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원제 :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년 미국영화
감독 : 존 포드
출연: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리 마빈
베라 마일즈,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우디 스트로드
앤디 드바인, 리 밴 클리프, 존 캐러다인
헐리웃 영화사를 논할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중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의 황금기는 1930년대
부터 1950년대까지의 긴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숱한 걸작들을
만들어냈고, 다작의 연출을 쏟아냈습니다. 존 웨인을 비롯하여 모린 오하라, 헨리 폰다,
벤 존슨, 빅터 맥클라글렌 같은 단골 출연 배우들은 존 포드 패밀리로 일컬어지며 그가
연출한 많은 영화에서 함께 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존 포드의 영화들은 편수가 대폭 줄었습니다. 62년 작품인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는 그 시기에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존 포드
감독의 최고 걸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영화, 수많은 수작, 그리고 수많은 서부극을 만든 감독, '마카로니 웨스턴'이나
'수정주의 서부극'이 등장하기전인 50년대까지 아메리칸 정통 웨스턴을 이끌어간 감독은
존 포드와 라울 월슈 였습니다. 기병대, 인디안 섬멸, 정의의 주인공 등 용감한 마초
남자들이 등장하는 그의 영화들은 '역마차' '기병대' '황색 리본' '아파치 요새' '수색자'
'황야의 결투' 등으로 대표되는 서부 영화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뒤로 하고 60대 중반의 노감독이 된 존 포드는 그의 영화에 많이 출연한
정말 가장 애지중지하는 배우 존 웨인을 다시 등장시켜서 한 편의 서부영화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연한 배우가 역시 헐리웃을 대표하는 명배우인 제임스
스튜어트 였습니다. 1년전 '마상의 2인'이라는 영화에서 함께 했던 그를 이번에는
자신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한 배우 존 웨인과 공연시켰는데, 당시 두 배우의 위상을 보면
함께 공연하는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 웨인과 제임스 스튜어트, 참으로 다른 분위기의 배우입니다. 한 명은 헐리웃 유성영화
1세대의 '남성적인 마초 배우'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며, 마치 용감하고 강한
남자의 상징같은 인물입니다. 서부극, 전쟁물을 통해서 잔뼈가 굵은 존 웨인은 여러 편의
다작 출연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강한 남성적 이미지를 보여주였습니다. 큰 키와 육중한
몸집에서 주는 위압감과 걸걸하고 좋은 목소리, 그리고 서부영화에서 늘 목에 두르고
나오는 머플러는 그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 제임스 스튜어트는 굉장히 호리호리하고 호인같은 분위기로 온화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배우로 매우 따뜻한 연기를 보여주는게 특징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마르고
큰 키를 가졌지만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용감한 모습을 갖추었고, 특유의 선량한 외모는
많은 히트 영화를 만들었고,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배우 역할을 하였습니다.
존 웨인이 마초남이라면 제임스 스튜어트는 초식남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상반된
이미지와는 달리 존 웨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2차대전때
공군으로 입대해서 전쟁의 무서움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존 웨인은
영화를 통해서 군미필의 컴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듯 전쟁영웅의 우파적 영화에 계속
출연했고, 실제 전쟁의 참상을 너무도 잘 아는 제임스 스튜어트는 좀체로 전쟁영웅
흉내를 내는 영화출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부분이 많은 두 배우지만 공통점도 무척 많습니다. 우선 나이와
키가 비슷하고, 데뷔 초기부터 탑 클래스 배우는 아니었고, 인기 배우로 떠오른 시기도
비슷했습니다. 헐리웃에서의 위상도 비슷했고, 40-50년대 흥행배우로 나란히 활약한
것도 비슷합니다.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 출연할 당시 두 배우의 위상은
이미 헐리웃의 전설급 배우로 올라서 있었고, 50대 중반의 중견배우였습니다. 보통
이런 배우들이 함께 공연할때 서로 주도권싸움이 치열할텐데 두 배우는 그런 상황을
이미 초월한 듯 합니다. 오프닝 타이틀이 나란히 나와도 될 상황에서 존 웨인의
이름이 단독으로 먼저 등장하고 있고, 영화에서의 등장 비중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월등히 높고, 그가 승자가 되는 역할입니다.
서부영화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상당히 비서부적인 내용입니다. 철도의 건설과
문명의 발전 등으로 총잡이 시대의 몰락과 법과 질서를 앞세운 지식인들이 우대를
받는 시대로의 변화, 마치 기존의 낭만적이고 멋드러진 서부영화를 비꼰
수정주의 웨스턴의 등장을 미리 알았듯이 존 포드 감독은 낭만적이고 용맹스런
서부 영웅의 쓸쓸한 퇴장을 보여주는 내용을 차갑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치
'이젠 더 이상 우리시대가 아니야!'라고 존 웨인에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까지 듭니다.
법대를 졸업한 청년 랜섬(제임스 스튜어트)은 아버지의 권유대로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 서부로 옵니다. 오는 도중 복면을 한 강도무리에게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는데
그 강도무리의 두목은 서부의 악명높은 악당 리버티 발란스(리 마빈) 이었습니다. 부상을
당하여 처참하게 누워있던 그는 톰 도니폰(존 웨인)에게 구출되어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톰은 유일하게 리버티 발란스가 건드리지 못하는 인물인데, 랜섬을 구출한 그는
식당을 하는 집 딸 할리(베라 마일즈)에게 데려와 치료를 받게 합니다. 부상을 입고
무일푼이 되어 간신히 목숨만 건진 랜섬은 할리 가족의 따뜻한 치료로 건강이 회복되고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러나 리버티 발란스가 이 마을에 나타나면서 새로운
긴장감이 시작됩니다.
선역 주인공 2명과 악당 1명이 구조인데, 리 마빈이 연기한 리버티 발란스는 전형적인
못된 악당입니다. 너무 스탠더드한 캐릭터죠. 흉악한 얼굴에 총질과 살인, 강도짓
거기에 똘마니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선역 주인공은 두 배우의 이미지 만큼이나 다른데,
악에는 더 큰 힘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톰은 리버티 발란스조차 두려워하는
강하고 용감한 인물입니다. 반면 랜섬은 총이나 주먹보다 법이 앞선다는 신념을 갖고
폭력이 아닌 합법적인 힘으로 리버티 발란스를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캐릭터를 보면 마치 학창시절 공부잘하는 반장과 싸움잘하는 반장의 차이가
연상됩니다. 멍청한 선생님은 공부잘하는 반장을 뽑고, 제정신 가진 선생님은 싸움
잘하는 반장을 뽑아서 못된 아이들의 보호자처럼 활용한다고 학창시절에 늘 생각했는데,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특히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무법자가 판치는 서부의 세계를
너무 모르는 랜섬을 안스럽게 바라보는 톰, 특히 톰에게 랜섬은 보호해야할 의무와
미움을 함께 갖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톰은 할리를 일찌감치 사랑하고 미래의 아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연 많이 배우고 의로운 랜섬이 등장하면서, 랜섬을 항햐는
할리의 마음을 알게 되고 심한 질투를 느낍니다. 그리고 랜섬을 위해서가 아니라
할리를 위해서 랜섬을 보호하게 됩니다. 글을 모르는 할리를 위해서 공부를 지도하는
랜섬, 랜섬의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무법지대 같은 서부의
판도는 펜과 지식의 힘이 슬슬 들어서게 됩니다.
제목이 왜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일까요? 이 단순하고도 미묘한 제목은 마을의
악당 리버티 발란스에게 용감하게 대적하고 결국 그를 사살한 랜섬의 영웅담으로
흘러가는 내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진행도 그 악명높은 리버티 발란스를
죽였다는 이유로 마을의 절대적 영웅이 되고, 결국 상원의원까지 된 노신사 랜섬이
오랜만에 아내인 할리와 함께 그 마을에 다시 오게 되어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형식입니다. 그가 아내인 할리의 고향마을에 다시 온 이유는 톰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인데 지체높은 명사가 되어 움직임 하나하나가 뉴스거리인 랜섬이, 특히
과거 마을의 골치덩이 악당 리버티 발란스에게 용감히 맞서서 그를 물리친 영웅
랜섬이 고작 가족도, 명성도 없는 과거의 총잡이 '톰'의 장례식에 온 이유가 회상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막판에 하나의 반전이 있고,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기고 쓸쓸히 혼자 살다
죽어간 인물, 톰이 정말 진정한 남자중의 남자였다는 비밀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큰 비밀을 안고 모든 것을 양보한,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하는, 외지에서 온 남자 랜섬을 위해서 모든 것을 양보하고 그의 출세를
위해서 기꺼이 길을 비켜준 톰, 총의 시대가 아닌 법과 지식의 시대를 위해서 랜섬에게
사랑하는 여자까지 양보한 톰, 겉으로는 용감하고 강한 남자였지만 할리를 포기하고
너무 괴로워하는 존 웨인의 후반부분 연기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렇게 아파하는
그의 옆에서 묵묵히 함께 있어주는 충직한 하인 팜피 역의 우디 스트로드의 역할도
인상적인데 우디 스트로드는 '스팔타카스'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 인상적인 역할을
비롯해서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프로페셔널'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을 한 장신의
흑인배우이며, 쓸쓸한 남자 톰 옆을 항상 지키는 충실하고 우직한 하인 역을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여배우는 존 포드의 단골 모린 오하라가 아니라 베라 마일즈가 등장하여 식상함
대신 신선함을 줍니다. '수색자'와 '사이코'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베라
마일즈는 두드러진 미인은 아니지만 차분한 연기로 랜섬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한 편으로는 톰의 마음을 본의 아니게 아프게 하는 여인 할리 역할을 담당합니다.
리 마빈은 악역인데, 이미 50년대 악당 단골 조연배우로 잔뼈가 굵은 그는 이
영화 이후로 위상이 더욱 높아져서 주인공 역할도 많이 했고,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 배우로 성장합니다. 대표적인 대기만성형의 배우입니다. 그의 똘마니 중
한 명으로 리 밴 클리프가 등장하는데 이미 '하이눈'에서 악당 역으로 단역
출연을 한 이후로 1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작은 역할 입니다. 이 배우도 참
오랜 기간 무명배우의 설움을 이겨내고 결국 마카로니 웨스턴의 스타가 되는
셈입니다.
참전용사 제임스 스튜어트가 전쟁영화 출연을 기피했고, 군 면제 배우인 존 웨인이
영화속에서 전쟁영웅 같은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었듯 실생활에서 두 배우의
역할이 현실과 달랐는데, 이 영화에서는 존 웨인은 진짜 남자이면서 모든 영예를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양보하고 쓸쓸하게 살다 죽어간 고독한 역할이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정의롭고 용감한 인물이긴 하지만 존 웨인의 희생에 의해서 만들어진
약간의 허상의 영웅을 연기한게 특징입니다. 물론 두 배우의 역할이 모두 정의롭고
용감한 '선역'이었지만, 악당 리버티 발란스가 죽은 이후에 랜섬과 톰의 미래는
너무도 상반되게 달랐습니다.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과연
무엇이 최선이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쉽지 않은 희생을 한 톰의 캐릭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존 포드 감독의 연륜의 깊이가 정말 물씬하게 풍기는 영화입니다. 여기에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두 배우를 역시나 상반된 캐릭터로 적절히
잘 활용하였는데, 살짝 아쉬운 부분은 50대 중반의 두 배우가 청년의 역할을
연기한게 다소 부담스러웠던 느낌입니다. 딱 10년만 젊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존 포드 감독의 입장에서는 두 캐릭터를 맡기기에 두 배우만큼
높은 위상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기할 대체 배우를 찾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헨리 폰다 대신에 제임스 스튜어트, 모린 오하라 대신에 베라 마일즈가 등장한
것 정도가 좀 신선한 느낌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존 포드 감독을 거론할 때 고전영화 팬들에게 쉽게 꼽히는 영화가 '역마차' '황야의 결투'
'수색자'같은 영화지만 저는 그의 무르익은 관록과 깊이가 물씬 스며든 진정한 걸작은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존 웨인이 연기한 수많은 영웅적
연기를 한 영화가 있지만 이 영화에서의 톰 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인 역대급
캐릭터라고 보여집니다. 헨리 하사웨이 감독의 '진정한 용기'에서의 애꾸눈 보안관역할과
함께 가장 진짜 남자다운 역할이었습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마상의 2인'에 이어서 다시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것이고,
이후에 존 포드의 영화 '샤이안'에서 와이어트 어프 역할로 특별출연하기도 합니다.
존 웨인과 제임스 스튜어트의 차이라면 제임스 스튜어트는 이후 슬슬 자신의 시대를
끝내가면서 인기도 하락했고, 존 포드 감독과 함께 후배들을 위해서 물러서는
시기를 맞이한 셈인데, 존 웨인은 이후에도 10여년간 흥행배우로 활약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의 정통 웨스턴 스타일의 캐릭터를 유지했고.
관록있는 감독과 관록있는 배우들이 합을 맞추면서 무르익은 노련함을 바탕으로 진국
같은 영화를 뽑아낸 것이 바로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입니다. 여기에 악역인
리 마빈과 여주인공 베라 마일즈, 그리고 리버티 발란스에 맞선 또 한 명의 남자인
신문사 운영자 피바디 역의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그리고 충직한 하인역의 우디
스트로드까지, 여러 노련한 배우들의 힘이 발휘된 작품입니다 존 포드라는 거장
감독의 진가를 확인하고자 할때 저는 이 영화를 가장 전면으로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게리 쿠퍼가 좀 더 오래 살아서 '하오의 결투'에 존 웨인과 함께 출연했다면
과연 누구의 이름이 오프닝 타이틀에서 더 앞에 등장했을까요?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면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가 예정대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ps2 : 리버티 밸런스라고 발음할것 같은 철자인데 '발란스'라고 발음하더군요.
ps3 : 존 포드 감독은 이 영화 전후에 찍은 영화들이 칼라였는데 이 영화를 흑백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톰의 쓸쓸하고 저물어가는 캐릭터가 더 깊이있게
느껴졌습니다.
[출처]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62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