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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과 정수 제 53차 정기 답사(안) : 11/18(토) (논산 & 서천)
(사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촬영지 신성리 갈대밭) 1. 답사일시 : 2006년 11월 18일 (토) 7시 출발 2. 출발장소: 압구정역 공용주차장 (6시 50분까지 집결: 지하철 3호선 6번출구) 3. 여행장소: 논산쌍계사-관촉사-강경젓갈-나바위성지-한산모시관-신성리 갈대밭 4. 여행일정
1. 답사인원 버스 : 44명 / 개별차량 26명 (총 70명) 2. 회 비 가.버스: 회원 성인 37,000원/ 초중고 34,000원/비회원 42,000원 (전세버스비, 점심, 자료집비, 사전답사비, 입장료, 주차비, 여행자보험, 식대, 주류, 음료, 간식) 나. 개별차량: 성인 22,000원/ 비회원 24,000원 3. 입금은행 :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4. 답사 신청방법 가. 아래의 답사신청양식에 의해 '53차 논산서천답사'게시판에 신청한다. (답사신청만 하고 입금하지 않는 분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닉네임/이름/e-메일주소/ 성별/주민등록번호(멜요망)/주소/연락처(핸드폰)/ 개별차량 출발지(예 서울 OR 광주)/버스/자가차량/차량제공여부/답사에 임하는 글/답사 한번이라도 참가했던 장소 (예 영월답사) - 실명과 주민번호를 게시판에 올리지 말고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행자보험 가입 위해 반드시 필요) - 1사람당 2명까지 신청할 수 있습니다. 3명 이상은 신청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모놀가족의 참가를 위해)- 한번이라도 답사 참가하신 분은 신청양식을 생략해도 좋습니다. 대신 꼭 참가했던 답사지를 말씀 주세요. 인원이 많다보니 찾기가 무척 힘드네요. 다. 우선 '53차 논산서천답사' 게시판에 먼저 답사 신청을 하시고 신청자 중에서 입금자 순서에 따라 선착순 마감합니다. 제발 답사 신청 전에 먼저 입금 하지 마십시요. 답사 신청으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라. 입금은 신청자 실명으로 해야 합니다. 입금자가 상이할 경우 반드시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셔야 합니다. 계좌번호 잘 확인해 주세요.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마. 입금 후 답사신청게시판에 "입금완료"라는 머리말을 표시하여 게시판에 올려야 합니다. 개별차량은 9시 30분까지 호남고속도로 논산IC 근처 논산 쌍계사로 집결해주세요. 약도는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바. 답사 신청일은 11월 8일 (수)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받겠습니다. 10시 이전에는 글쓰기 권한을 드리지 않습니다.(모놀답사가 하도 빨리 마감이 되어 항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똑같은 기회를 골고루 드리고자 이 같은 방식을 취했으니 양해바랍니다. ) 사. 회원과 비회원의 차등을 두었습니다. 저렴하게 가실려면 회원에 가입하십시요. 5. 환불 11월 11일 까지 취소자: 전액 환불 -취소벌금은 퀴즈 선물대금으로 사용하거나, 기타 행사비용으로 충당합니다.
6. 이번 답사여행의 특징 -논산의 조용한 불교유적지를 둘러봅니다. 백제는 망했어도 그 손재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높이 19m 우리나로 최대의 석불인 관촉사 관음보살입상도 볼 만하고 고즈넉한 쌍계사의 마당도 거닐 예정입니다. 예쁜 문살에 흠뻑 반할 겁니다. - 신성리 갈대밭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11월이지요. 갈대가 일렁일 때마다 사각사각 숨소리가 난답니다. 이때쯤이면 철새도 날아들 것 같습니다. 이곳은 석양무렵에 가야 가장 볼 만하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일정지로 잡았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한산모시관도 둘러볼 예정입니다. -국내 젓갈생산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강경젓갈 한때는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명성을 얻은 곳이지요. 서해에서 잡은 생선이 강경으로 집산되자 팔고 남은 물량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염장법이 발달 한 것이 오늘날 강경젓갈입니다. 이 시장도 둘러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멋진 맛집을 찾아보겠습니다. 논산 특유의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여러모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혹시 좋은 곳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알찬 답사 준비하겠습니다. 문의: 모놀대장 이종원 (016-219-6001)
미리보는 답사사진
논산 쌍계사-조용하고 고즈넉한 절집입니다. 보물 제408호 쌍계사 대웅전
다양한 모양의 문살이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관촉사 은진미륵
강경젓갈
(나바위성지) 조선 헌종11년(1845년) 10월 12일 밤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입국, 첫 발을 디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천주교회는 이곳을 성지로 가꾸고 있다. 나바위성당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한국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 베르모델 신부(장약실·요셉)가 1897년 설립해 1906년(고종 광무10년) 성당건물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의포아넬 박신부가 도왔고 벽돌공과 목공일은 중국인들이 맡았다. 1916년에는 목조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여 이듬해에 마쳤다. 한국 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 건물은 특히 회랑이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31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바위 본당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서북지방에 있는 공소를 관할했다. 1929년 당시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본당으로 신자수가 3,200명에 이르기도 하였다. 1997년에 1백주년을 맞는 나바위 본당은 일제시대, 6.25를 거치며 이민족과 애환을 함께해 왔다. 1907년 '계명학교'를 세워 1947년 폐교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교육구국에 앞장섰고 신사참배에 저항하던 사제와 신자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성당을 지킨 사제 덕분에 단 몇 일을 제외하고 매일미사가 계속 봉헌되었다. 1949년부터는 간이진료소라 할 수 있는 시약소를 설립하여 1987년 폐쇄될 때까지 가난한 농민들의 건강을 돌보아 왔다. 나바위성당은 이곳에 1955년에 성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세우고 1991년에는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본받고 신심을 수양하는 피정의 집을 세웠다. 김대건 신부는 1836년 12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조국을 떠나 다음해 6월 마카오에 도착한 뒤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천신만고 끝에 입국하는데 성공하였다. 3개월 뒤 다시 11명의 조선인 선원들과 작은 목선인 라파엘호를 타고 제물포를 떠나 6월 4일 상해에 도착, 상해 연안 김가항 성당에서 8월 17일 페레올 고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뒤 입국길에 올랐다. 같이 출국했던 조선 선원들과 함께 페레올 고주교, 다블뤼 안신부를 모시고 모험 끝에 황산포구 나바위 기슭에 상륙하였다. 동승하였던 교우 한 사람이 3분의 성직자의 도착을 알리고 그분들을 모셨다. (인터넷에서 퍼옴) 공동경비구역 JSA촬영지-신성리 갈대밭
한산모시관 모시만큼 손이 많이 가는 작업도 없을 것이다.모시풀을 껍질을 벗겨내고 태모시를 만들고 물에 다섯 번을 적셔 햇볕에 말랜후 이로 일일이 쪼개내어 모시째기를 하고 쩐지라는 버팀목에 걸어 놓고 한올씩 빼어 무릎위에 맞이어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하고....그 외에도 여러 직조과정을 거쳐 한산의 세모시가 탄생되는 것이다. 모든 공정이 기계가 아니라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산모시는 인간내음이 풀풀 묻어나고 있다. 숙련된 장인이 꼬박 1주일 걸려야 모시 한필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힘겨운 노동력이 필요하다. 화려하고 값싼 섬유가 쏟아져 한산모시는 그 명맥만을 유지했지만 천년을 세월을 한결같이 버틴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시옷 한벌 가격이 50만원을 호가하지만 그 힘든 공정을 알게 되니 그 다지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근사한 예술품을 몸에 걸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흐믓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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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이름 : 모놀과 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