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 시월의 마지막 날 밤이다. 노랫말도 제대로 꿰지 못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로 시작되는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봄이면 새싹이 돋아나며 옛 등걸에 움이 트고 꽃이 피었다가 여름의 녹음을 거쳐 가을에 결실을 맺은 뒤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조락(凋落)의 매듭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려는 경계선을 넘을 찰나가 아닐까.
내일이면 겨울이 열리는 동짓달의 시작이다. 문득 생각하니 계절적으로 한 살이의 마무리뿐 아니라 여태까지 살아온 삶 또한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는 관점에서 이 계절에 대한 느낌은 아주 각별하다. 계절적으로 가을의 끝자락은 생의 황혼에 해당되는 계절로서 하루에 비교한다면 황혼녘과 일맥상통하지 싶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의례적으로 되풀이해 맞이하게 마련이었던 하루는 무척 짧아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 하루에 비하면 사람의 일생은 무진장 길어보여도 여태까지 경험했던 지난 세월은 일장춘몽에 취했다가 기지개 켜면서 하품하는 순간에 지나간 찰나 같이 짧기만 하다. 엄벙덤벙 빈둥대며 허랑방탕하게 허송세월하지 않았건만 손에 쥐거나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짓말 같은 현실이 마냥 곤혹스럽고 허전하다. 그렇다고 가당치 않게 ‘남에게 존경받는 뛰어난 존재’인 태산북두(泰山北斗)를 꿈꾸며 터무니없는 망상에 사로잡힌 채 삶을 낭비했던 것도 아니다.
기억의 곳간에 흐릿하게 갈무리 되어있던 지난 시절 흔적의 편린들을 더듬는다. 뜻하는 바와 같이 순탄하게 굴러가던 마고소양(麻姑搔痒)*의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에 이런저런 역경이나 제약이 실타래처럼 뒤엉켜져 어려움을 겪었던 일그러진 수많은 조각들이 머뭇머뭇 고개를 들고 여기저기 흘끔거린다. 해가 지면 어둠이 오고, 어둠이 가시면 여명이 밝아 오는 게 자연의 섭리임을 지혜롭게 헤아리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투미하게도 지금에 이르러 돌이켜 생각하니 하늘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무모한 객기와 탐욕에 판단을 그르치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었다. 그 업보인 쓰디쓴 결과를 천부당만부당하다고 길길이 날뛰며 끌탕을 치거나 가슴앓이를 했던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성찰하거나 곰곰이 따져보는 슬기로움이 턱없이 부족했던 젊은 날의 설익었던 흔적이 마음 속 여기저기에 회한의 자국처럼 남겨져 있지 싶다.
가는 세월이나 지는 해와 달을 잡을 수 없듯이 삶 또한 그들을 빼닮았다. 그럼에도 영생을 할 것처럼 야욕에 사로잡혀 앞으로 치닫는 게 능사로 생각하고 좌우를 살피지 못해 아쉬웠던 경우가 허다했다. 세상만사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은 한 번 성(盛)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쇠(衰) 하게 마련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고 쓸데없이 무모하게 도전을 거듭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연번듯하게 얻거나 이룬 게 없는 빈손인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지 모르겠다. 예로부터 선인들이 남긴 가르침 중에 ‘사람의 좋은 일 열흘 가는 게 없고(人無十日好),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를 비롯해서 ‘달도 차면 기울고(滿月卽虧), 십년 가는 권력 없다(權不十年)’ 등을 머릿속에 꿰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실제로는 맹하고 어릿했던 젊은 날의 진정한 내 초상(肖像)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날 오만한 마음에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으며 그 이룸이나 얻음은 영원하리라는 착각을 움직일 수 없는 진리처럼 믿었었다. 불과 몇 십 년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턱도 없이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우매함을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100세 시대로 따지면 지금의 나이는 젊은 청춘이란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은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잠겼다가 갓 깨어난 기분인 때문일까. 각박한 현실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대며 노심초사했던 순간들이 부질없는 짓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었던 선인들의 가르침인 “만물(物)은 한번 성(壯)하면 노쇠(老)하게 마련이고(物壯則老), 한 번 융성(盛)했던 것은 반드시(必) 쇠퇴(衰)한다(盛者必衰)”라는 참뜻을 일찍이 꿰뚫고 있었으면 너그럽고 반듯한 품위 있는 사람 노릇을 했을 터인데.
시월의 마지막은 조락의 이미지 때문에 생에 비유한다면 황혼과 닮은꼴이다. 왠지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과 쓸쓸하고 스산함이 지는 해가 곱게 물 드는 분위기와 썩 잘 어울려 궁합이 맞아 떨어진다. 이는 앞으로의 삶이 짧은 노년 처지와도 상통하는 맥락이고 어울리는 그림이다. 흔히들 장수시대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위로하는 말잔치 풍년에 배가 불러 터질 지경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막다른 벼랑 끝으로 내몰려 어디에도 쓸모없는 노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처지로 전락해 남은 생을 갉아 먹는다는 자조는 지나친 자기 비하일까.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과연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이 어딘가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고 보람을 만끽하는 신중년(new senior)으로서 삶을 노래하며 반길 날이 열리면서 유토피아 같은 사회가 펼쳐질 것인가. 앞에서 등장했던 노래 ‘잊혀진 계절’의 후렴구가 가슴에 와 닿음은 왜인지 모르겠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