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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득도하고자 하는 이들이 한번은 거쳐 가는 곳이다.
영신대는 그곳에 공부(?)하러 갔던 이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영신대의 기운이 얼마나 센지 웬만한 사람은 감당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밤중에 까무러치거나 자지러지고 그런 단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은 엄청 센 신령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지리산의 달인'은 그 제단에서 막영을 한 것이다.
그이는 까무러치지도 자지러들지도 않고, 오히려 불가사의한 '정력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지리산의 달인'으로부터 이상한 기운(氣運) 얘기를 듣고보니 상불(上佛), 하불(下佛)에서의 비슷한 얘기가 떠오른다.
상불, 하불이란 불일폭포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상불재에 이르는 내원계곡 지류의 골짜기를 일컫는다.
불일폭포 일대가 하불이고, 상불재 가까이가 상불, 그 중간이 중불로 불리었다.
상불에서 하불에 이르는 골짜기는 원래 열네댓 가구의 마을이 있었다.
6.25 전란으로 이 마을이 사라졌는데, 그 뒤 속칭 '공부'를 하러 오는 이들이 토굴생활을 하면서 60년대에 불마을이 되살아난 것이다.
'화개타령'이란 노래 가사에,
''그 산 경치 다 보아도 상불, 하불이 명지로다''
라는 대목이 있다.
이 불마을은 옛날부터 지리산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불마을의 토굴에서 '공부'를 하여 득도하거나 신통력을 얻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쌍계별장 전신인 도원암(桃園庵) 주지 해성스님도 상불에 암자를 지으려고 도원암을 처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이는 도원암에서 상불을 오갈 때 호랑이가 언제나 따라다녔다는 등의 전설적인 일화가 지금까지도 쌍계사 주변 주민들 입을 통해 전해오고는 한다.
불마을에서 공부하며 얻게 되는 신통력 가운데 하나가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절륜(絶倫)의 정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불마을에서 공부하여 절륜의 정력을 얻은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1960년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던 한 사이비종교 교주 서백일씨였다고 한다.
서백일의 종말과 그 후
1966년 3월 27일 새벽, 서백일은 과거 신도였던 22세의 청년 소윤하(蘇潤夏)에게 암살당함으로써 79세 나이에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서백일 교주.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소윤하는 서백일 교주에게 자기 누나와 여동생이 강간을 당하였으므로 참을 수 없어서 죽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교도소에서 복역했지만, 용화교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석방되었다.
아직 개벽이 오지도 않았는데 교주가 피살되자 교단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상불에 머물 때 기혼, 미혼여성들이 그를 에워싸다시피 했고, 그를 찾아오는 여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단다.
하지만 불마을에서 얻은 절륜의 정력이 너무 지나쳐 '남성'을 거세한 야릇한 사건도 일어났다.
1970년대 초반 전북 군산에서 하불와 기도생활을 하던 한 전도사가 성령을 얻어 손만 갖다대면 병이 낫는 신통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그이 역시 절륜의 정력을 얻었단다.
그의 토굴에 한번 찾아온 여성들이 다시는 돌아가지를 않았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책가방을 던지고 주저앉았다.
여자들의 극성스런 등쌀에 기도생활이 불가능해지자 그이는 스스로 병원을 찾아 남자의 자지를 절단해버린 것이다.
이런 신통력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