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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위대한 성자로 알려진 밀라레빠(1052~1135)는 12세기 위대한 시인이자, 뛰어난 수행승이었습니다. 다른 성자들이 여러 생에 걸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반면, 그는 단 한생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린시절 삶은 처절했으며 출가이후 수행 또한 피나는 고행으로 점철하였고 하늘을 날아다닐 만큼의 신통력까지 갖추었다고 합니다.
밀라레빠는 부유한 장사꾼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곱 살에 아버지가 죽으면서 백부가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재산을 관리할 것을 유언장에 남겼으나 밀라레빠와 어머니, 누이동생은 가난한 생활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게 됩니다.
밀라레빠가 16세가 되었을 때 백부에게 재산반환을 요구하자, 백부는 ‘너희 아버지가 내게 오히려 빚을 졌다’며 밀라레빠 식구를 소작인 취급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어머니와 밀라레빠는 복수심을 품고 흑마술을 배워서 그들을 죽이기로 맹세하게 됩니다.
밀라레빠는 수년간 흑마술을 배운 뒤, 백부의 아들 결혼식 날 백부와 백모를 제외한 하객들 몇십명을 몰살시켜 죽입니다.
이후 밀라레빠는 깊이 뉘우치고 마술이 아닌 참다운 진리를 구하기 위해 당시의 위대한 성자 마루빠를 찾아 떠나게 됩니다.
스승 마루빠를 만나 영적 깨달음을 위해 위대한 스승 마르빠 밑에서 피나는 고행을 시작합니다.
그는 노력해도 해탈을 얻지 못하자 자살까지 결심하기에 이르렀던 찰나, 스승 마르빠의 가르침으로 더욱 분발하여 수년을 수행합니다.
이후 고향을 떠난 지 8년만에 집으로 되돌아 와보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누이동생은 거지가 되어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때 지은 시구가 글 첫머리의 시구절이랍니다.
이 세상 모든 것 덧없고 무상하여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나는 집을 떠나 없었고
나 이제 돌아오니 그 분 이미 세상에 없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좋은 집 있을 때 주인은 멀리 떠나 없고
주인 돌아오니 집은 이미 폐허되었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나는 불굴의 귀의자,
이세상 모든 것 다 허망한 것임을 알아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고향을 찾은 후 그가 집 뒷산 중턱에 있는 암굴에서 몇달 간 명상을 하고 나서 먹을 것이 떨어져 마을에 구걸을 하러 내려갔다가 백부를 만나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이 정해주었던 다까루단의 암굴에 가서 일년간 명상 후, 어느 날 바람도 쐬고 기분전환도 하고 싶은 마음에 굴밖을 나서려하다가 처음 세웠던 서원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자책의 노래를 합니다.
그대 밀라레빠여!
이 자책의 노래를 그대에게 들려 주노라.
달콤한 대화로부터 그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그것이 적적타하여 즐거움을 구하려 하네.
마음을 흥분시키지 말고 평온 속에 안주하라.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면 곧 죄악이 잉태되리
기쁨을 찾아 나서지말고 禪坐에 만족하라
유혹에 지고나면 수행은 곧 바람결에 흩어지리.
고개를 쳐들지 말고 아래로 떨구라
고개를 쳐들면 곧 무익한 세간사를 탐하게 되리.
수마에 빠지지 말고 명상을 계속하라
수마에 빠지면 곧 무지의 해독이 그대를 정복하리.
그후에도 그는 3년간 명상을 계속하였습니다.
그토록 아껴 먹었던 식량은 바닥이 났고 깨달음을 얻기도 전에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굴 밖은 나서되 주변은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고주위에서 먹을 것을 찾다보니 쐐기풀이 무성한 양지바른 언덕에 동굴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쐐기풀 즙을 내어 먹어가며 명상을 계속합니다.
마침내 몸은 쐐기풀처럼 초록빛이 되었으며 초록빛을 띤 머리털은 쐐기풀처럼 길게 자라 온 몸을 덮습니다.
그후로 다시 일년이 지나, 이제는 헤진 옷 대신 상반신에 둘렀던 보리자루마져 닳고 닳아 가리개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세겹으로 접어 두르고 밤의 추위를 막아야 했습니다.
어느날 굴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 나가보았을 때 지나가던 사냥꾼들이 그를 보고 "귀신이다 !" 소리치며 놀라 달아났습니다. 그는 그들을 불러 사정을 설명하자 감탄하여 공양물을 놓고 사라졌지요.
그후 또 다른 사냥꾼들이 와서 그를 동정하였을 때 그는 그들에게 다섯가지 즐거움이란 노래를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여기 다까루 단 암굴 한 가운데에
티벳의 수행자 밀라레빠는
세상의 모든 욕망과 망상을 떠나
위없는 높은 깨달음을 구하며 사네.
즐거움은 밑에 까는 조그만 방석
즐거움은 위에 걸친 누더기 면포
즐거움은 무릎을 받치는 暝想帶
즐거움은 배고픔을 잘 견디는 이 몸뚱이
즐거움은 바로 이 순간에 머물며 궁극의 목표를 인식하는 빈 이 마음
나에게 이 모든 것이 다 즐거움의 원천
즐겁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네.
그의 다섯가지 즐거움이란 노래는 해마다 축제가 열리면 사람들에 의해서 애송되었고 그 노래의 연유를 듣게된 그의 누이동생 빠다는 오빠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는, 구걸을 해가며 그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를 본 빠다는 초록빛 피부에 뼈만 앙상한 그를 보고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그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말합니다"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을까요?" 빠다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마침내 그마저 비참한 생각이 들어 누이에게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들려주게 됩니다.
나의 스승, 마루빠님께 예배합니다.
원컨대 이 적정처에서 굳게 정진토록 하여 주소서.
비탄에 빠진 누이여,
이 세상의 모든 기쁨, 슬픔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라.
나의 수행은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
나의 집은 들짐승의 그것과 같고
내가 먹는 음식은 사료와 같이 보잘 것 없으며
나의 몸은 해골과 같고
나의 행장은 미친 사람과 같지만
나는 차디찬 바위 위에 앉아
가죽을 벗기는 듯한 열성으로 정진하노라.
그리하여 최상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 생에서는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내생에서는 부처를 이루리니,
누이여 슬퍼하지 말라.
너 또한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진리의 수행에 몸을 바치어라.
누이 동생과 어릴 때 부모들이 정해주었던 약혼녀 제세의 음식물 공양으로 심신의 조화를 이루어, 보다 깊은 수행을 하게 되었고 초감각적인 평정과 청정의 경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침내 자신을 불꽃이나 흐르는 물로도 변신시킬 수 있었고, 자신과 똑같은 수 백의 분신을 만들 수도 있고 공중을 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꿈 속에서 이루어졌으나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전념한 결과 실제로도 그와 같은 능력을 체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날아가는 도중 우연히 백모의 친척이 아들을 데리고 밭을 갈다가 그를 목격하고는 아들에게 말합니다."저런 것을 보고 놀라거나 재미있어 하면 않된다. 악녀의 아들로서 사악한 마술을 쓰는 '밀라'라는 놈인데 기아에 허덕이는 형편없는 놈이다. 옆으로 비켜서 놈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라. 자, 어서 소나 몰자꾸나."
이제 그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전 생애를 명상 수행에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것이 곧 법을 이익되게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최상의 길이라 하셨다. '-이제 나의 모습이 알려지고 게다가 날고 있는 모습까지 들키고 말았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게 되면 속인들은 단지 악해를 피하기 위한 이기적 욕망의 성취를 위해 내게로 몰려들 것이다. 이것은 내 수행에 방해가 되어 궁극의 완전한 지혜를 가리게 할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거처를 옮기기로 합니다.
남비를 둘러메고 굴을 나서다가 남비를 떨어뜨려 그것이 깨지는 순간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초록색 남비가 굴러 나왔습니다. 그것은 쐐기풀국의 앙금이 쌓여 굳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새삼스러이 사물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수행을 계속하라는 훈계로 알고 시를 지어 노래합니다.
방금 있던 남비조차 이미 간 곳 없으니,
그 속에서 모든 사물의 본성 보았네.
일체는 무상하고 덧없다는 것을.
남비는 깨어졌으나 나의 스승되어
심심미묘한 무상 법문 설해 주었네.
나, 귀의자 밀라는 남비의 법문 듣고 다시 굳은 서원 세워 다짐하네.
세세생생 선지식 만나 부처님 시봉하기를...
밀라레빠는 갑인년(서력 1134년 83세 되던 해) 어느 큰 결혼 피로연에 초대됩니다. 그 때 제춘에게 차석으로 밀려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짜뿌와'라고 하는 박식한 라마는 원한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의 첩을 보석으로 꼬여 독이 든 우유를 바치게 합니다.
제춘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이를 받아 마시며 묻습니다.
"약속 받은 보석은 손에 넣었는가 ?" 그녀는 양심의 가책과 공포감으로 떨기 시작했습니다.
"네, 얻었읍니다."
그녀는 제춘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그 독이 든 우유를 돌려 줄 것을 애원합니다.
"물론 나는 돌려주지 않을 것이야. 그대와 짜뿌와 두 사람이 이번 일의 모든 것을 깊이 참회할 때가 오리라. 그 때가 되면 그대들도 고행과 수도에 전념할 것이다.
내가 지금 그대들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에겐 영겁토록 지옥고가 따를 것이다."라고 하며 제춘은 독이 든 우유를 마셔버렸습니다. 제춘의 사망소식을 듣고 와서 흐느끼는 제자 레춘을 위해 밀라레빠는 마지막 노래를 합니다.
오, 사랑하는 레춘, 나의 아들이여
이 노래, 나의 마지막 가르침을 들으라.
삼계에 윤회하는 고통 바다의 대죄인은
바로 이 보잘 것 없는 몸뚱이
다만 먹고 입는 세상사에 항상 분주하여 구원을 찾지 않네.
레춘, 일체 세간사, 모든 애착을 놓으라.
이 몸뚱이는
덧없는 고기 덩어리
마음은 진실함이 없이 그걸 따를 뿐 참된 진리를 구하지 않네.
레춘, 마음의 참된 본성을 깨치라.
무지와 현상계에서 대죄인은
그대 안에 넘치도록 쌓아 놓은 지식
그저 재난이나 피하려 할 뿐,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를 깨치려 않네.
레춘, 생사 없는 진리를 깨치라.
금생과 내생에서의 대죄인은
부단히 올라오는 모든 궁리
오로지 갖지 않은 것만 찾아 끝없이 헤멜뿐. 자기 안의 참된 진리를 찾지 않네.
레춘, 그대 안의 영원한 진리를 찾으라.
육도의 덧없는 도시에서 태어나는 요인은
사악한 카르마로 빚어진 죄의 은폐
인간은 좋다 나쁘다 시비에 몸을 맡겨 둘 아닌 하나임을 결코 알려하지 않네.
레춘, 좋고 나쁨을 다 피하라.
보이지 않는 극락에 대한 난해한 논의에
뛰어난 붓다께서 많은 난해하고 심원한 진리의 방편을 보여 주셨으나
사람들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참 뜻을 알려고 하지 않네.
레춘, 난해한 논의를 피하라.
대망의 목표와 명상과 참된 수행.
이들을 한데 묶어 부지런히 행하라.
이생, 내생, 중음신의 생 사이를 하나로 보아 거기에 익숙해지라.
이는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니
오, 레춘, 아들이여 부디 참다운 도를 닦으라.
첫댓글 더 알고 싶으면 책, '미라래빠의 십만송' 를 참고하면 되겠네여.
훈련이 안 된 우리는 모두 내 입장에서 보듯이...이분 누이 동생 처럼, 지난 주에 뵌 노모 말씀이 , "너는 예전에는 긍정적이고 명랑 했는데..." 라고 하시더라구요.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정확히 알지요.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쥴리 '수행을 좀 할 때면 자연스레 입을 좀 닫게 되는데, 그럴 때면 부모님께서 '너의 원래 모습은 밝고 명랑한데..'
ㅡ.ㅡ.;;
아니거든요~~ !!!!!
한국에 안 사세요? ㅎ
뭐 요즘은 마음만 있으면 지금 어디에 살던지 책은 맘대로 구입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니 내가 그러잖아요. 질문도 '미운' 질문, 덧글도 '미운' 덧글 단다구요. ㅎ
난 몰래하는 불교 ㅎ 덕분에 좀 더 편해진 것 같은데...집안 식구 모두들 교회 나가거든요.
평상시 예전에 어떤 스님이 주신 염주을 늘 차고 다니는데 이번에 노모 뵈러 갔더니, 염주라는 걸 알고 말하시는지 모르고 하시는지, "그거 촌스럽게 왜 차고 다니니.."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몇일 안했어요.
불교를 하면, 예민해지거나 무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둘이, 사실은 같은 건데요. 그래서 소위 자비관이, 흔히 거론되구요.
근데 뭐...앙증맞은 아기의 손을 잡으면서, 슬픔을 느끼듯...괴로움이 선명할 수록, 슬픔도 발생합니다. 여기서 "선명하다"는 것은..."괴로움이,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보통 괴로움이라고 이해할 때...처음에는, 흡사 눈 앞의 형상등과 같이,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러한 의미에서...'괴로움이 사무친다'는 것은, '자신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직관의 영역에서, 고성제를 받아 들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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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감각적 대상에 대한 갈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나 직관도, 대상에 대한 작용으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런즉...설령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존재에 대한 갈애가 명확하다고 가정하더라도..."존재나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보통은 위와 같으므로, 고성제등도 처음에는 대상의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존재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일은, 좀 시간이 걸립니다. 뭐...사람에 따라서는, 한평생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구요. 그래도 별 문제는 없어요. 걍 욕계에 태어나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욕계가, 위험해 그렇지, 수행하기엔 더 좋아요.
'위험해서 그렇지'
'위험해서 그렇지'
'위험해서 그렇지'
'위험해서 그렇지'
'위험해서 그렇지'
'위험해서 그렇지'
..............
엄청 위험한 말씀을, 엄청 산뜻하게.... ㅡ..ㅡ;;;; 무서운 사람~~
예민해서 '위험해서 그렇지' 그러지
무디면, '오 부라디 오 부라다' 하지 않을까요? ㅎ
'위험해서 그렇지'(=삼악도행 티켓이 눈 앞에 아른아른, 열악한 욕계행티켓의 손바닥 위에..ㅎㅎ)
에 대한 반응의 차이가
저로 하여금 '극락으로 튀자'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 데 반해
방님으로 하여금 '윤회를 마다 않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 듯...
개인적으로 방님과 같은 자세를 '용자 -대장부'라고 본다는..
저는 간이 콩알만한지라..일단 위험지역에서 튀고 봐야 겠음 ^^
천상계도, 대부분 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왠만하면 삼악도는 면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너무 꺼릴 필요는 없다는...
극락이라는 말을 접하면,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듭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국토는, 분명 극락보다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지만, 중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서 삼악도까지 포함하는 육도가 있다. 아미타 부처님의 불국토인 극락은, 분명 삼악도가 없어 더 안전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중생을 선별해 받아들이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