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하성 운호가든집에서
고형렬
이상한 집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외진 口字 한옥
두 남자가 설거지를 하다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오후 5시였다.
여자는 어색하게 5호실로 들어가는 남자를 뒤따라
구두를 벗고
몸을 감추듯 안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안고.
돌아앉아서 신을 가지런히 밖으로 세워두는
여자는 얼굴이 작은 편이다.
한참 뒤
젊은이가
물과 물수건과 메뉴판을 가지고 돌아왔다. 남자는 소머리
국밥을 시켰다.
여자는 "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없이 밖으로 물러나갔다.
방안은 정적이 있었다. 뜯어진 도배지 틈이
붉은 황토를 내보이는 흙벽돌집이다.
김포 석양이 동편 벽을 비추고 있었다.
작은 창을 가린 처녀아이 속치마 같은 하얀 커튼 사이로.
'현대식 건물이 아니다.'
남자는 나그네, 여자는 돈 받고 따라온
색시 같았다.
그녀는 중매를 두고 처음 따라온 사람처럼 쳐다보고
웬일인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얼마 만의 둘만인가.
계속 둘이 말없이 뭔가를 기억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가 음식상을 마루에 내려놓고
노크를 한 것이다.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새롭고 즐거웠다.
"예."
잠시 후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나더니 드르륵
문이 열렸다. 청년은 상 앞에 예바르게 앉는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그는 살이 흰 김치와 삭은 깍두기
를 올려놓고
뚝배기를 올려놓고, 쟁반을 들고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맛있게 드십시오." 여자 같았다.
그때 둘은 합장하듯 총각을 쳐다보며 "예." 하고 얼른 대
답했다.
여기가 한국인가 싶었다. 웃음이 나왔다.
뽀얀 사골 국물에
삼베 쪼가리같이 얇게 베어 넣은 소머릿살
접시에 담아온 썬 파를 한숟갈 넣고 굵은소금 한스푼 넣
고 맛을 보았다.
국물이 진하다.
소 사골은 어쩌면 이렇게도 사람의
젖처럼, 뽀얀 국물을 내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은 뜨거웠다.
뚜껑을 여니 김이 나는 김포 하성의 하얀 쌀밥
김포 땅은 어쩌면 이렇게 백미를 만들어내는 걸까.
그랬더닌 다시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진 쌀밥은 잘 익어서도 반짝이고 곤두서 있었다.
'이런 식사도 참 오랜만이구나.'
여자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입술 사이로 가져가고,
남자는
후루룩 시끄럽게 떠먹는다.
여자는 참하고 남자는 짓궂다.
남자는 소리까지 지른다. "아 맛있다. 시원하다. 정말
달다."
여자는 말이 없다. 누님같이. 남자를 따라다니는 여자
는 다 그렇지.
다 먹을 때까지 국그릇이 따뜻했다.
밖엔 간혹 낙엽 궁구는 소리뿐
둘이 조용한 방에서 수저 소리만 딸가닥이며 국을 뜨고
있었다.
바람의 기척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웬 두 남녀가 5호실로 들어가서 말없이 가만히 밥만 먹
고 있으니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다른 생각도 생길 만한데 머리는 조용하다.
허리띠를 묶으며 여자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같
은데
가방에서 잘 접혀진 냅킨 한장을 꺼내 입을 닦는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하룻밤 자고 갈까?" 여자는 웃기만 한다.
하룻밤 자고 가고 싶은 곳이었다. 정말 하룻밤을 자고 나
가는 사람들처럼
둘은 해가 지는 김포 하성 운호가든집을 나왔고,
남자는 음식값 만원을
지갑에서 꺼내 아쉽게 계산했다.
집 안과 길이 서로 보이지 않는 은밀한 작은 대문을 배웅
하듯 따라나오는
주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인은 웃으며 "예, 안녕히 가십시오." 하였다.
오랜 세월을 그런 에티켓으로 살아온 사람 같았다.
남자는 저만큼에서 운호가든집을 돌아보았다.
여자는 그냥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돌아보지 앉았다.
코트를 입은 그녀 허리가 행복해 보였다.
주인은 들어가고 없고
운호가든집만 거기 서 있었다.
먼 훗날 어느 겨울 저녁, 혼자 운호가든집을 찾아갔더니
주인은 바뀌고 하얀 수박등 하나가 눈발 속에 서 있었다.
상 건너편에서 소머리국밥을 맛깔 있게 먹던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