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노트와 이런저런 이야기
신은 아예 없든가, 아니면 그와 다름없는 침묵에 빠져 있다. 영화의 제목은 '요한 계시록'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가운데 마지막 봉인을 뜻한다. 따라서 현재의 인류는 제7의 봉인 앞에 서 있음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신은 존재하는가?' '무엇이 현실인가?' '응답 없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마음과 영혼에서 어떻게 악령을 쫓아낼 수 있는가?' 라는 신앙의 원론적 의문이 사슬처럼 엮여 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영화가 암시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한 시간 그 이면에 잠재하는 죽음의 그림자이다. 따라서 침묵 또는 부재하는 신에 대해 의심하는 인간의 실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이 둘 사이의 거리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하게 한다.
신의 존재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기사의 비장한 모습을 고전 양식의 화면에다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1957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씨네21 리뷰
일대 사건이다. 세계 영화사의 손꼽히는 걸작 <제7의 봉인>이 제작된 지 무려 반세기 만에 국내 개봉한다. 그간 영화제나 특별전 등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되긴 했지만 정식으로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한여름 밤의 미소> <산딸기> <화니와 알렉산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세계관을 가장 잘 요약한 작품을 고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제7의 봉인>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영화의 모든 곳에 베리만의 유산이 남겨져 있다”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말처럼 20세기를 이끈 최고의 시네아스트이자 영화계 거장들의 스승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오늘을 만든 대표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제7의 봉인’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구절로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을 일컫는다. 14세기 중엽 기사 블로크(막스 폰 시도)는 십자군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는 여정에서 죽음의 사자를 만난다. 죽음을 미루려 죽음과의 체스게임을 시작한 기사는 그렇게 얻은 소중한 시간 동안 신의 구원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흑사병이 휩쓸고 간 중세 유럽은 온통 죽음으로 가득 차 있을 뿐 그가 찾는 삶의 의미는 찾을 수 없다. 결국 신의 침묵에 괴로워하던 기사는 죽음이 이끄는 대로 미련없이 세상을 떠난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는 진지하고 우울하며 무겁고 난해하다. 200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디 앨런이 ‘무거운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란 제목으로 추도 기사를 썼을 정도이니 그 무게감을 능히 짐작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제7의 봉인>은 신의 존재와 구원의 의미,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야말로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성찰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냥 무겁고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인간의 실존을 되묻는 질문 자체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지언정 거기에 도달하는 길에는 의외로 밝고 익살스러운 면이 있다. 특히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오프닝 중 하나인 죽음과 체스를 두는 장면이나 엔딩의 죽음과의 댄스장면은 그것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지고의 가치가 있다.
걸작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10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한 이 영화는 35일 만에 촬영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혹여 이 영화의 개봉을 다소 뜬금없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는 낡았다는 인상도 지울 순 없다. 하지만 고전 걸작의 가치는 시간의 풍파에 깎여나가기는커녕 다시 꺼내볼 때마다 점점 광채를 더해간다는 점에 있다. 세월을 초월한 곳에 버티고 서서 영화의 등불이 되어준 <제7의 봉인>의 정식 개봉은 거대한 산업의 흐름에 매몰되어가는 오늘날 극장가에 진정한 영화적 가치를 일깨워줄 소중한 기회다. 글 송경원 2012-05-09
리뷰:
페스트가 창궐한 14세기 유럽, 신의 존재와 구원의 의미를 찾는 기사의 여정
14세기 중엽,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10년만에 고국 스웨덴으로 돌아왔으나 페스트가 온 나라를 휩쓸어 고국은 황폐해져 있다. 그의 종자 옌스(군나르 비욘스트란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기사는 죽음의 사자의 방문을 받는다.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사자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하고 사자는 그에 동의한다. 승산이 없는 이 내기에서 블로크가 원하는 것은 체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을 말미 삼아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기사는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마녀로 낙인이 찍힌 소녀 옆을 지키기도 하지만 그 어디에도 죽음만이 보일 뿐, 신의 구원을 찾을 수 없다. 그러던 중 기사는 광대 부부와 그들의 아기를 만나 충만한 평화를 느끼게 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동행을 자처한 기사는 자신의 시종 옌스와 그를 따라나선 여인과 일행을 이루어 길을 떠나는데…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