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였던 야고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동생 요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 가운데 하나다.
열두 사도에는 야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야고보 사도는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
특히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공경을 받고 있는데,
그곳에는 사도의 이름으로 봉헌된 유명한 성당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신다.
세상의 통치는 군림과 권력을 행사하지만
하느님의 통치는 섬김으로 이루어진다(복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스승님의 질문입니다.
스승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달라는 청원에 이렇게 반문하신 것입니다.
그 잔이 무엇인지요?
그 잔을 마시면 자연스레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되는 것인지요?
‘그 잔’은 고통의 잔입니다.
아픔의 잔이요 절제의 잔입니다.
자신을 포기하게 하는 잔입니다.
두 제자의 청원을 알게 되자 다른 제자들은 언짢아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나누지 않고 독식하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두 사도가 일부러 그러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스승님 곁에 있고 싶다는 발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섭섭하게 할 수 있는 처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타이르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통 없이는 섬길 수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고 어떻게 다른 이를 받들 수 있을는지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모시기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자신보다 못한 이를 공경하고 섬기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보다 악한 사람인데도 낮추고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때문에’ 섬기고 낮추고 받들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고통은 ‘살아 있는 기도’입니다.
참나무는 도토리나무입니다.
야산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에게 이롭고도 흔한 것에는 ‘참’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참새는 흔하고 쉽게 잡을 수 있는 새입니다.
참꽃은 진달래로 약용입니다.
그러나 철쭉은 먹지 못했기에 개꽃이라 하였습니다.
참나무도 도토리 크기에 따라 구분됩니다.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입니다.
물론 하나같이 ‘도토리’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갈참나무는 그 나뭇잎을 짚신 위에 깔고 다녔기에 생긴 이름입니다.
떡갈나무는 잎으로 떡을 싸서 떡이 붙거나
쉬지 못하게 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상수리나무이지요.
임진왜란 때 도망가던 선조는 도토리묵을 먹습니다.
그는 난이 끝나고 궁중에 돌아와서도 자주 먹었다고 합니다. 그
래서 임금의 수라상에 자주 올랐다고 하여 상수리나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하면 고마운 줄 모릅니다.
늘 그렇게 있는 줄 착각합니다.
우리는 묵묵히 일하는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줄어들면 조직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봉사자의 대열에 합류해야 합니다.
섬김의 생활을 실천해야 주님의 ‘참’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