많고 돈이 안
드는 따뜻한 말도 너무 미루고 왔다. 물건을 정리해야 하고 말로서 못할 사연이 있다면 편지
쓸 곳도 참으로 많다. 더욱 자기 일이 있는 시인이나 작가는 또한 얼마나 일이 많은가.
그런데 나는 시간이 많지도 않으면서 자꾸 내일로 미룬다. 내가 잘하는 것은 감탄과 감동이
다. 혼자 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한 사람으로 더불어 하는 일에 좀 더 마음을 베풀어
야 하는데 그건 참 모자랐다.
지금부터 좀 더 잘하고 싶은 것은 말이다. 형식적이지 않고 진심을 담은 말은 생각보다 어렵
다. 늘 하는 말인데도 다듬어지지가 않는다. 말이 가장 쉽고 말이 가장 어렵다. 하루 내내 하
는 말 중에 형식적인 말이 거의 대부분이다. 나이도 있지 않는가.
좀 더 사랑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 말하고 싶다. 이제 겨우 이것을 말하는 자신이 부끄럽기 짝
이 없다. 나는 사무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 사무원도 아닌데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보내라. 그 사람을 수호할 말의 부적을 보내라. 썩지 않을 것을 보내
고 싶다면 말을 보내라. 와카마쓰 에이스케가 말의 선물에서 한 말이다.
말은 시간과 같아서 그 말을 전하는 대상의 마음에 나이테처럼 그어진다. 가능한 한마디에서
조차 그 사람의 마음을 더듬는 말의 온도를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서로 서운
하다. 나도 그런 순간들 가령 얼마나 아파? 하고 말해 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80이 되어서야 겨우 이제사...지금은 저녁을 먹는 시간...오늘도 많이 남았다.
■ 이달의 시
■ 이달의 시조
■ 가상 인터뷰_이근삼 희곡작가_이근삼 희곡작가를 만나다(박정기)
■ 이 시대 창작의 산실_박종철 시인_창작산실_드러난 비밀의 장소/무엇을 쓰고 있나_비밀의
장소에서 만났던 비밀 아닌 것들/대표작_실상사에서외 4편
달동네의 아침
다세대 주택 지붕 위의 안테나를 빨랫줄로 동여맨
달동네의 아침이 안개 속에 잠긴다
가만히 흔들려서 해저처럼 흐려진 골목에
고개 너머 공동묘지 분위기로 우울증이 번진다
하늘은 가까워도 천국은 멀어지는 듯
살껍질 뭉개진 언덕 아래
불면으로 날을 새운 미명이 메운 재처럼 깔려 있다
저승 감각의 현수막들이 풀리지 않는 암호처럼 펄럭인다
모래바람 맴도는 마당에선
울지 않는 낙타의 눈물같이 번지는 징소리
사막같은 마을에
사브라는 언제 피어날 것인가?
사그라진 불씨, 아직 숨어 있을지 몰라
매운 재 뒤척이며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는 아침
빨랫줄에 걸린 촉촉한 햇살이
미세하게 붉은 꽃잎으로 흩날리는 동안
서서히 무지개의 꿈이 채색되고 있었다
■ 나의 등단 이야기_달콤한 깔딱고개_문무학
■ 이달의 소설
■ 이달의 수필
■ 이달의 동시
■ 이달의 동화
■ 이달의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