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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원장님과 진지한 대화를 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와 Alvin은
여전히 애매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사실 나 자신도 그에 대한 마음이 뭔지 확
신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표현하는 마음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나
는 사랑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
온 여유로운 휴일에 나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소설책 한권을 들고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때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이 반짝이며
울리기 시작했다. 그였다.
"여보세요?"
-저예요, 윤지씨.
"네..."
-오늘 쉬는 날이죠? 1시간 뒤에 집앞으로 갈테니까 나와요.
"네? 갑자기 왜요?"
-뭐가, 왜요예요. 당연히 데이트 해야죠. 윤지씨 쉬는 날 별로 없잖아요.
"Alvin씨 회사 안 나가요?"
-지금 나한텐 회사보다 윤지씨 마음 사는 게 더 중요해요. 한시간 뒤에 갈 테니
까 준비하고 나와요. 안 나오면 문두드릴 거예요!
"아, 저, 저기!"
그의 말에 당황한 내가 서둘러 말을 꺼냈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있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계신다. 만약 그가 문을 두드려 어머니가 그를 알게 된다면...? 생각만
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어머니는 내가 왜 예전 그사람과 헤어지게 된 것인지 정
확히 모르신다. 다만 내가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아서 헤어졌다는 낡아빠진, 말도
안돼는 이유를 억지로 납득시켰을 뿐. 그 후로 줄곧 내가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
니, 남자친구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
은 나이도 나이니 만큼 결혼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지셨다. 얼마전엔 선을 한
번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셨을 정도니까. 이 상태에서 그를 알게 된다면, 그
의 빠질 것 없는 조건과 훤칠한 외모에 당장 사위로 삼으려 들 것이 뻔했다. 그리
고는 왜 여태 말하지 않았냐며 날 볶으시겠지... 나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
를 내저으며 욕실로 향했다.
"안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네요. 어서 타요."
대충 평소 즐겨 입던 깔끔한 남방 하나와 청바지를 입은 내 모습과는 달리 그는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채 차체에 기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대문을 나서
자마자 그는 내게 환하게 웃어주며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어디가는 거냐구요."
"글쎄, 가보면 안다니까요. 다와가요. 조금만 참아요."
"아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요."
"이번엔 진짜예요. 나 윤지씨 안 잡아먹어요. 보고만 있기도 아깝다구요. 그러니
까 나 좀 믿어봐요, 제발."
그는 그렇게 말하며 운전에 임했고, 나는 더이상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벌써 1시
간이 넘게 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가까운 곳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갈수록 나무들이 빽빽해지고, 서울의 텁
텁했던 공기가 시원한 공기로 바뀌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것인지 벌써
10번도 더 물어봤지만 그는 계속해서 금방 도착한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어때요? 여기 괜찮죠? 생각해보니까, 서울에서 하는 데이트 코스가 늘 그렇더라
구요. 매일 비슷하고... 그래서 여기 한번 데려오고 싶었어요."
그가 나를 데려 온 곳은 서울에서 꽤나 떨어진 변두리였다. 말로는 식물원이라고
하는데 흔히 생각하는 유리 하우스에 갇힌 그런 식물원이 아닌, 마치 잘 가꾸어
진 커다란 언덕을 보는 기분이었다. 수백평은 되어보이는 초원위에는 수를 해아
릴 수도 없는 많은 꽃과 나무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제각각 모양이 달라 하
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다니... 나는 연신 감
탄해 마지 못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하루종일을 투자 한다 해도 이
곳을 다 돌아보는 것은 무리일 듯 보였다.
"와-. 너무 예쁘다. 어! 저거 호수 아니에요?"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던 내가 언덕 아래로 보이는 인공 호수 같
은 것을 가리키며 나도 모르게 그와 눈을 마주치고 기쁜 듯 말하자 그런 내 모습
에 그는 피식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풋... 진작 데려올 걸 그랬네."
"네?"
"보기 좋아서요. 맑게 웃는 게 너무 예뻐요."
그의 말에 당황한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웃으면서 '호수 보러 가요, 우리.'
라고 말하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어느새 열이 올라
있는 볼을 한손으로 감쌌다.
"배고팠죠? 점심도 못 먹고."
"괜찮아요. 이것저것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배고픈 것도 몰랐어요. 저보다는 Alvin
씨가 배고프시겠어요."
"괜찮아요. 저도 윤지씨 보느라 정신 없어서 배고픈 거 몰랐거든요."
나는 그가 하는 말에 어색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
들을 쳐다보았다. 처음 가보는 그 식물원이라는 곳이 너무 예뻐서, 거기에 정신
이 팔려서 나는 점심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고, 그는 그런 내 옆
에서 아무런 불평없이 나를 따라다녀주었다. 그리고 7시가 넘은 조금 늦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는 예전에 한번 와 본 적 있는 레스토랑에 마주 앉을 수 있
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다 무심결에 식사를
하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문득 나는 그가 내 사람이라면 행복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식사를 하고 있던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먹
던 것을 그만두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고 나는 미처 그 눈길을 피하지 못하
고 그의 눈과 마주쳤다.
"나... 윤지씨 정말로 좋아해요. 그동안 내 행동이 윤지씨한테 어떻게 비춰졌는지
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마음 아니에요. 그렇게 여러번 거절 당했으면서도 데쉬하
는 거 쉬운 거 아니거든요. 나 진짜 용기 많이 내서 고백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윤지씨, 한번만이라도,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진지하게 생각해주세요."
뭔가 조금 달랐다. 다른 때 내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과 뭔가 조금 달라보였다.
더 비장해보이고, 더 긴장한 듯 보였다. 나는 내 마음이 이미 조금 그에게 열려버
렸다는 것을 조금 전 알아버렸다. 밀어내고 싶어하면서도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
았던 것은 나도 조금 그에게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절함이 담긴 그의
눈을 마주한 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생각해볼게요."
그제야 조금 굳어졌던 그의 얼굴이 펴졌다. 그는 눈에 띠게 기쁜 표정을 지어보
였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집앞까지 나를 데려다 준 그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로 그
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때처럼 아프게 될까 조금은 두렵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그 사람을.
"다녀왔습니다. 응?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니.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구수한 냄새에 나는 어머니를 찾으며 주방으
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곧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멈춰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어, 왔어요? 이거 조금만 하면 끝나는데... 손 씻고 와요. 내가 찌게 맛있게 끓였
어요."
"어, 왔니? 윤지야. 이리와서 너도 맛 좀 봐라. 어휴~ 남자가 어찌 이리 요리 솜씨
가 좋은 지-."
주방에는 앞치마를 두른 그와 어머니가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서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황당하게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미용실은 주말에 쉴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종일 혼자 집에 계셨을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산 어머니가 평소 즐겨드
시는 간식거리가 들어있는 종이 가방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싱크대로 다가가 그
를 보고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그 앞치마는 또 뭐구요?"
"너는 사람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무슨 말이 그래?"
"하하... 어머니 괜찮아요. 윤지씨가 놀라서 그런 건데요, 뭐."
"그래도 그게 아니지. 박 서방이 오늘도 아침부터 와서 나랑 백화점도 같이 가주
고, 점심도 사주고, 하루종일 말동무도 해줬어. 또 저녁 상도 박 서방 혼자서 다
차린 거야. 나는 주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더라."
"네?"
내가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와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자 그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혼자 적적하실까봐요. 또 회사도 안 나가니까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이참에 어머니께 점수라도 좀 따 볼려... 아, 아, 왜 울고 그래요!"
"...고마워서요... 고마워요, 정말."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 모습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두
르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순간에는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
버렸다. 그저 언제나 내가 모르게 이렇게 어머니에게 잘 하는 그가 너무나 고맙
고 사랑스러워 나는 그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와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말.
이렇게 윤지씨의 번외가 끝났습니다. ^^ 어떠셨는지요...?
나름대로 좋은 결론을 내려 노력했답니다.
이제 윤지씨의 번외도 끝났으니 본편을 열심히 연재해야겠죠?
다음에는 본편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할게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리말 감사합니다. 답글 달아 놓고 갈게요. ^^*
오늘도행복하게♣
첫댓글 정말 마음이 흐뭇하네요~~ㅋ Alvin이 넘 멋져요~
그런가요? 제가 의도한 바가 제대로 비춰졌나봅니다. ^^ 매번 이렇게 꼬리말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오늘은 이렇게나 빠르게o_o... 다음엔 시나, 이원과 함께 올테니 그때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오늘도행복하게♣
와,정말Alvin넘멋있어요!! 본편에서는 시나와이원이도 볼 수 있겠네요!ㅎㅎ
그렇죠. 곧 이원과 시나를 만날 수 있으실 겁니다. ^^ 재밌게 읽어주시니 기분 좋아요. 항상 꼬리말 달아 주시는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음 편 금방 가져오도록 노력할게요. 그때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 오늘도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