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짓게 깔릴 무렵 의식을 회복하였다. 무의식 중 에는 옛 시절들이 고스란히 필름처럼 지나갔고 여지껏 무엇을 쫓아다닌 것인지는 모르나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지배감에 골이 아파 왔다. 여기가 병실인가!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지!
"야, 너는 우째 된 녀석이 밤길 무서운 줄을 모르냐?"
"뭐라고?"
"어제 술 먹고 도로로 뛰어들더니만...... 아주 쌩쑈를 해요, 빙신."
"아, 내가 술 취하면 인사불성이잖아."
도로로 뛰어들기 몇 십분 전 우리 일행은 나이트클럽에서 요란뻑적지근하게 몸을 풀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나이트클럽을 나와 택시를 잡으려다 그만 병실행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에궁! 못난 놈은 어딜 가나 말썽이구나!
퇴원을 하고 어중간한 지점에 서서 이런 망상을 한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기로에서 죽어야 되는 사람인가! 살아도 될 사람인가! 길을 정한다. 그리곤 살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까지 안 나타나는 내 배필은 어디에 있을까! 쭉 생각하고 있다보면 답은 하나다. 가던 길 계속해서 가야한다.
대학을 들어 온 지도 2년을 훌쩍 넘었는 데 편입을 준비하다보니 너무 안이하게 생활했던 것을 후회하곤 한다. 이렇게 편입되기가 어려울 것 같았으면 애초에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해 보아도 과거는 흘러간 시계의 잣대에 불과하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전진하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4년제 대학교에 합격을 했다. 앞으로 과연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하고 멍하니 정신을 놓고 앉아 있으면 엄마가 슬금슬금 옆에 와서는 내 뒤통수를 신나게 후려친다. 아파! 하여튼 어떻게 되먹은 머리통이 한시도 쉬지 않고 온갖 잡념을 쏟아 내는지 그 머리통에게 답변을 해 주기에는 내 입이 너무 무디다.
학교 편입생 OT가 있는 장소로 향한다. 약간 늦은 감이 있어 뒤에 서 있었다. 한 여자학우가 내 옆을 지나갔다. 어! 바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외면을 하며 자신의 학과 좌석을 향하여 갔다. 불연 듯 찬스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내 뇌리를 스쳐간 아이디어는 그녀와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는 것이었다. 이 것은 필연이라고 밖에는 달리 증명될 만한 문서는 없다. 어찌되었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정이 들었다. 그녀는 고교생활 3년 간 나의 짝사랑이 돼 주었다.
기억력의 한계를 모를 정도로 유치원 때부터의 일이 스물 두 살인 지금도 생생하게 필름에 담겨져 있다. 지난 과거의 사건들은 나를 속박하고 있다. 죄책감과 멸시와 증오가 한데 어우러져 그 기억이라는 로컬디스크는 끝내 나를 타락하게 만들 것이다.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모두 저장되어 있는 로컬디스크에는 분명한 파괴장치가 필요하다. 정확히 현 시점에.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줄곳 1등을 독차지하였다. 그러나 이 것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일 때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이름은 김진경. 유난히 까만 피부에 꼬질꼬질한 인상착의는 혐오감을 방불케 하였다. 진경인 내 앞자리에 앉게 되었는 데 여기서부터 일은 꼬여 간다. 특별히 안 좋은 감정은 없었으나 단지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진경인 나에게 구타를 당했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장면의 연속이다. 세상에 초등학교 3학년인 내가 연장을 사용하여 진경일 마구 구타하고 있다. 반달도시락이라는 스텐레스 연장으로. 결국 진경이와 멀어졌고 업드려뻐쳐 1시간을 선고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생에게는 업드려뻐쳐 1시간은 거의 죽음이었다. 다리가 오들오들 떨리고 팔은 점점 꺽여만 갔다. 1시간의 죄값을 치른 뒤엔 땀이 물 흐르듯 내 상의를 적신다. 더욱 모욕적인 것은 스텐레스 연장으로 진경일 때린 것을 진경이의 엄마께서 본 것이다. 아직도 진경이는 나를 무서워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듯 싶은 데 진경이로 보이는 아이에게 다가가 "야, 너 진경이구나! 오랜만이야." 하니까 "저, 진경이 아닌데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이목구비며 목소리는 내 로컬디스크에 입력되어 있는 진경이었다. 후에 그 아이를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나를 모르는 척한다. 왜일까? 그것은 내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방어태세라고 보면 옳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남들 보다 먼저 사춘기가 왔다. 이성에 눈이 띄어 선지 이상한 상상도하고 여자아이들이 달리 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녔는 데 선생님 딸이 내 동창이다. 사춘기가 돼서 그런지 몰라도 그 아이가 내 눈엔 이성으로 보였다. 그 위로 중학교를 다니는 언니가 한 명 있었는 데 그 누나는 무언가 먹거나 사고 싶을 때 그 물건의 광고를 따라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어떠한 군것질거리도 제공하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여자 속옷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엄마의 팬티와 브레지어를 내 몸에 착용하기도 하고 아니면 팬티는 모르니까 아예 입고 다니기도 했다. 놀랍게도 남자 팬티 착용감과는 전혀 다른 포근하고 푹신푹신한 촉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것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내가 게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난 신장 190에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이다. 그 때엔 요즘에 말하는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기도 했다. 남자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성대에 변성이 찾아오고 자아 체계가 갖추어 지려고 하는 초급 단계이므로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다는 욕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뿐이고 중학생으로 진급하면서 남자들만의 세계가 펼쳐지면서 여성스러웠던 점들이 남성화가 된다.
아무튼 그렇게 사춘기 초읽기 접어든 나는 중학생활의 최대의 오점으로 남을 만한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당시 우리 교실은 여자화장실의 옆에 있었다. 그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금남의 지역에 침투하여 그녀들의 엉덩이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앞섰다. 뇌의 중추에서 그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나는 금남의 지역에 발을 내딛었다. 그 때 시각이 점심시간이었는 데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은 뜸했다.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방 하나를 잡고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여학생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그작사그작. 발자국 소리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앞자리에 여학생이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본다. 몸을 수그린다. 틈새로 눈을 들이댄다. 이 순서로 여학생의 엉덩이를 짜잔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세운 순간 내 방을 두드리는 여학생이 있었다. 결과는 뻔하다. 담탱이한테 죽도록 얻어 맞았다. 마대자루로 엉덩이를 50대 넘게 후려 맞고서야 석방되었다.
중2가 돼서는 담탱이한테 자퇴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2학년 때 담탱이는 수학을 가르치시고 계셨는 데 학기초 신상기록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 B4용지로 5장정도 되었다. 꼼꼼한 성격인지 아님 괴상한 성격인지 내 로컬디스크에서는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 많은 분량의 숙제를 제한기간 2일 안에 해 오라고 했는 데 난 단 1장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배짱이 두둑한 건지 깡다구가 겁나게 쌨던지 암튼 숙제라는 것 자체를 본체에선 하기 싫어했다. 담탱이가 하는 말이 "자꾸 이렇게 숙제 안 해오면 너 퇴학처리 되는 수가 있어." 협박어조로 날 위협했다. 다 해서 냈더니 그런 말이 자신의 주둥아리에서 나오지도 않았다는 듯 날 은근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도 열 받으면 어떴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어야 하는건데...
다행히 자퇴는 하지 않았다. 나와 덩치가 비슷한 녀석 하나가 내게로 걸어 왔다.
"야, 네가 성규를 그렇게 괴롭혔다며?"
"어? 엉!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 아주 못된 애구나. 너 그딴 짓 안 하도록 내가 1년 동안 두고 보겠어. 알아들어?"
순간 쫄 수밖에 없었다. 주먹이 올라오려다 말았으니깐. 그 후로 그 녀석은 내게 심한 구타를 날마다 행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패거리들은 고작 3명이었지만 내가 방어능력이 없던 관계로 매일 조터지기 일수였다. 하기야 맨 날 하는 짓이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것 밖에는 없었는 데 싸움을 잘할 턱이 있나. 하루는 도형이라는 놈이 내 물건을 숨겼길래 이리저리 찾는 시늉을 하다가 원삼이에게 좀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점심 시간이 되었는 데 참 어이없게도 밥 먹는 날 그 큰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후려치는 것이었다.
"아, 야이 씨발 새끼야. 개도 밥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는 데 왜 때려? 내가 개만도 못하다 는 거야?"
"잘 아시는 구만. 어, 넌 개만도 못한 인간이야."
밥 먹는 도중에 어이없이 당한 터라 손쓸 수도 없었는 데 어느새 내 주먹은 있는 힘껏 원삼이의 면상에 착륙하고 있었다.
"허, 이젠 네가 날치냐? 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원삼이도 나를 향해 훅을 날리려는 모양이었다. 순간 아찔해서 찔끔 눈을 감아 버렸다.
"아휴, 이 개새끼를 어떻게 요리를 해 먹지. 아무튼 너 경고하는 데 이딴 식으로 또 덤비면 그 땐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어우, 재수 없는 새끼."
그러는 넌 뭐 재수 있는 줄 아냐? 너 같은 부류의 양아치들은 소년원이 고향이다. 육시라할 놈아. 그 자리에서 우리 둘의 대면을 관람하던 아이들은 나에게 성원의 함성을 터뜨렸다. 어떻게 그 무대포 녀석에게 대들 수 있냐고.
가을에 접어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원삼 패거리 중 제일 힘없게 생긴 한 마디로 생양아치같은 녀석이 나한테 와서는 다짜고짜 "눈 깔어, 눈 깔라고 했잖아. 이 씨발놈아." 하면서 내 뒤통수를 후렸다. 이유도 모른 체 억울하게 맞고 있었는 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대들면서 그 녀석의 면상을 할퀴었다. 할큄과 동시에 즉방으로 반응이 왔는 데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뒤에서 주먹으로 있는 힘껏 대가리에 날렸다. 뜻 밖에도 그 광경을 국사 선생님께서 보시고는 우리 둘 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1시간 동안 반성하라고 하셨다. 그 녀석이 꿍시렁 대기를 "아우, 등신같은 새끼. 선생님 오시는 것도 모르고 달려 드냐." 허이구, 그러는 넌. 나한테 그딴 식으로 밖에 행동하지 못 하는거니. 하여튼 양아치 새끼들은 다들 소년원에 집어쳐 넣어버려야 한다니깐. 빙신새끼. 하나 힘도 없는 새끼가 지 덩치에 2배도 넘는 나한테 깝치냐. 등신 머저리 새끼.
서울에서 한 명의 전학생이 왔다. 이름은 최용성.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그 녀석은 나의 우상이었다. 수려한 외모하며 너무나도 완벽했던 킹카였다. 전학 온 지 몇 일이 지나 원삼 패거리들에게 뭔 얘기를 이상하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학 온 녀석이 나를 티껍게 대하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용성이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은 - 이 일이 있은 후 용성이가 나한테 어떠한 제지도 가하지 않았다. 친구로서 모든 걸 대하였다. 그 녀석은 나의 코디네이터였다. 가방끈은 끝까지 내려 메고 다녀야 하고 머리는 매일 감아야 하며 공부는 이렇게 해야지 잘 된다는 시시콜콜한 자신만의 병법을 내게 전수해 주었다. - 내가 3학년 선배를 만나러 가는 데 원삼이가 다가와 목을 조르고 마구 구타를 하였는 데 마침 그 현장에 국사 선생님께서 증인이 되 주셨다. 뭐하는 짓이냐며 당장 그 손놓으라고 하시는 데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국사 선생님께선 원삼이가 나를 평소에도 이렇게 괴롭히냐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아니요. 지금 저흰 레슬링경기 연습 중이었어요."
"...에, 예. 레슬링경기 연습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헤헤"
"그 말 사실이지. 다음부터 복도에서 이런 장난하면 가만 안 놔둘 줄 알아. 종 칠 시간 다 됐으니까 어서 교실로 들어가, 어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삼인 교실 가서 죽을 줄 알라고 하였다. 교실 문을 열며 어이없게도 내가 국사 선생님께 다 고자질했다며 거짓부렁이를 늘어놓았다. 나에게 구타를 했던 아이건 안 한 아이건 꼬투리를 잡아서 다 나에게 뒤집어 씌었다. 그 뒤에 나온 아이들의 반응은 말을 안 하여도 뻔했다. 그러나 용성인 그 양아치들과는 달랐다. 자신이 전학 와서 나한테 한 짓을 반성이라도 하듯 정말 고자질했냐며 계속 나를 추긍하였다. 아니다. 난 절대 고자질하지 않았다. 용성아! 난 아니야. 원삼이 저 새끼가 나한테 뒤짚어 씌우는 거야. 난 절대 너흴 일러바치지 않았어. 믿어 줘. 제발!
원삼 패거리들이 교실을 나갔다. 나의 말은 하나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힘있는 원삼이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도 모르고 전부들 날 쏘아보며 욕을 해대는 데 지옥의 수렁에서 살아 나올 방법은 없는 듯 했다. 들어는 보았지만 그 배후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애시당초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고 죽지 못해 사는 그런 처절한 한 해였다. 내게서 치욕으로 남았던 근 10개월 동안의 중2생활은 종반부로 치닫고 있었다.
뇌. 그 중에서도 본체에 해당하는 대뇌에서 이상신호를 알린 건 봄방학 때였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무장도 안 돼 있었는데 바이러스들은 내 대뇌의 여러 부분에서 무차별 공격을 하였다. 지끈지끈하고 더 이상 내 몸뚱아리가 내 것이 아니었으며 내 정신에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자리잡아 진을 치고 있었다. 작은 엄마와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 왔는 데 쇼파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분명히 나였지만 난 어디론가 사라지고 고깃덩어리의 몸뚱아리만 떡하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영화 '롬머맨1'에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가상현실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가고 얼굴윤곽이 없는 그런 몸이었다. 그 때 난 분명 쇼파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내 영혼은 저 멀리 광야를 향해서 몸을 떠나 4차원의 세계를 여행 중이었다. 내 몸뚱아리는 앰블런스에 실려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내 몸뚱아리가 누워 있는 침대 건너편에선 산모가 거품을 물고 임신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몸뚱아리는 지 의지가 있었는지 자꾸만 병동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다음 날.
몸뚱아리는 병동에서의 탈출을 성공시키고 집으로 무거운 자신을 한 발짝, 한 발짝 이동하기 시작했다. 힘이 없었는지 맥을 못 추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엄마와 아빠는 이런 내 몸뚱아리를 부추겨 겨우 택시에 탑승시켰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해서는 피아노방에 자리를 깔고 녹초가 된 자신을 서서히 눕혔다.
내 영혼은 4차원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있었다. 환상과 망각의 세계. 끝을 알 수 없는 미로를 따라 나오면 또 다른 반구가 나오고 그 반구의 평면에 봉착하니 드래곤볼에서나 볼 듯한 신이 계셨다.
"소년이여, 잠시 머물거라."
"여긴 어디죠? 그리고 당신은 누구시죠?"
"편안히 놀다 가거라. 장차 너의 집이 될 터이니."
새하얀 카펫이 깔려 있고 신처럼 보이는 어른의 뒤로는 올림푸스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예수님도 신처럼 보이는 어른의 오른쪽 자리에 앉아 계셨다. 그러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얼굴 주위에 영광의 해가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여, 이리 오너라."
"저요?"
"이 곳에 형제말고 또 누가 있는가!"
내 영혼은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태고적으로 돌아 간듯한 기분이었다.
"승현아, 승현아."
깊이 잠이 들었었나 보다. 눈을 뜨고 보니 왠 양아치새끼들이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원삼이와 도형이. 그리고 내 소꿉친구 김종기.
"야, 그렇게 많이 아팠어?"
"......"
"말을 못 하는 거 보니까 아프긴 많이 아팠나 보네."
원삼인 너무도 선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도형이 역시 선하게 변해 있었다.
"중2 올라오면서 네가 너무도 바보같이 행동해서 난 그저 장난 좀 쳐보자고 한게 어쩌다 보니 널 이 지경까지 오게 했는가 보다. 솔직히 너같이 착한 애가 어디 때릴 때가 있겠냐! 이제 마지막 남은 중학생활 사이 좋게 지내자."
녀석들이 너무 다르게 날 대하니 난 다시 천국에 온 듯 하였다. 친구가 되었다.
학교를 2주 동안 안 갔다. 그 기간에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 데 뜻 밖에도 영통에 새 학교가 3군데나 들어서서 도희와 희중이와 함께 청명고등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남녀공학이었고 학교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교통편이 좋아서 맘에 들었다.
1-4. 일 학년 사 반. 낯익은 학년과 반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한 등급이 업될 때마다 일 학년 때는 사 반이었다. 우연치곤 너무나 가소로운 신의 작업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여자 앞에서 말 한 마디 못 하고 뻘쭘하게 허공을 주시하는 내 동공이 너무나 메말라 있었다.
편입한 학교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것은 정말 우연치곤 꽤나 신중한 신의 작업이다. 어떻게 이런 작업을 시작했는지 모르나 나에겐 너무나 감사한 작업이다.
"여보세요?"
현정이의 음성을 처음 접한다.
"나 기억해? 나 세나친구 승현인데. 왜 있었잖아. 쎄데에 - 에스파냐 - 동아리."
"아, 맞아. 키 무지 크고 약간 뚱뚱 했었는데. 잘 지냈어?"
"나야, 뭐. 그럭저럭."
"근데 편입했다면서?"
"어,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전적학교랑 동일계열동일학과 지원이야."
"글쿠나. 난 보건관리관데. 너네 교육관 바로 옆이야."
"난 1관이고 넌 2관이지. 멀리 있는 것도 아닌 데 밥이라도 같이 먹자."
"......"
현정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피식 웃고만 있다. 현정이도 내심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계속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뇌파가 베타파가 나오고 있었으므로 졸음으로 이어진다.
다음 날. 낮 12:00
"여보세요?"
"여기 동남보건대학 입학관리처인데요......"
"예? 그래서요?"
"추가합격 되셨는데 등록하실 겁니까? 아니면 포기하실 겁니까?"
순간 내 심장은 멈췄다. 충격이다. 이렇게 신비로운 작업을 하시는 하느님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등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협성대에 자퇴원서를 내고 동남보건대학에 등록을 하러 간다. 이제부턴 정말 내 능력을 맘껏 발휘해 볼 실습장이다. 손재주가 좋은 나로선 치기공과가 더할 나위없는 직업이다.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먼저 공양을 한다. 그러곤 근행을 하고 제목을 30분 부른다. 이것은 우리 KSGI멤버라면 하루도 안 빠지고 아침과 저녁타임에 하는 행사이다. 상쾌한 공기를 한움큼 짚어 삼키고 나면 속이 뻥 뚫려 너무나도 환희의 생명이 용솟음친다.
삼일아파트를 지나 현대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백십이번이 오면 보건대를 간다. 수업에 늦을까봐 걸음을 재촉하는 고등학교 아이들. 너무나 불쌍하다.
후문을 통해 해운관에 입성한다. 2층 208호로 향한다.
수업이 10분 정도 흐른 뒤에 내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앉았다. 이름은 이고은. 나이 82년생. 출신초교 권선초교. 출신중학 곡선중...... 엥! 뭐라고, 곡선중 나왔다고?
고은이와 나는 곡선중학교 동창인 것이다. 오! 마이 갇. 제게 이런 축복을 주심을 감사히 여기고 앞으로도 신심 근행 근본으로 학회활동 활발히 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엔 자기소개를 함으로써 학우들의 얼굴을 알아 가는 시간을 행했다. 의외로 82년생들이 많았다. 앞으로의 동남보건대학 치기공과의 수업이 즐거울 것 같다.
이천삼년 삼월 십팔일.
한 통의 메일이 왔다. 현정이에게서 였다. 내가 자신을 3년 동안 좋아했다는 걸 알고 너무 충격이었나 보다. 나도 충격을 먹었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도령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냥 친구이다. 그렇게에 결혼은 생각치도 말자. 그것은 나의 환상이었다.
왠지 그들이 나를 피하는 눈치다. 내가 말을 걸어 봤자 피자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그렇기에 우린 대화를 단절하고 산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때부터일 것이다. 언경이 누나가 나한테 반말하지 말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일이 꼬이고 꼬인다. 사실 은혜에게 내가 오티때 눈뭉치를 그것도 돌같이 아픈 눈뭉치를 그애의 목덜미에 내리 꽂았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우리 조 여자들은 나를 냉대하였다. 오늘도 은정이 누나한테 말 걸려고 다가갔지만 은근히 날 외면한다. 고은이와 함께 있었지만 은정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나를 거들따 보지도 않았다. 이제부터 나도 그들에게 냉대해야 겠다. 나에겐 친구란 남자면 족하다. 그것이 더 편하다. 나를 이해해 주는 여자 따윈 바라지 말자.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나에겐 여자가 없다. 친구는 있을 지언정 애인은 없다. 그 누구도 나를 남자로 보는 여잔 없었다. 물론 그것이 나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받는 내 입장에서 그녀들은 나를 외면한다.
첫 째, 내가 남자자격을 박탈당한 것은 어느 시점인진 모르나 여자들 속에서 파묻혀 살다 보니 창우도 떠나고 막내로 남았던 주성대학 시절이다. 그녀들은 날 너무도 짖이겨 놓았고 그녀들의 세계에 쇄뇌시켰다. 여자 편에서 남자를 이해해야 했고 그녀들의 수다 속에서 모든 분위기를 파악해 갔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냐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말한다. 그것은 내가 적어도 대학에 들어 오기 전에는 남자다웠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여자 앞에서 쑥스러워 말 꺼내기 조차 꺼려했던 내가 이젠 여자 앞에서 당당하다. 그것을 고치느라 학기가 바뀔 때마다 변화가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이젠 여자 말이면 굴복한다. 난 절대 그런 남자가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대학에 들어 갔는 데 내가 그 꼴이 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남자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내 삶을 돌이켜 볼 때 여자들이 날 은근히 따돌리고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들 눈에 가급적이면 안 띄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어떻게 안 띨 수가 있겠는가 같은 학교 내에서 살을 맛대고 강의 받는 처지에...^^
나에게 사랑은 없다. 뭐든지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이 되 버리고 마는 것이 내 삶이다. 여차저차해서 널 좋아해 라고 말하면 그녀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 나 너 안 좋아해. 등 많은 핑계를 대면서 나를 그녀의 부류에서 제거하려 든다. 기정사실이다. 미옥이가 내게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난 피식 웃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옥이가 아끼는 사람은 태훈이다. 그가 제대할 때까지 미옥이에게 당부했다. 절대로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말라고... 여자들의 마음은 왜 갈대인가? 왜 한 곳만 바라 보지 못하고 현실에서 멀어지면 그 마음도 멀어지는가? 괴상한 착상이다. 물론 내가 미옥이를 좋아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난 가영이도 좋아한다. 가영이에게 어떤 해꼬지를 할 때 난 마구 화가 난다. 그렇도록 그 애가 좋다. 근데 여자들은 한 남자를 바라보지 못한다. 물었다. 물치과에 괜찮은 애들 많으냐? 어. 어떻게 많으냐? 태훈이보다 좋냐? 모르겠어. 너무 괜찮은 애들이 많어. 이쁜 것들은 고르려는 기회나 있지 우리같이 못 생긴 것들에겐 그런 고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사회다. 내가 가영이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과애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아인 내가 바라보기엔 넘 벅찬 상대이다. 그 아이는 내 마음 속에 담기엔 너무나 큰 곳에 있고 내 망음 속에 묻힌다면 그 아이는 영영 좋은 짝을 만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내 그릇이 작다. 그 아이는 너무 크고 난 그릇이 작다. 그런데도 난 2년 동안 노력 아닌 노력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가영이를 안아 보고도 싶고 같이 자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순 양아치같은 발상은 나를 더 억메이게 하였다. 물론 지금은 그런 감정이 없다. 그렇게 떠나 보냈는 데 지금 내 앞에는 여자라는 장애물이 또 있다. 치기공과의 여자들은 날 대체 뭘로 생각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아는 척도 않 하고 같이 놀아 주지도 않는다. 남자들 사이에 끼기엔 내가 너무 여성화되어 있다. 그래서 난 지금 고립되어 있다. 비상구가 어디 하나라도 있으면 그 곳을 향해 질주하고 싶다. 문제는 그 비상구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떠들었던 것이 어쩌면 나의 일부일 지도 모른다. 그 일부를 보고 날 판단하라고 맞긴다면 누구하나 제대로 날 다시 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지금까지 현황과 삶 그 자체이므로 날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유다. 그러므로 내게 갈채를 줘도 좋고 질타를 줘도 좋다. 단지 주성대학에서의 승현이를 잊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모습을 잊어 주기 바라며 쓴 글이다. 내가 변태짓도 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벌였다. 주성대학에서의 내 삶이 다가 아님을 인식해 주기 바란다.
첫댓글 즐건 그리고 보람찬 대학생활이 되세요!!!!!
고맙습니다. 님께서 읽으신 부분 아래에 또 써 넣었어요... 그것두 읽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넵... 지금은 즐겁고 보람찬 대학생활을 하고 있어요... 광포의 인재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