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24]
야마모토 신이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존귀하고’(어서 1578쪽)라는 원리에서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어서 974쪽)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경지를 사실대로 말하고 자신을 선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과는 ‘몸을 높이면 만(慢)이라고 생각하고’(어서 975쪽)라고 하셨듯이 세상 사람들은 대성인을 건방지고 거만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럼 자신을 비하하면 어떻게 될까요. ‘몸을 낮추면 경(經)을 멸시함이라’고 하셨듯 사람들은 대성인이 수지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는 대법을 모욕하고 깔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난중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실을 당당히 말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의 ‘소나무가 높으면 등 넝쿨이 길고’란 소나무가 높으면 소나무를 타고 자라는 등 넝쿨도 길게 뻗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이 최고의 법이자 우주근원의 법이므로 그 대법을 신수한 사람의 공덕과 복덕 또한 무한하고, 유유자적한 경애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수원이 깊으면 흐름이 멀도다’란 구원원초의 ‘묘법(妙法)의 당체’인 어본존은 그 수원이 끝없이 깊기 때문에 그 흐름도 멀리멀리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대성인불법(大聖人佛法)은 말법만년까지 유포되고 개인의 경우에는 영원한 행복을 확립할 수 있는 원리를 나타냅니다.
다음의 ‘행복하도다. 즐겁도다. 예토(穢土)에서 희락을 받음은 오직 니치렌 일인(一人)뿐 이니라’는 탁세말법에 태어나 박해받는 인생을 살면서도 법화경 행자로서 묘법을 유포하는 대환희를 표현하신 글입니다.
예토는 괴로움으로 가득한 사바세계입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유배지인 사도에서 조차 ‘유배의 몸이지만 희열은 한량 없도다.’(어서 1360쪽)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대성인과 같은 결의로 묘법을 신수하고 광선유포의 투쟁을 일으킨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환희의 경애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어본존을 믿고 일심으로 불도수행에 힘쓰는 일이 중요합니다.
[대도 25]
신이치는 강한 확신을 담아 이렇게 외쳤다.
“니치렌대성인은 ‘여설수행’ 즉 부처가 설한대로 수행하라고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현대에 말법의 어본불이신 대성인의 말씀대로 광선유포를 추진했습니다.
고뇌에 허덕이던 우리가 어본존을 만나 인생을 멋지게 소생시키고 부처의 심부름꾼으로서 최고의 성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지용보살의 출현입니다.
‘우리가 정한 길’ ‘이 길’은 묘법을 유포하는 대도(大道)입니다. 광포서원(廣布誓願)을 이루는 대도이고 구원(久遠)의 사명을 완수하는 대도입니다.
이 길에 바로 세간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신심의 제호미(醍醐味)가 있고 생명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희락이 있습니다.
그 위대한 소원만족의 법리를 타인에게도 알려 자타 함께 행복의 물결을 널리 사회에, 만년의 미래까지도 넓히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제 인사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길의 노래’를 대합창했다. 기념간부회는 대환희 속에서 막을 내렸다. 폐회를 알리자 신이치는 마이크를 들고 대강당 앞쪽에 놓인 글라디올러스 꽃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장내를 아름다운 글라디올러스 꽃으로 장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 분이 준비하셨지요?”
자리한 부인부원들이 “아이치현 부인부입니다!”하고 크게 말했다. 각 가정에서 길러서 가져온 것이다. 글라디올러스의 꽃말은 ‘승리’인데다 특히 붉은색 글라디올러스 꽃말이 ‘견고’라서 견루(堅壘) 주부를 표현하려고 했다.
신이치가 꽃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장년부 여러분이 부인부 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이 꽃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찬동하는 큰 박수가 일었다.
장년들이 부인들에게 꽃을 건넸다.
러시아의 문호는 “꽃, 그것은 희망입니다”하고 말했다.
[대도 26]
신이치는 이튿날인 7월 28일 오후 1시 반 도노를 출발하기 직전에 주부 문화회관에서 소카(創價)대학교와 도쿄 소카학원, 간사이 소카여자학원에 다니는 대학부와 고등부 그리고 졸업생인 청년부 대표와 기념촬영을 했다.
여름휴가나 방학으로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주부를 방문 중인 창립자를 만나고자 모였다.
신이치는 매우 바빴다. 그러나 잠시라도 멤버를 만나 격려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소카대학교는 졸업생을 4기생까지 배출한데 불과한 신생대학으로 전통이 있는 유명대학에 비하면 취업도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모두 자신이 창립자라는 자각으로 기업 등에 직접 몸으로 부딪쳐 취업의 길을 열고, 직장에서 실적을 올려 차근차근 신용을 쌓고 있었다.
신이치는 그러한 졸업생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뒤를 이을 창가(創價) 동창의 봉추들을 온 힘을 다해 격려하고 싶었다.
“시간을 내어 일부러 모여 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겠지요. 질풍노도가 기다린다고 각오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로울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절망에 빠질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늘 현실은 혹독하고 모순뿐입니다. 인내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두고 봐라!’는 강한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야 합니다. 비록 땅에 쓰러져도 두 번, 세 번, 네 번 다시 일어나 도전해야 합니다.
지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승리자가 됩니다.
지금 베이징에서는 중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려고 교섭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체결을 비원하며 제언도 했습니다.
또 9월에는 네 번째 중국방문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여러분이 세계의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난무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길을 열어놓겠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면 힘이 솟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만사를 부탁합니다!”
[대도 27]
신이치는 도노문화회관으로 가려고 차에 타자마자 ‘이 길의 노래’ 가사를 꺼내 동승한 미네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더 퇴고하려고 하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노래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들었다.
“역시 고치는 것이 좋겠군. 3절 마지막 부분인 ‘아, 주부 제천이 춤춘다.’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말이오. ‘제천이 춤춘다.’는 표현은 주체인 우리 본천의 모습을 나타내기 보다는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군. 우리의 기원과 일념으로 제천을 춤추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대성인은 머리를 흔들면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마음의 작용으로 몸이 움직인다는 비유를 들어 ‘교주석존을 움직이시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초목이 있으랴, 소란하지 않는 물이 있을쏜가’(어서 1181쪽)하고 말씀하셨지. ‘교주석존’ 즉 어본존은 대우주의 근본법인 묘법의 당체다.
그 어본존에게 기원한다면 대우주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천이 춤춘다.’를 ‘제천이여 춤춰라’ 하자. 또 바로 앞 단락의 ‘대화는’은 ‘대화에’로 하자.”
고친가사를 바로 주부의 동지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나서 신이치는 이미 작사에 들어간 ‘도쿄의 노래’가사를 퇴고하며, 광선유포의 본진인 도쿄의 사명을 생각했다.
‘니치렌대성인이 막부가 있는 가마쿠라를 싸움의 본거지로 삼으신 이유도 가마쿠라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서 고뇌하는 민중이 넘쳐나고 타종파의 절이 모여 있는 사상투쟁을 벌일 격전의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정법정의를 밝혀야 광선유포가 크게 넓혀진다.
학회가 수도 도쿄에 본부를 둔 까닭도 같은 이유다.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에서 투쟁을 일으키면 그만큼 비난의 바람도 거세다. 여러 세력이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광포의 길이 크게 열린다.
본진 도쿄는 영원히 창가(創價)의 큰 성(城)이어야 한다.’
[대도 28]
신이치는 기후현 다지미시의 도노문화회관으로가는 도중에 나고야시 모리야마구에 있는 찻집에 들렀다. 가게를 도맡아 운영하는 학회원과 그 가족 그리고 현지의 지부장들을 격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온 힘을 다해 모두 해내자’고 결심한 터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한순간이 승부다. 한번의 격려로 평생을 살아가는 발심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
신이치가 탄 차는 나고야시 모리야마구를 빠져나와 쇼나이강을 따라 달렸다. 길은 좁고 한쪽 옆은 낭떠러지다. 산의 녹음이 여름 햇살에 반짝이고 강물 위로 빛이 춤을 추었다. 쇼나이강은 기후현에 들어서자 도키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신이치는 오후 3시 50분에 도노 문화회관에 도착했다.
회관에는 동지가 많이 모여 있었다. 신이치는 도착 하자마자 멤버들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현관 앞마당에는 미노 자기로 유명한 도노답게 도예코너를 마련해 놓았다. 초벌구이 한 큰 접시와 꽃병 등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안내를 맡은 청년이 활기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기념으로 한 글자 써 주십시오.”
신이치는 “알았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하겠습니다.”하고 웃음 짓고는 도예 코너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붓을 들어 안료를 묻힌 다음 큰 접시에 ‘다지미 광포’라고 썼다.
또 다른 접시에는 ‘희락지보(喜樂之譜)’라고 썼다. 어제 ‘주부의 날’ 기념간부회에서 배독한 “행복하도다. 즐겁도다. 예토에서 희락을 받음은 오직 니치렌 일인뿐이니라”(어서 975쪽)는 어서에서 발췌한 말이다. 도노의 동지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지 말고 희락의 가락을 연주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은 휘호였다.
기후 출신의 사상가 사토 잇사이는 “기쁨은 역시 봄과 같다. 마음의 본령(本領)이다” 하고 말했다. ‘기쁨은 봄과 같고 이것은 마음의 본디 모습’이라는 의미다.
[대도 29]
신이치가 기념근행회장소인 대강당에 들어서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후 4시 전에 근행회를 시작했다.
신이치는 참석자와 엄숙히 근행과 창제를 한 뒤 <시조깅고전답서>를 배독했다. 그리고 서두에 나오는 “일체중생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이외의 유락(遊樂)은 없느니라”(어서 1143쪽)는 글을 들어 진정한 ‘유락’이 무엇인지를 말했다.
“우리는 ‘유락’을 만끽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유락’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니치렌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그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유락’이라고 하면 세간에서는 단지 놀고 즐기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은 삶의 보람이 없고 공허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욕락(欲樂)’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한정 없이 비대해지기만 합니다.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괴로워집니다.
진정한 ‘유락’은 ‘법락(法樂)’ 즉 법을 향수하고 얻는 기쁨입니다. 창제와 홍교에 힘쓰며 어떠한 시련에도 지지 않는 부처의 생명을 용현시켜 주위를 적광토로 바꿀 때 자신의 내면에서 대환희가 콸콸 솟아나옵니다. 그것이 ‘자수법락(自受法樂)’입니다.
즉 진정한 ‘유락’을 얻는 길은 자행화타에 걸친 남묘호렌게쿄의 실천밖에 없습니다. 향락에 빠져 노는 생활은 ‘유락’이 아닙니다.
불도수행은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하는 학회활동 속에 진정한 ‘유락’이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 홍교하자!’며 제목을 부르고 불법대화에 열심히 도전할 때 느끼는 생명의 약동과 충실감 그리고 환희를 생각해 보십시오. 스스로 용감하게 싸움을 일으키면 학회활동 즉 환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