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창업주 고 이병철회장의 아들 이맹희 이창희 이건희 3형제에 대한 일화입니다.
병석에 누운 이병철 회장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왜 3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 하셨나요?”
기자의 질문에
이병철 회장은 짧게 대답했 습니다.
“건희는 <듣는 귀>가 있어서!”
삼남인 이건희 회장이 장남과 차남을 제치고 삼성의 후계자가 된 이유가 그 것 한 가지 뿐은 아니겠지만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인정받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가정이나 학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내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남편이고,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내가 현명한 아내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강의 시간에 선생님 말을 잘 듣습니다.
배우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문제와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을 배양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평화로운 가정,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한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 진정한 대화의 능력이고
삶의 기술입니다.
하나님이 귀를 두 개 만드시고
입을 하나 만드신 이유도 두 배로 듣고 절 반 만 말하라는 뜻이라고 여깁니다.
공자는 말하는 데 3년 걸리지만
듣는 법을 터득한데는 60년 걸린 다고 하였습니다.
“경청(傾聽)” 이라는 책이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것만 봐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답이 좀 늦고 진행이 빠르지 못해도 배우자와 열린마음으로
천천히 다 듣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면 가정은 평화롭고 행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빤한 얘기인데도 습관 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 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줍 니다.
이는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주는 말의 효과를 높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터키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좋은 곳이죠.
나는 두 번 가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일단 주춤하게 됩니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 줍니다. 얼쑤 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입 니다.
"199대 1의 승리자"
파격적인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李舜臣(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우수영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그 울타리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왔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장수를 보고 순순히 인정하고
가만 있었을리는 없는 것이다.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 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 / 200명 모두 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외친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읍조 하며 임금(선조도 속으로 는 동조 함)을 압박 하고 있으니
이순신을 발탁해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 야 한다는 문무백관 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당시 이순신의 누명 상황이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ㅜ당시 領議政(영의정) 겸 都體察使(도체 찰사) 국가비상사태 직무 총사령 관인
梧里 李元翼(오리 이원익)(1547~1634)이 임금의 어명 으로 전시 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시상태에서는 임금과 문무 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 외쳐도 이원익의 승락 없이 는 선조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 대사로 고한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중에 삼도수군 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 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에 선조도 체념 을 하고 이틀이나 걸린 이순신
"국형장"에서 문무백관 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없 는가 보구나.!"
오직 한사람의 곱고 바른 판단 과 집념으로 199명의 고집을 꺾 었다.
드디어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된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 대 1
이원익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 만 떠 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 하고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 초가집에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세월은 400년이 지나고
시대만 수없이 변했을 뿐
정치는 변한게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알아주는 한사람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통에는 더할것이다.
온갖 시기질투와 모함으로
사형 직전까지 간 만고의 충신을
알아 보고 199대 1로 임금의 불신으로 부터 믿어준 탁월한 先見之明 (선견지명)의
굳은 신념이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 이원익 대감이야 말로 만고에 길이 빛나는 충신이 며 나라의 보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 이원익이
나라를 구했던것이다.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하다.
생각해 본다면 이순신장군은
행복한 분이셨다.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 하지않고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오리 대감과 같은 분이 시대에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87세로 눈을 감으시면서
모든 자식들을 불러 놓고 !
"나를 위해 부고도 알리지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이나 칭송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
그러기에 오리 정승은 우리에게 잊혀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400년이 지났지만
오늘의 이 시대에 이원익 대감 같은 "정정 당당"했던 淸白吏(청백리)는 어디 에 있는지 묻고 싶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각나게
할 뿐이다.
지금 시대에 李元翼(이원익) 政丞(정승) 같은 正正 堂堂(정정 당당)했던 분이 계시면 좋겠습 니다.
첫댓글 즐독했습니다
그러셨다니 고맙습니다.
등대 선배님!♡
난이야 후배님
좋은글에 끌려 열심히 읽어 봅니다
듣는귀 와 남의 말을 잘들어주는
매너 참 좋은 인격 입니다
말복 찜통더위
잘이겨내시고 건강하세요
어머나 금송선배님~
예까지 납시어 관심 보여주시니 그 따뜻한 마음 감동입니다.
더워도 너무나 더워 꼼짝을 못하겠어요.ㅠㅠ
선배님도 이 무더위 건강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언니 얼굴 잊겠어요.ㅎ
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맑은날 예쁜 후배님!
그러지 않아도 어제 콩자랑 이야기 끝에 후배님이 요즘 활동하는 모습이 안보인다며 궁금해 했는데...
이심전심이였네요.ㅎ
더위가 조금 수그러지면 열심히 운동해야겠어요.
요즘 다리에 힘이 너무 빠졌네요.
그때 반가운 모습 보자구요.♡
으흠!
그런일이 있엇던가?
나도참 바보가 맞나벼
왜 바보라 그러시나?
그런일은 다 역사로 기록되니 관심만 있다면 아시게 되네요.ㅎ
傾 기울일 경을 쓰는
이유를 자세히 알았어요
나두 이제부터는 귀기울여 들을께요 ㅎㅎ
그래요.
이젠 내 말도 잘 들어주시길!ㅋ
난이야친~
귀감되는 글 잘 읽었어요.
남의 말을 잘 듣고 함께 공감 해줄 때
서로의 기쁨입니다.
귀가 두개 있는 이유겠죠?
내게 적용시키고 싶은글 공유했는데 공감해주니 고마버요.
소중한 글 보면서요~
나는 듣는 성격이라서 배우네요,
듣는 귀가 열려 있으니 정말 좋은 버릇을 갖고 계시는군요.ㅎ
저도 색동이갑장님처럼 더 분발해 듣겠습니다.
이제야 알려주면 우짜노?
미련맞게 산 세월인걸 느끼는 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