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라야마 부시코>
고려장에 견줄 수 있는, 일본 도호쿠 지역의 ‘기로’(耆老) 풍습을 그린 후카사와 시치로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식량이 넉넉하지 않은 산골마을에는 고령의 노인을 나라야마산에 산 채로 버리는 풍습이 있다. 70살을 바라보는 오린은 아직도 성한 이빨 때문에 손자에게 놀림을 받는 처지. 중년의 아들은 그를 버리는 것을 주저하는데 오린은 아들에게 새 아내를 얻어주고 스스로 절구에 이빨을 부서뜨려 때가 왔음을 알린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1983년 리메이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이 동물적이고 색정적인 인간의 원시성을 보여주는 데 크게 할애하고 있는 데 비해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한 가족이 겪는 비극성을 담담하게 펼쳐보이는 데 주력한다. 연극적 장면전환과 미장센, 노래를 내레이션처럼 활용하는 형식미가 영화적 구조와 매끈하게 어울린다.
리뷰: <스물 네 개의 눈동자>
<스물 네 개의 눈동자>가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최고작으로 꼽힐 만한 영화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이것이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그의 영화(그리고 일본영화)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작은 섬마을 분교에 부임한 젊은 여선생 오이시가 1928년부터 이후 20년 동안 겪는 일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전쟁이란 대단한 사건이 포함된 그 20년이란 시간을, 감상적이며 서정적인 이 영화는, 오이시에게 서서히 상실과 슬픔들이 쌓여가고 그러면서도 인고해야 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시대의 아픔에 직면한 이들의 슬픔을 강조하는 영화의 순진한 시각은 어떤 이들, 이를테면 좀더 강직한 누벨바그 세대 감독들에게는 비난과 배척의 대상이 될 만했다. 어쩌면 <스물 네 개의 눈동자>가 당대 일본 관객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키네마준보>에서도 그 해 최고작 1위로 이 영화를 선정했다.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