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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부·여당 모두 불참, 초유의 36주년 기념식... "민주화를 뭘로 보나" 참석자들 쓴소리
함께 부르는 '광야에서' ▲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열린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합창단이 '광야에서'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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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초유의 불참으로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반쪽짜리'로 만들었다.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옹졸하다"고 꼬집었다.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민주로(路) - 함께 걸어온 길, 다시 가야할 길'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렸다.
기념식 현수막과 안내문엔 "주최 : 행정안전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으나 윤석열 대통령,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장관 직무대행)을 비롯한 정부 인사는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 관계자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념식 맨 앞자리엔 행사를 주관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지선 이사장과 이재명(더불어민주당)·이정미(정의당)·윤희숙(진보당) 대표 등 야당 주요 인사만 자리했다.
전날(9일) 행정안전부는 기념식 불참을 전격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기념식을 주관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의 후원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광고를 낸 바 있다(관련 기사: 6.10 민주항쟁 기념식 불참하는 윤석열 정부... 야당 "퇴행·폭거" https://omn.kr/24aju).
정부가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불참한 것은 200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후 처음이다. 이번 기념식에서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기념사를 할 예정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기념식이 열린 지난해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빈으로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 중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처음으로 기념식에 참석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2020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2007년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첫 정부 불참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정부 인사 불참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내건 행사를 후원했다는 이유로 이날 기념식에 불참했다. 행정안전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이기로 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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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에선 정부·여당의 불참과 관련해 공식 발언이나 특별한 항의가 나오진 않았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등 6.10민주항쟁에 참여했던 김정표씨와 시위대를 도왔던 명동성당 옆 개성고(당시 개성여고)의 현재 재학생들은 기념식 무대에 올라 서로의 세대를 향한 편지를 낭독했다. 가수 완이화(미얀마 난민 출신)·권인화씨가 '일어나'를 부르며 기념공연을 이어갔고, 마지막엔 합창단과 참석자 전원이 '광야에서'를 합창했다.
기념사를 낭독한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국민통합을 위해 4.19를 헌법 전문에 새겨놓았듯 5.18민주화운동, 부마항쟁, 6.10민주항쟁 등 주요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도록 해야 한다"라며 "또한 희생한 분들을 더욱 기념하고 예우해 독립, 호국, 민주의 가치를 토대로 대한민국을 품격 있는 나라로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위치한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념하는 민주인권기념관이 2024년 개관한다"라며 "민주인권기념관이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다만 강성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부이사장은 '경과보고 및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부가 귀를 기울이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사회 통합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기념식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됐지만, 기념식 전후로 만난 참석자들은 정부·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40대 남성 유아무개씨는 "몇 해 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했었는데 그 때에 비하면 오늘은 너무 썰렁하고 초라한 기념식이 되고 말았다. 너무 대조된다"며 "현 정부가 민주화라는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60대 여성 김아무개씨 또한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념식 불참은 물론 감사까지 진행한다는 발상은, 6.10민주항쟁 당시 시민들이 몰아내고자 했던 6.10민주항쟁 이전의 권력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국가 부정... 6.10 없었다면 윤 대통령도 없었다"
6·10 민주항쟁 기념식 ▲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제36주년 '이 열리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왼쪽부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 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광야에서'를 합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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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정부의 옹졸함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보탰다.
이 대표는 기념식 직후 취재진과 만나 "극히 사소한 이유를 핑계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위협하고 공식 정부 행사를 거부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임을, 민주국가임을 부정하는 행위라 참으로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6.10민주항쟁이 없었다면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도, 오늘의 정권도 없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라며 "(오늘 기념식은) 결국 민주주의는 정권이나 권력자들이 아니라, 국민이 만들고 지켜가는 것이란 점을 깨닫게 하는 참담한 현장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현장이 참으로 썰렁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게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민들께서도 이 정권과 여당의 태도가 이렇다는 점을 직접 목도하신 것"이라며 "참혹하지만 바닥에 닿아야 또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들께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덧붙였다.
▲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민주로(路) - 함께 걸어온 길, 다시 가야할 길'이 10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렸다. 기념식 중 가수 완이화(미얀마 난민 출신, 왼쪽)·권인하씨가 '일어나'를 부르고 있다. ⓒ 소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