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클래식 음악을
■모차르트 음악이 흐르는 택시
몇 해 전, 필자는 서울을 방문한 독일인 친구와 며칠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어느 날 서울 근교 명소를 찾아가려고 지나가던 일반택시에 탑승하였습니다. 체구가 만만치 않은 친구가 택시를 타려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키가 크고 체중도 있는 친구의 신체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반택시를 잡았다는 생각에 필자는 적잖이 당황하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몇 분을 달리는 동안 친구의 숨소리도 낮아졌습니다. 그러자 앞쪽 운전석에서 조용한 멜로디가 들려왔습니다. 앞 좌석에서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였습니다. 필자가 “아름다운 음악이 분명 모차르트 같은데, 너무 조용하군요”라면서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운전기사는 아주 행복해하는 얼굴로 “종종 격하게 꺼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어서, 조심스러워 저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량을 줄여 놓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뒷좌석에서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음량을 조절하여 주었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행복해하는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옆자리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독일 친구의 반응이었습니다. “택시에서 모차르트를 듣다니, 세계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택시에서 모차르트를 감상하는 건 처음이야”라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아주 놀라워하면서 말입니다.
택시 기사의 설명을 듣자니, 우리가 탄 택시는 이른바 ‘개인택시’, 즉 기사의 개인 재산이라서 택시 내부 공간에 고급 음향시설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앰프나 스피커가 고가제품임을 뽐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저는 손님이 없으면, 조용히 모차르트를 즐길 수 있어 조급함이 없죠. 게다가 저는 모차르트 음악만을 고집합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훈훈한 가운데, 필자도 놀라웠지만, 독일 친구가 더 놀라워했습니다.
■클래식 애호가 택시 기사를 만난 행운
필자는 종종 장거리를 택시로 이동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뽕짝 음악’이 진동하는 택시를 타면, 곤혹스럽습니다. 운전기사가 신나서 콧노래로 반주까지 하며 행복해하니,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거북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뽕짝 택시’를 만날 확률은 그리 낮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생소한 ‘택시 문화’의 일면입니다.
그런 소외감을 감내하며 택시에 탑승하자 조용한 클래식 멜로디가 들려옵니다. 자연스레 택시 기사와 부드러운 대화가 오갔습니다.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로 짐작되는 택시 기사는 "비번(非番)인 휴무일에 마누라가 집에 없을 때, 빈집에서 좋은 앰프를 크게 틀어 놓고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자 즐거운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음악 행복 지론’을 들으며 왠지,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택시에서 듣는 스메타나
어느 날, 택시에 탑승했다가 비교적 젊은 기사를 만났습니다. 몸자세도 준수하여 마치 대학원생 제자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몇 차례 들어본 듯 친숙하였지만, 꼭 집어 누구의 작품인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젊은 기사는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 체코)입니다”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필자도 바로 “스메타나의 마지막 작품인 ‘나의 조국(My fatherland)’이군요”라며 무언의 공유·공감을 즐겼습니다.
젊은 기사는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불규칙적으로 택시 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주목적은 “세계적인 유명 교향악단이 서울에 오면, 좋은 자리(VIP석)에서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감동적이면서도 서글프기도 하였습니다.
유럽의 음악당은 대개, 젊은 애호가를 위해 최상부층(5~6층)에 ‘그들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악보를 놓을 작은 테이블이 있어 음악도가 공연 내내 악보를 보며 음악을 즐기도록 배려합니다. 테이블에는 작은 전등이 마련되어 악보를 읽기에 충분합니다.
공연을 마친 뒤, 지휘자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맨 상층부를 향해 눈길을 주는 것은 ‘골수’들이 그 꼭대기에 몰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반세기 전에 <빈 국립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에서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감상하였습니다. 화려했던 무대는 어렴풋이 기억하면서도 젊은 음악도와 애호가를 위한 그 작은 공간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만큼 필자에게 큰 인상으로 남았나 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젊은 음악인이나 애호가들에게 공연 공간에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여 봅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 6층에 음악도를 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Google 자료 캡처
■택시, 클래식 음악 그리고 비즈니스
한때 필자는 서울 강남에서 인천에 있는 대학교로 매일 출퇴근하였습니다. 이때, 대학교 측에서 필자의 출퇴근을 위해 인천에 있는 택시회사에 용역을 주어 배려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는 날이면, ‘고급택시’로 강남지역에서 인천을 오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급택시를 운전하는 ‘S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S씨’의 단정한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차 안 이곳저곳에 놓아둔 음악 CD가 필자 눈에 들어왔습니다. USB가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예외 없이 내용은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S씨’는 음악 장르에 따른 프린트한 목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클래식 음악 자료는 ‘S씨’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탑승자의 선택 및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S씨’는 인천에서 택시운송업에 종사하다 보니 아무래도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외국 방문객이 주 고객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온 탑승객에게 이탈리아 오페라 곡을 틀어주면, 그렇게 좋아했답니다. 독일 탑승객에게는 독일 가곡을 틀어주고, 프랑스 탑승객에게는 프랑스 샹송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 택시를 이용했던 외국인이 서울에 다시 오면, 한결같이 며칠 전부터 예약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외국인은 일주일간, 또는 한 달간 서울에서 업무상 머무는 동안 ‘단독 서비스’를 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그는 인천 지역의 다른 ‘고급택시’를 필자의 출퇴근 시간에 배정해주었습니다. 그로 보아 ‘S씨’의 기업가적인 네트워크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S씨’만큼, ‘개인택시 음악’이란 ‘문화 플랫폼’을 활용하며 특출하게 두각을 나타낸 운송사업가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모차르트만을 사랑한 택시 기사, 비번이면 자기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마음껏 즐긴다는 택시 기사, 외국 유명 교향악단이 내한하면, 최적의 위치에서 감상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젊은 음악애호가가 있기에, 오늘 우리나라가 ‘음악 문화 대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가을,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런던필하모니’를 필두로 10개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우리나라에 ‘몰려왔거나’, 올 예정입니다. 그 사실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각하니, 흐뭇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Mozart Symphony No.39 in E flat Major K. 543
I. Adagio - Allegro 10'38
II. Andante con moto 8'00
III. Menuetto. Allegretto - Trio 3'46
IV. Finale. Allegro 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