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국보문학' 2019년 5월호에 참가하려고 글(원고) 하나를 제출했다.
2018년 8월 1일의 일기를 8 ~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듬으려니 어색하고, 잘못하고, 틀린 곳이 많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그간 숱하게 다듬고 고쳤는데도 여전히 눈에 거슬리는 낱말, 문구가 뜨인다. 때로는 다듬는 도중에 엉뚱하게 다른 글자로 바뀌는 실수도 생겼다.
'다음' 인터넷이 제공하는 '한국어 맞춤법'으로 검색해도 75%밖에 걸러지지 않는다.
나머지는 다른 방법으로 재확인해야 했다.
동아국어대사전(오래 전에 발간된...)도 때로는 설명이 부족하기에 내가 단해서 결정해야 할 경우도 있다.
나는 퇴직한 뒤 다음날부터 시골로 내려갔다.
그때까지 혼자 살던 아흔 살의 늙은 어머니와 둘이서 살면서 텃밭 농사를 지을 때다.
서울에서 자식들과 살던 아내가 잠깐 다녀오려고 시골로 내려왔다.
아내와 함께 바람쐬러 보령지방을 일주했다.
자동차로 빠르게 운전하면서 여러 군데를 돌았으니 구경은 제대로 못하였고, 그저 한바퀴 돌았다는 데에 의미를 두었다.
제목은 '보령 한바퀴'.
'한바퀴', '한 바퀴'인지로 숱하게 따졌다.
하나, 둘, 셋... 하면서 횟수를 세는 경우에는 '한 바퀴'가 맞고, 일주(一周)하면 '한바퀴'가 맞다.
'한바퀴'이냐 '한 바퀴'이냐를 거듭 따져도...
국보문학 수필가인 '박민순' 님이 '한 바퀴'로 본다는 댓글을 달아 주셨다.
나는 그게 고마워서 '한바퀴'를 '한 바퀴'로 고쳤다가...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서 고민하다가 도로 원위치로 돌렸다.
우리말을 우리글로 쓰려면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마련이다.
국어사전은 대체로 한자어를 표제어로 삼았다.
거의 65~70%가 한자이어서 아쉬운 때가 이따금 있다.
우리말을 살려서 더 많이 사전에 수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하나의 예다.
'다다르다'의 동사를 '다달을'인지 '다다를'인 지가 헷갈렸다.
여러 차레나 고민하다가 '다달을'로 확정했는데 '박민순 수필가' 님은 '다다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말로 고마운 지적이다. '다다를'로 고쳤다.
나도 지금껏 한자어를 무심코, 많이 썼다.
딱딱한 관공서에서 오래 근무한 탓일까? 지시하고 명령하는 듯한 한자어를 많이 썼다. 이게 습관이 되었는지 위 글인 2010년에 쓴 일기에도 한자어가 많이 들어갔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무심코 한자어를 썼다.
지금도 한자어를 많이 쓴다.
하나의 예다. 위 글에서도 '저자'라는 낱말을 썼다. 저자는 책을 쓴 이다.
'저자'를 '지은이'라는 우리말로 바꿨으면 하는 박 선생님의 지적에 나는 고마워서 빙그레 웃었다.
국어사전으로 확인하니 '지은이'가 표제어로 뜬다.
그런데도 나는 또 고민했다. '지은이'일까? '지은 이'일까?
국어사전에는 '지은이'로 나왔기에 이대로 따르지만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붙여서 써도 되고, 떼어서 써도 된다고 보았다.
'지은이'라는 말 대신에 '책 쓴 이'로 바꿀 수도 있다.
내 글을 찬찬히 읽었다는 뜻으로 댓글 달아주신 박 선생님한테 고마워 한다.
문학지는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서 만드는 책이기에 발간 이전에서 어색하고, 잘못된 낱말, 문구 등을 발견하면 서로 알려주었으면 싶다.
덕분에 글 다듬으면서 공부도 더 하게 되고, 원고는 자연스럽게 다듬어져서 나중에 잘 쓴 책으로 발간될 터.
1.
며칠 전이다.
아파트 베란다 위에 있는 제라늄 화분 세 개.
흰 꽃을 피우는 제라늄을 더 증식시키고 싶어서 과도로 줄기를 살짝 베어서 흠을 냈다.
살짝 베이면 식물은 위기를 느끼고는 곁순을 내는 습성을 알기에 며칠간 제라늄 상태를 살피면서 칼집을 조금씩 더 깊게 냈다.
칼질하면서도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뤘는데도 칼날이 세게 들어갔나 보다.
어쩌다 보니 줄기가 꺾여 부려져서 떨어졌다.
아내가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에 가다가 무심코 건드렸을까?
열어제킨 유리창문으로 바람이 세게 몰아닥쳤을까?
꽃이 잘 피고 있는데...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변질되었다. 부러진 줄기를 살피면서 네 토막을 냈다. 무성한 잎줄기를 뜯어내고는 토막을 화분에 살짝 묻고는 물을 부었다. 줄기에서 새 뿌리가 돋아나도록.
그런데 무엇인가 아쉽다.
분명히 여러 토막으로 잘랐는데도 한 토막이 안 보였다. 그게 아쉬워서 내가 작업한 주위를 여러 차례, 며칠간 눈여겨 보았으나 눈에는 뜨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엇인가 미진하고...
오늘 아침에 화분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발견했다.
일전에 잃어버린 제라늄 줄기 하나.
다른 화초 잎 위에 얹혀져 있다. 손가락으로 집어서 살펴보니 잘려진 부위는 말랐다.
그래도 살릴 수 있을 것 같기에 흙속에 줄기를 살짝 묻고는 수돗물을 조심스럽게 부어주었다.
정성을 들이면 한 달 뒤에는 새 뿌리가 날 수도 있기에.
증식하려면, 새로운 개체를 만들려면 어떤 아픔이 있어야 한다.
식물은 생존의 위기를 느끼면 후손을 남기려고 한다.
곁순을 더 많이 내고, 새 뿌리를 내고, 씨(씨앗, 중자)를 더 많이 퍼뜨리려고 한다.
나는 '식물도 감정이 있기에 느끼고, 어느 정도 지능이 있기에 생각하고, 활동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글 다듬기도 위와 같지 않을까?
오탈자를 찾아내려고 거듭 확인하다 보면 때로는 잘 보일 때가 있다.
거듭 읽다보면 우연히 오류를 발견하기도 한다.
제3자한테는 금방 눈에 뜨이는데도 글 쓴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이 내 글을 읽다가 어색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면 나는 정말로 고마워 한다.
덕분에 글 깔끔하게 다듬을 수 있으며,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글쓰기 공부를 더 한다.
1.
나는 오늘도 삼식이 남편이 되었다.
집에서 세 끼니 밥을 먹는 삼식(三食)이니 오죽이나 눈총을 받으랴 싶다.
아내가 성당 모임에 있다면서 점심 먹고 들어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더라도 아내는 바깥으로 나가서 교우들을 만나서 점심을 먹을 터.
11년 전만 해도 나는 직장 다니면서 점심은 바깥에서 먹었으나 퇴직한 뒤부터는 오로지 집밥이나 먹는다.
아내와 네 자식들은 바쁘게 사는데도 나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산다면야 세 자리 텃밭농사에 정신이 없도록 일하겠지만 서울에서야 일할 곳이 있으랴.
능력 재능도 없고, 더우기 70대 노인이 되었으니...
봄이니 시골 내려간다고 숱하게 말하면서도 아직껏 서울에서만 머문다.
붙박이 장농처럼 나는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저녁밥을 먹는데 아내가 말했다.
'성당 모임이 29년째여요. 당시 40명 쯤 되었는데 지금은 10명 정도만 만나요. 제일 나이 많은 분은 여든한 할머니어요. 월요일에 남해로 1박2일 여행 가요.'
내가 물었다.
'그거 안 가면 안 돼?'
'... ...'
아내는 아무런 대꾸도 안 했다.
남편인 내가 농담한다는 것을 알기에. 늘 그랬으니까.
다음 주 월요일, 화요일에 날씨가 좋았으면 싶다.
1.
몸은 서울에 있는데도 마음은 서해안 고향집에 가 있다.
텅 빈 낡은 함석집.
예전에는 할머니, 어머니, 우리 5남매, 일꾼아저씨가 있었다.
농사채 많아서 일꾼들이 자주 들락거렸고, 종가라서 친척 인척들이 자주 방문했기에 시골집이라도 늘 시끌벅적거렸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냥 텅 빈 채 낡아가는 집으로 변했다. 함석지붕은 녹슬고 구멍이 나고, 빗물이나 스며든다. 친인척도 멀리 떠났고.
사람이 떠나간 자리인 바깥마당, 텃밭 세 자리에는 과일나무, 꽃나무들만 가득 찼다. 일꾼조차도 구하기 힘든 산골마을이기에 이제는 나무들만 무성하다. 나무들만 제멋대로 웃자라서 눈앞을 꽉꽉 막았다.
시골 한번 다녀와야 하는데...
봄꽃인 돌단풍, 동강할미꽃, 수선화(왕수선화, 수선화, 애기수선화), 무스카리, 산벚꽃, 왕벚꽃, 개나리꽃, 조팝꽃, 동백꽃, 명자꽃 들이 저 혼자 피었다가 많이도 졌을 게다.
초여름꽃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을 게다.
햇살 받으러 시골 다녀와야 하는데.
갯바람도 맞아야 하는데...
오늘 오후에 서울 양재동 꽃시장으로 구경 나갔다.
올 들어와 처음이다.
꽃시장 안, 야외판매장에는 많은 화초와 정원수가 전시되어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기, 고추, 토마토, 상추, 곰취 등의 채소 모종도 있고.
무화과 묘목 한 그루에 20,000원.
그 작은 묘목에는 줄기 하나.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것 같다.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은 모두 같다.
종류 : 카롬브, 구트도어, 마들 렌데듀세송, 달바티에, 카도다, 술탄, 오스본 표롤디픽, 아이스 크리스탈, 브른홀름 다이아몬드, 른드드 브르도 등.
사진 속의 무화과 속살이 검츠레 하다.
다양한 무화과 열매는 맛이 각각 다를까? 어떻게, 얼마만큼?
아무래도 보온시설을 갖춰야 할 듯 싶다.
서해안 내 시골 텃밭에 있는 무화과 줄기를 잘라서 삽목하면 숱하게 묘목을 만들 수 있을 터.
야외 전시장에서 붉은 나팔꽃 형태로 핀 '만데빌라'의 넝쿨줄기가 제법 길다.
내 아파트 안에 두 포기가 있는데도 욕심이 난다.
제라늄, 페라고늄이 여러 가지 색깔로 꽃이 피었다.
내 아파트 안에도 두 종류의 제라늄이 있다. 줄기를 잘라서 몇 포기 증식 중이다.
내 아파트의 비좁은 공간을 고려하면 또 구입해서는 안 될 터.
지난해 구입했다가 재배기술 부족으로 죽인 헤베, 익소라 등도 눈에 띄었으나 모르는 체했다.
올해에는 욕심 내면 안 되니까.
비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더 이상 화분을 올려놓은 공간도 없고...
그런데도 양재동 꽃시장에 또 가서 그들을 보고 싶다.
큰 묘목, 비싼 정원수(35만 원 짜리도 잔뜩 있음)는 엄두도 못내고 그냥 눈구경이나 한다.
소형 트럭을 빌려야만 서해안 시골로 운반 가능할 만큼 크다.
키 작은 정원수, 과일나무, 화초는 사고 싶다.
자가용 뒷 트렁크에 실어서 시골로 가져간 뒤 텃밭에 심고 싶지만 지금은 서울에서만 머물고 있으니 그저 마음뿐이다.
나는 마음으로만 농사 짓는 엉터리농사꾼, 건달농사꾼이다, 서울에서는.
첫댓글 짝짝짝, 짝짝짝
박수많이 박수많이...
백야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엊그제 서울에서의
최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인상적입니다.
6살 연상이신데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이라 좋았어요.
저는 너무 권위적이거나 까탈스런 사람들은
대하는 자체가 부담이 가더라구요.
어쩌다 제가 올리는 글들, 잘 좀 지적해 주시면
달게 고치겠습니다.
경기도 오산쪽 지나가시는 길 있을 때
한 번 연락주시면 고맙겠고요.
오산 시내 한바퀴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간 만나고 싶었지요. 박 선생님을요.
저는 시골태생이라서
그냥 평범하면 제 마음이 편하지요.
그래요. 서로 댓글 달아서 어색한 부분을 지적해서 고쳐 나갔으면 합니다.
저는 적극 기대합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은 남들은 잘 보일 터.
박 선생님의 글에서 조금은 어색하다고 여겨지는 낱말, 문구에는 제 생각을 달겠습니다.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키가 더 자라는 것처럼요.
오산... 마음으로 고맙습니다.
오산이라는 지명을 보면 박 선생님이 떠오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