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벗고 살고, 한대에서는 두껍게 입게 마련이다. 벗으면 실례가 되는 것은 온대의 풍속이지, 열대에 가서 그런 예의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처럼 풍속은 지리가 결정한다. 풍속이 성립이 된 데는 경위(經緯)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떤 연유에선지 서양에서는 여자는 목덜미를 노출시키면 예의가 되고 남자는 다 가리고 있어야 예의가 된다. 통틀어 말하면 지리와 역사의 제약을 받는다. 풍속이 그렇듯이 사상이나 종교도 그러하다. 지리적 특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목성 같은 큰 천체의 주민이었더라면 엄청난 중력 때문에 서서 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아마 뱀처럼 기어 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미생물이었더라면 차지하는 공간도 작고 의식주에 돈도 안 들고 삶의 방식이 아주 달랐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엄청나게 거인이라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이 포유류가 아니라면 어떻게 思考할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지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주 조건적(條件的)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신체 곧 체격은 지구 조건과 지구상에서의 진화에 의해 정해졌다. 생물진화는 양성(兩性)생식을 고안했으며, 포유류를 거쳐 인간까지 왔다. 사람은 그런 경위의 소산이다.
이처럼 ‘사람은 주어진 존재 혹은 조건(條件)지워진 존재’이다. ‘던져진 존재’라고나 할까.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하늘이 명한 것이 곧 인간(人間)됨’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조건 기타 여러 조건 아래 ‘주어진 존재’이다. 우리는 ‘타고난 바를 따름’[솔성(率性)]으로써 길(道)을 따를 수 있다. 인도(人道)란 무엇인가? 하늘이 부여한 조건에 순응하여 알맞은 걸음을 걷는 일이다.
사람이 만일 미세(微細)하거나 거대한 존재였다면 양자론의 세계나 상대성원리의 세계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뉴턴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포유류와 영장류로서 느끼며 사고하며 싸우며 사랑한다. 우리는 우선 동물의 조건 아래 살면서 자아와 타자(他者)의 관계 곧 나와 남이 있는 틀에서 살고 있다. 내가 있으므로 욕망과 주관이 있고 소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 정신적 존재로서 욕심을 이기고 자기를 죽이고 객관(客觀)을 추구하며 영적 존재에로의 승화를 한다. 선과 사랑을 창조해야 할 숙명에 있다.
나/우리에 대해 남이 있는 관계는 우리에게 주어진 엄중한 조건이다. 투쟁과 경쟁이 있게 하늘은 그런 관계와 성품(性品)을 내렸다. 싸움 없이는 힘이 나지 않는다. 고등한 싸움을 하게 해서 계속 힘을 발휘케 해야 인류가 제대로 살 수 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의 승화(昇華)가 인류의 과제이니, 실로 대과제(課題)이다.
사람은 동물을 거쳐 인계되어온 본능이 있고 마음이라는 본능도 있다. 마음을 본능이라 하면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마음의 상당한 부분은 본능과 통한다. 마음이 두뇌에서 나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뇌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랜 진화의 산물로서 수억 년의 경험의 결정이다. 누대의 경험이 DNA의 사슬로서 뇌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것이 마음 혹은 관념으로 나타난다. 관념은 대대로 이어온 장기간의 경험이 쌓인 것이므로 경험이냐 관념이냐의 대립은 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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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생물진화를 부정해야 사람의 존엄성이 지켜질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며 이 과학에 입각해야 바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사상과 철학을 전게시킬 수 있다. 사람은 동 물 출신이지만 우뚝 선 새 존재이다. 생물진화를 인정할 때 진실로 사람은 숭고하고 존엄하다. 이상한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사상이 더 나아갈 수 없다. 그의 철학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사실(事實)을 멀리하면 엉뚱한 생각의 노예가 되어, 사상의 전개(展開)에 있어 언젠가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다.
사람은 동물과 공통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동물은 서로 잡아먹고 살게 되어 있는 그 투쟁이 있어서 건강이 유지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 이상이다. 동물은 한 마리만 잡아먹고 잠시 만족하지만 사람은 민족을 말살하기까지 한다.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살려두었다. 이런 참상을 보면 창조주를 원망하게 되지만 창조주도 그리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견해가 있을 만큼 오묘하게 (동물들은) 싸움으로 얽혀 있다.
이렇게 생물진화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현실 사태를 떠나 사색만 하면 관념적이 되어버린다. 인도에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이 있다. 범은 우주이고 아(我)는 자아 혹은 마음 혹은 영혼이다. 중국에서는 우주를 천(天)이라, 천하(天下)라 했다. 사람과 대립 대조되는, 우리를 둘러싼 전부! 그것에 비할 때 ‘나’나 ‘우리’ 속에는 얼마나 악한 것이 들어 있는지 그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간단히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낙관할 일이 아니다.
또 범어일여에는 나를 지나치게 과장할 나쁜 가능성도 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나머지 ‘마음이 진리(眞理)다’ 라고까지 강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위험하다. 내 ‘영혼의 영원성’은 어찌 보면 옳지만 지나치면 과대망상에 걸려 옛날 어떤 임금님이 자기가 하느님이다 했던 것과 같은 오류에 이르기 쉽다.
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 서로 일치하기 때문에 우주를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뇌를 사용하여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우주 자신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생물의 역사 누대의 경험이 쌓여 그것이 본능으로 나타나며 관념으로 나타난다. 이 관념은 우주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이다. 사람의 마음은 주관이고 우주는 객관이다. 범아일여는 주객(主客)의 통일을 의미한다. 주관과 객관은 엄연히 구별되지만 그 연기적 관계에 의해 하나가 된다. 엄연히 구별됨으로써 하나가 실현된다. 이러한 논의(論議)는 과학 이상의 철학적 논의이다. 과학과 철학은 연기(緣起)적 관계로 서로 얽혀 있다.
원숭이도 잘 훈련시키면 과학적 실험을 대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숭이가 철학을 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의 두뇌는 고도로 종합 통합하는 추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통일적으로 보는 기능은 우주적 능력이다. 동물은 생존을 위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생존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것은 전부(全部)를 통일적으로 보는 그 목적이다. 우주의 우주성 곧 전체성을 보는 그 일은 곧 신(神)을 보는 일이다. 근원적으로 보는 일이요 궁극을 보는 일이다. 이 반성이 우리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우울증과 자살
강 병 조
대구 배성병원 신경정신과 제1과장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4월 4일은 정신건강의 날이다. 이 날이 들어간 주간은 정신건강 주간이다. 40여 년 전 이 날을 정신건강의 날로 정한 이유는 이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4"자를 "死"로 연상시키기 때문에 "4"를 싫어한다. "4"자가 두 개나 겹치는 4월 4일은 모두 다 기피하는 날이다. 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이 날을 정신건강의 날로 정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과 정신병 내지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금년에도 정신건강 주간을 맞이하여 시민강좌 부탁이 들어왔다. 제목은 <우울증과 자살>이다. 우울증 환자의 2/3는 자살을 생각하고, 15-20%는 자살을 시도하며, 3%는 자살에 성공한다는 통계가 있다. 다른 정신과 환자들도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순간적인 생각이나 망상에 의해서 충동적으로 자살하기 때문에 자살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신과 의사생활 40년 동안 자살한 환자가 몇몇 있었다. 정신과 의사 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것이 환자의 자살이다.
조울병의 울증기에 고층 건물에서 투신한 환자도 있었고 우울증과 강박증을 동시에 가진 중년 남자의 투신자살도 있었다. 촌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부인을 사별하고 혼자 살았다. 자식들이 옆에 살았어도 외로움을 달랠 수 없어 농약을 마셨다. 부인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우울증을 오래 앓으면서 늘 죽고 싶다고 하던 50대 여자 환자가 모 탈렌트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난 후 자살했다고 아들이 진단서를 발부받으러 온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도 어떤 탈렌트의 자살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내 환자가 자살했을 때는 어느 신문에도 나지 않더니, 탈랜트가 자살하니 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가? 이런 현상을 정신과 의사는 <동일시 同一視 identification>현상이라고 한다. 즉 TV를 통한 그 탈렌트의 연기를 보면서 그 탈렌트는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현실 속의 그 탈렌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속의 그 아름답던 연기자만 생각한다. 그 아름답던 연기자가 자살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와 나 사이에 공감(共感)이 형성되어, 탈렌트가 내가 되고 내가 그 탈렌트가 된다. 이런 것을 동일시라고 한다. 그 탈렌트가 자살한 것은 내가 자살한 것과 같다. 그래서 내가 슬프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동일시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한 여고생이 생각난다. 이 여학생은 집안도 좋고 양친 다 성공하신 분이고, 공부도 잘 하고 실연한 것도 아니고 자살할 아무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의 요청에 의해서 면담하여 본 결과 자살 시도의 원인은 동일시 때문이었다. 이 여학생은 전혜린의 작품을 모조리 다 읽었다. 그리하여 전혜린처럼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전혜린처럼 죽으려고 소주와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었다.
사람은 왜 우울해지는가? 우울증의 원인은 뇌 속에 기쁨의 호르몬인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신경호르몬이 결핍되어서 생긴다고 현대정신의학은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호르몬들이 결핍되는가? 유전적인 요인도 있고, 이 호르몬을 생산할 수 있는 음식의 섭취가 적어서도 생길 수도 있으며, 심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아도 결핍이 생길 수 있다. 스트레스 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사망이나 자식의 사망이다. 입시에 낙방했다거나 실직을 당했다거나 실연을 당한 스트레스로도 우울증이 생긴다. 부부간에 성격이 맞지 않아도 우울증이 생긴다. 몸이 아파도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40대 후반의 여성이 폐경이 되어도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여성호르몬 자체가 일종의 기쁨의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에는 어떤 종류의 유형이 있는가? 스트레스 등 원인을 알 수 있는 우울증을 외인성(外因性) 우울증이라 하고, 특별한 원인도 없이 우울증이 생기는 것을 내인성(內因性) 우울증이라 한다. 햇빛을 적게 보는 계절에 많이 생기는 우울증을 계절성우울증, 주부에게 많이 생기는 우울증을 주부우울증, 노인에게 많이 생기는 우울증을 노인우울증 등등 이름 부치기에 따라 여러 종류의 우울증이 있다.
우울증에 빠지면 어떤 증상이 생기는가? 희망이 없고, 살 의욕이 없으며, 인생의 모든 면이 가치가 없어진다. 식욕도 없어지고 성욕도 없어지며, 잠을 못 자거나 오히려 많이 잔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난 사람 같고,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남을 위해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 형제, 처자식까지 모두 내가 없어져주는 것이 그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좀 당겨 죽는 것이 뭐 그리 서운 하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하여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 충동의 원인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수치심이다. 동양은 체면문화이고 서양은 죄의 문화라고 한다. 서양인은 죄의식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으나, 동양인 특히 한국인은 체면을 손상당하면 수치심이 생겨서 자살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창피하다. 앞으로는 얼굴 들고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죽자"는 생각으로 나아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가? 유전인자 치료는 아직은 할 수 없다. 음식으로는 단백질이나 오메가-3가 많이 든 어류를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적당한 운동도 기쁨의 호르몬을 생성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항우울제는 이들 호르몬의 생성을 많게 하거나 파괴를 막아서 우울증을 치료한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그 스트레스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알아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자살하려는 우울증 환자의 가장 빠른 치료법은 전기치료이다. 일반인들은 전기치료에 대한 인식이 나빠서 이 치료를 거부하나 실은 안전한 치료이다. 이 치료는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기쁨의 호르몬을 대량 빨리 생산시킨다. 효과가 빠른 사람은 단 한번의 전기치료로 우울증을 털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개 5-10회 정도만 받으면 자살 생각이 없어질 뿐 아니라 우울증이 회복된다.
그 다음으로 빠른 것이 항우울제의 투여이다. 항우울제 복용 후 2-3주가 지나면 우울증에서 회복되기 시작해서 약 6개월 정도면 회복된다. 뇌수술을 하는 방법이 선진국에서는 연구용으로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 임상적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다.
정신치료는 항우울제의 투여와 겸해서 하는 것이 좋다. 심한 우울증 환자를 정신치료로만 완치시키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미국에서 심리치료사가 심리치료만 하다가 환자의 고소에 의해서 재판에서 진 사례가 있다. 이유는 빠른 치료법이 있는데 그 방법과 병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약을 복용하지 말고 종교를 열심히 믿고 기도만 하면 낫는다"고 하는 말에 속으면 안된다. 기도하는 것은 도움이 되나 약을 복용하면서 기도를 해야 한다.
인간의 뇌는 3 부분으로 되어있다. 뇌의 제일 밑에 있으며 척수와 연결되는 부위인, 제일 오래된 뇌는 생명을 다루는 부분이다. 숨을 쉬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등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일을 관장한다. 그 위에 감정과 관계되는 뇌가 있다. 이것을 변연계라 한다. 이 변연계 위에 대뇌피질이 있다. 이 대뇌피질은 생각을 하는 곳이다. 이 뇌의 3부분이 회로를 형성하여 서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면 좋은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고, 역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즐거운 생각이 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생각을 좋은 쪽으로 해서 기분을 명랑하게 하는 치료가 인지정신치료이다. 효과가 더디나 일단 효과를 보면 오래 갈 수 있다. 약물치료는 약의 힘으로 기분을 즐겁게 해서 이차적으로 긍정적 생각이 나도록 하는 치료이다.
40대 후반의 한 여인이 자기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자기가 우울증에 걸렸다며 나를 찾아왔었다. 갱년기 우울증 환자였다. 나는 정신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약물치료만 하였다. 투약 후 2주가 지났더니 그 환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하여 보니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 불철주야 일하는 그 자체가 나에 대한 사랑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약으로도 생각이 바뀐다.
약으로서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일반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은 술을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지만 생각도 기분 좋은 쪽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술은 술이지 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술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되고 안전한 신경안정제이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에게 메스암패타민(일명 히로뽕)을 투여하면 피해망상증 환자가 된다. 수년 전 히로뽕 중독환자가 "누가 나를 잡으러 온다"는 피해망상이 생겨서 부산 서면 로타리의 어느 다방에서 사람을 인질로 잡고 난리를 피운 사건이 있었다. 메스암패타민을 복용하면 뇌에 도파민이 과량 분비되어 정신분열병과 같은 망상이 생기게 된다. 정신분열병의 원인도 여러 가지 가설이 있으나 도파민 과량 내지 불균형 가설이 현재 가장 인정받고 있는 가설이다.
어떻게 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겠나?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주위 사람이 자살하려고 하면 24시간 옆에서 감독하든지 아니면 빨리 정신과에 입원시켜야 한다. 자기 스스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렇게도 하기 싫다면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은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운동할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만사 싫고 꼼짝하기도 싫을 것이다. 이때는 차라리 꼼짝도 하지 말고 방구석에만 쿡 처박혀 있어도 좋다. 빈혈이 있으면 넘어지는 것이 뇌에 혈액순환이 잘 되듯, 가만히 쉬는 것이 에너지 축적이 되어 우울증 회복에 도움이 된다. 이것이 일본인 모리다 교수의 치료법이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자기가 개척하기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작고하신 경봉스님의 설법이 생각난다. "인생은 한 토막의 단막극이다. 자기가 각본을 쓰고 자기가 감독하고 자기가 연출하는 그런 단막극이다. 한 번 멋지게 연극을 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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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 시 항 : 2009년 3월 모임
3木 모임 -- 2009년 3월 19일 (목) 7 시
장소: 경북대학교병원 606병동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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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파일: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