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황룡사 9층목탑 추정도

목탑(木塔)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어 목조 건축을 짓기 위한 나무의 수급이 원활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비록 나무는 많으나 연중 기온의 변화가 심하여 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질 좋은 건축용 목재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목재를 이용하기 위하여 왕실용 건축이 아니면 벌목을 금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목탑의 건립은 국가에서 직접 관여하는 큰 규모의 가람에 주로 세워졌으며 건축 구조상 매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목탑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건물처럼 굵은 원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기와로 지붕을 얹는 형태지만, 여러 층으로 건물을 높이 올려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일반 목조 건축보다 더 많은 구조상의 어려움이 따랐다. 또한 재질상 나무는 온도와 습도, 병충해에 약해 썩기가 쉽고 일시에 무너질 수 있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결정적인 한계로서 목조 건축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 자체가 마르기 때문에 벼락을 맞거나 침략군의 방화 등 화재에는 치명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란이 많았던 우리나라에 목탑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645년. 약 80m의 높이로 삼국통일을 염원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동아시아를 통틀어 제일 높은 탑이었다.
목탑을 쌓기 위하여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기초(基礎)의 문제이다. 아무리 견고하게 쌓는다 하더라도 기단(基壇)이 약할 경우 탑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목탑의 기단을 마련하는 데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첫째는 건축부를 제대로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의 문제이고 둘째는 비가 올 경우 다층 누각에서 한꺼번에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리는 많은 양의 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목탑의 위치가 결정되면 탑에 쓰이는 많은 목재와 기와의 무게를 지탱하게 하기 위해 탑 자체의 크기보다 넓고 깊게 구덩이를 파야 한다. 맨 아래층에는 듬성듬성 냇돌을 쌓고 그 사이를 흙으로 채워 배수가 원활하도록 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고운 자갈과 진흙을 엇갈려 다져 덮어주는 방법(판축 版築)을 주로 이용하여 마치 시루떡을 여러 장 쌓아 놓은 것 같다. 경주 황룡사구층목탑지(皇龍寺九層木塔址)의 발굴 결과 지하 4.5m 깊이로 땅을 파고 무려 20층에 이르는 판축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비의 낙수면(落水面)을 고려하여 탑 주위 표토(表土) 아래에 배수를 위한 자갈을 덮는다. 이렇듯 어려운 작업을 통하여 탑이 설 수 있는 터전이 비로소 확보되는 것이다.
목탑에서 종교적, 건축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은 중심 기둥, 즉 심주(心柱)이다. 이 심주는 인도 탑의 야슈티(yasti)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탑에서는 이를 찰주(刹柱)라고 부르고 있다. 심주는 세계의 중심 기둥이라는 스투파의 상징성을 지닌 동시에, 목조 건축에서는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꿰뚫고 있는 기둥으로 건축의 구조적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심주는 곧 탑의 높이이다. 그러므로 심주로 쓰기 위한 기둥은 좋은 목재로 만들어야 하고 높은 탑일 경우 불가피하게 여러 나무를 결합시켜 조정하기도 한다.
목탑이 처음 만들어진 중국의 경우, 건축물을 세우기 전에 의식(儀式)을 지내면서 건물(탑)이 세워질 장소를 표시하는 기둥 하나를 세워 놓는 풍습이 있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어 불탑을 건립할 때 이러한 전통도 그대로 전해졌고 이것을 목탑에서의 심주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수(隋)나라의 문제(文帝)가 인수사리탑(仁壽舍利塔)을 건립할 때도 미리 탑이 세워질 곳에 나무 기둥을 세워 표시하라는 칙령이 있었던 것을 미루어 볼 때 이와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목탑에서 사리는 심주의 밑부분에 봉안한다.
다시 말해 목탑에서의 심주는 종교적으로 사리를 우주의 중심축에 두기 위한 기능은 물론이요 외부에 노출되어 높이 솟아 있는 상륜부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건축적으로 기둥 위에 세워진 목조 부재(공포 부재)들이 각 층의 수직력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라면, 수평을 지탱해주는 중심 기둥으로서의 구조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만일 목탑에서 심주가 없다면, 여러 층의 누각식 건물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목탑에서만 쓰이는 건축 용어 가운데 사천주(四天柱)가 있는데, 이는 심주와 매우 가까운 네 모서리에 세운 기둥이다. 사천주의 기능은 네 모서리에 벽을 만들어 심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예를 들면 법주사팔상전(法住寺捌相殿)처럼 높은 기둥(사천주가 4층 지붕까지 올라가 있다)으로 만들어져 심주가 지닌 수평력을 보조해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사천주를 높이 세울 경우 내부의 천정을 높일 수 있어 구조상 내부는 통층(通層) 구조가 되고 내부는 넓은 하나의 공간이 된다. 불교에서 사천왕은 석가모니가 머무는 수미산(須彌山)의 네 방위를 수호하게 때문에, 사리를 봉안한 심주 주위에 있는 이 기둥을 사천주라고 했는지 모른다. 더구나 경주의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목탑터의 경우,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양지스님이 흙으로 구워 만든 사천왕상이 발견되었는데, 실제로 사천주 사이의 벽에 사천왕상을 봉안했을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