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불안 등의 감정이 해소되고 정화되는 것을 말하며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의 갈등을 표출하여 증상을 완화시키도록 돕기 때문에 일부 치료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문학, 연극에서는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이다.
“주인공의 비극적 종말을 본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나 상처를 언어나 행동을 통해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강박 관념을 없애고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이다.
'카타르시스'란 독자 내면에 방치된 채로 썩어가던 상처를 픽션의 비극을 통해 직면하고 비로소 하지 못했던 슬퍼함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당하는 '비극'에 공감하게 되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주인공을 옹호하며 화를 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이 정화됨을 느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화를 내고 나면 답답한 감정이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나면(또는 비극의 슬픔에 잔뜩 공감을 하고 나면) 자신 내면의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제법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카타르시스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며, 쾌적한 장식이 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의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그리스인들은 감정을 어루만져서 위로해주는 것을 '카타르시스'로 칭했는데, 이를 현대적 표현으로 나타내면 영혼을 정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인들이 예술과 관련해서 매우 일찍부터 적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문서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먼저 이를 언급하였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정의에서 “카타르시스”를 매우 간결하고도 애매하게 언급한 후 두번 다시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니체는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동정에서 벗어나기 위하거나 감정의 격렬한 방출을 통해 위험한 감정에서 자기를 정화시키기 위하기가 아니다.ㅡ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이해했지만ㅡ"
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비극의 카타르시스'를 부정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과 정신의학적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카타르시스의 가장 훌륭한 방법 중의 하나가, 음악과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