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의 목숨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게 정당한 것일까? 아마 대부분이 ‘한사람의 목숨으로 수억명의 목숨을 구하는 건데 당연히 정당한 것이지!’라고 생각 할 것이다.그런데 만약 그 한사람이 자신의 가족,연인 아니면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라면 이 사실이 옳다고,정당 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에 내가 본 영화는 ‘날씨의 아이’다.
날씨의 아이는 내가 사랑하는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영화 2부작이다.아마 대부분 알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소개 하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라 하면 작가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함유한,제 2의 미아자키 라고도 불리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번 날씨의 아이는 사실 꽤나 오래전에 본 영화이다.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가져온 이유는 모두가 한반씩 이 영화가 던지는 주제를 되새겨 보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날씨의 아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세상을 위해 죽어야할 소녀와 그소녀를 사랑 하는 소년의 이야기이다.굉장히 단순하고 지루해 보이는 내용,흔히 말하는 상업용 이야기 같이 느껴지만 이를 풀어가며 신카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질문은 내가 내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들 정도로 고민 되는 질문이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교환으로써 성립된다.무언가를 얻으려면 마땅한 가치를 지불해야한다.그런데 말이다.교환 되는 가치가 ‘목숨’이라면 우라가 함부로 교환 할 수 있을까? 아니 교환 해도 될까?
당신이라면 만약 당신의 목숨으로 인류를 구웡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포기 할 것이가?
내가 확실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우리가 그들에게 강요만큼은 하면 안된다 이다.그들은 절대 이기적인게 아니다.나쁜게 아니고 화내야 할게 아니다.우리 모두의 목숨은 소중하다.라지만 작중에서는 어른들이 어린 아이에게 죽음을 강요한다.하지만 단 한사람 주인공 만큼은 그를 반대한다.신카이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희생을 강요하는 세상은 너무 하지 않냐고 우린 그저 그들의 편이 되어주면 되지 않냐고.
신카이는 이를 우리가 친숙히 접할 수 있는판타지적 요소를 넣어 우리에게 설득한다.우리가 더이상 희생이 아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난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누군가를 절벽으로 미는 사람이 아닌 절벽을 맞서 밀어주는 사람이.신카이도 나도 같은 생각 일것이다.그리고 이 생각이 모든 이에게 퍼지기를 구원하며
이상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