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쌀과 배즙·제비쑥으로 빚은 제비쑥떡. 설에 주로 먹는 제비쑥떡은 나주지역 어르신들에게 “죽기 전에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가장 맛있는 떡”으로 꼽힌다.
제비쑥떡은 찹쌀에 제비쑥을 넣어 빚은 찰떡이다. 나주의 노인정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근대 나주의 제비쑥떡 문화와 떡쑥>이라는 책을 엮어낸 허북구 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52)에 따르면 제비쑥떡은 “어르신들이 꼽는 떡 중의 떡, 가장 맛있는 떡, 죽기 전에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떡”이다. 허 국장은 제비쑥 씨를 구해다가 직접 재배하면서 재배방법을 연구하고 실험을 통해 제비쑥떡이 가진 약성을 입증해내기도 했다. 한반도와 중국·대만·일본 등 동아시아지역에서 자라는 제비쑥은 감기·천식·관절염·고혈압에 좋고, 특히 치매를 예방하는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 자생하는 제비쑥. 감기·천식·관절염·고혈압·치매를 예방하는 성분이 함유돼 일본과 대만에서도 식용으로 쓰인다.
‘떡쑥’이라고도 불리는 제비쑥은 볕이 잘 드는 산비탈이나 들녘에 군데군데 뭉텅이로 자라지만 흔치는 않다. 흙이 기름지고 농약이나 제초제가 닿지 않는 깨끗한 땅에서만 자란다. 텃밭에 제비쑥을 조금 키우고 있는 오효순 할머니(82)는 농사지은 곡식을 공출로 탈탈 털리고 먹을 것이 없어 늘 굶주렸던 일제시대 말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다닐 때 가끔씩 보이던 제비쑥은 양이 많지 않아 따로 모아 담았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흔치 않던 제비쑥이 농약과 제초제 때문에 더욱 자취를 감추고,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세대간 전통이 단절되면서 맛있고 귀한 제비쑥떡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다가 머지않아 사라지려는 참이었다. 다행히 ‘어르신들이 가진 보석 같은 지혜’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노인정을 찾아 나선 허 국장의 노력으로 제비쑥떡은 맛의 방주에 오르게 되었다.
취재를 위해 나주목사고을시장에 있는 떡집 ‘나주떡보㈜’에 들어섰을 때 찜솥에서 피식피식 소리를 내며 뿌연 김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솥 안에서 제비쑥떡이 익고 있었다. 막 점심을 먹고 난 참이었는데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제비쑥떡에 콩고물을 묻혀 인절미를 만드는 모습. 나주떡보에서는 콩고물 묻힌 인절미·콩고물 안 묻힌 찰떡·개떡 등을 빚어 판매한다.
제비쑥떡은 쫀득쫀득 차지고 부드러웠다. 신기하게도 차진 떡이 치아 사이에 끼지 않았다. 달지도 않고 찹쌀의 쓴맛도 없었다. 감미로운 뒷맛이 자꾸만 입으로 떡을 불러들였다. 배가 너무 불러 저녁을 안 먹고 건너뛰었는데도 속이 편안했다.
나주떡보는 제비쑥떡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나주 토박이 40대들이 차린 회사다. 농부이자 무등일보 기자이기도 한 황종환 대표(44)와 김화수 이사(42)는 지난봄에는 인근지역 재래시장을, 늦여름에는 산과 들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할머니들이 채취한 제비쑥을 사 모으고 제비쑥 씨를 받기 위해서였다. 또 한편으로는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제비쑥떡의 표준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황 대표는 “오랜 노력 끝에 제비쑥이 가진 약성을 극대화하고 설탕과 물 대신 지역 특산품인 나주배즙을 넣어 맛있고 건강에 좋은 제비쑥떡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생산 시설이 열악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에 걸맞은 포장재도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제비쑥떡이 맛의 방주에 오르면서 널리 알려져 주문이 넘쳐나지만 확보한 제비쑥이 넉넉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다행히 반남면 흥덕리 어르신들 일곱명이 비록 적은 규모지만 올해부터 제비쑥 재배를 시작할 예정이란다.
찹쌀은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쌀을 쓰고 배즙은 친구들 농장에서 가져다 쓴다. 가격의 등락과 판로 때문에 애를 먹는 배 재배농가들도 제비쑥떡에 큰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
제대로 된 전통식품 하나가 시장에 나가 자리를 잡으면 이와 연결된 농사현장이 활력을 얻고 살아나게 된다. 김 이사는 “떡 상품화에 성공한 전남 영광의 모싯잎송편이 우리 모델”이라고 했다. 현재 나주떡보에서는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콩고물 안 묻힌 찰떡·제비쑥개떡 등 세종류를 생산한다.
나는 취재 내내 흥겨웠다. 물론 귀하고 맛난 떡을 마음껏 먹어서 그런 것이지만 농업과 전통에 깊고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발로 뛰는 연구자를 만나서이기도 하고, 옛날 떡 해먹던 얘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신 할머니 덕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또 하나의 나주 명물이 될 제비쑥떡에 흠뻑 빠져 있는 젊은 친구들 때문이기도 하다. 지역 명물인 쌀과 배와 제비쑥의 만남은 생각할수록 황홀하고 매력적인 결합이다. 나주떡보㈜ ☎061-336-6969
백승우<강원 화천 농부·‘귀농귀촌 특강’ 저자
첫댓글 와, 맛나겟다,
제비쑥은 보통 쑥과 좀 다르게 생겨서 흥미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