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요미상
올해 내가 교과 수업을 드는 학반은 3학년 자연과정 4개 반이다. 1학기 교과목 명은 ‘작문과 화법’이지만 수능과 연계된 EBS교재 국어 전 영역을 가르친다. 수업은 1주일에 10시간이다. 그렇다고 의아하게 생각 마시라. 내가 해야 할 수업은 이것뿐만이 아니라 교양으로 논술을 5 학급 각 1시간 들고, 진로를 1시간 맡았다. 그래서 1주일 16시간에다가 동아리 지도가 1시간 더 붙게 된다.
교과 교재연구는 허수히 할 수 없는지라 보름이나 한 달 뒤 지도내용까지 미리 살펴두어야 한다. 교양의 논술이나 진로는 그 때 그 때 상황 따라 내가 편집한 교재로 수업에 든다. 고사와 연관된 성어를 풀어주기도 하고 우리 고장의 전설이나 지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나중 외지로 나가거들랑 창원을 삼국유사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나오는 설화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
수업 들어 동기유발을 위해 가끔 주말에 산자락을 오르거나 들녘을 거닐면서 느낀 글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그곳에서 찍어온 들꽃 사진을 컴퓨터 화면으로 띄워 보여주었다. 내가 근무하는 교정의 수목이나 들꽃 소개도 빠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내가 적은 글과 들꽃 사진을 곁들여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들 가까이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놀라고 신기해했다.
나는 내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다. 아직 뒷방 늙은이 취급까지는 아닐지라도 신세대 감각에 한참 뒤짐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담임을 맡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지 않을 듯해 담임을 피하고 있다. 그런 세월이 벌써 여섯 해가 된다. 이제 학생 상담은 물론 생활기록부 칸을 어떻게 채워야하는지도 감감하다. 제대로 된 업무계획이나 공문서 기안도 맡길까 봐 두렵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월 그날이 다가온다. 교직에 몸담은 동료들의 마음이 다 같을 수 없겠으나 나는 그날이 젊었을 때부터 무척 부담스럽다. 그래도 요즘은 세태 따라 많이 달라져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예전 그날 아침 아이들이 꽃이라도 달아주려면 나는 화장실으로라도 숨고 싶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하루 종일 수업이 제대로 될 일 없다. 오전으로 단축 수업을 한 시절도 있었다.
드디어 올해도 그날을 앞두었다. 마침 다가오는 일요일이 그날이나 주말을 앞둔 금요일을 맞았다. 출근 전 아침 뉴스를 보다가 앵커와 사회부 기자가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와 교권 침해 사례를 보도한 기사를 보고 알았다. 오전에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사이 학생들은 교실이나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보내는 감사의 정을 담은 소박한 절차들이 오갔다.
점심시간 어느 학급에서는 교정 조회대 연단 위에서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사제 간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가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나는 오후에 남은 수업이 한 시간 있어 무엇을 지도할까 궁리했다. 교양인 논술 지도시간이었다. 공교롭게 지나간 주는 어린이날 휴무였다. 그 전 주는 정기고사 바로 다음 날로 졸업 앨범 수록 단체 사진을 찍느라 수업을 하지 못했다.
수업자료로 준비한 유인물을 챙겨 5교시 수업이 든 학급으로 갔다. 인문반 논술시간이었다. 오전으로 웬만큼 행사 마무리 된 것으로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교실 전면 칠판 상단에는 A4 용지 여러 장을 길게 이어 플랜카드를 내걸었다. 칠판에는 뭐라고 써 놓았다. 반장으로 추정되는 한 녀석은 교탁 옆에 서서 나에게 뭐를 건네려고 했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의식을 거행하려 했다.
나는 목소리 낮추어 차분하게 설득했다. 여러분 마음은 헤아려 받아들일 테니 난감하지 않도록 해달라라고 사정했다. “상장 / 제2016-05호 / 귀요미상 / 주오돈 선생님 / 위 선생님은 바라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선생님으로서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과 우수한 글 솜씨 및 자꾸만 보고 싶은 귀욤성을 지니셨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 2016년 5월 15일 / 창원여고 3학년 5반 드림” 16.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