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관한 진실(4) - <방언>은 외국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성령님이 주시는 방언이 아니라 사탄(귀신)이 주는 것>이라고 주장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은사로서의 방언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주시는 외국어다>라고 주장 합니다.
또 외국어 방언만이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이고, 그 것 마저도 이미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은사로서의 방언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기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1. 방언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 한 사례가 없습니다.
복음을 증거 한 예로 행 2:11절을 제시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아님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11)
하나님의 큰 일들이 무엇인지 기록 되지는 않았지만, 방언을 들은 그들의 반응을 본다면 복음 증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방언을 듣고 회개 한 것이 아니라 당황하였습니다.(의혹하였음)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행 2:12)
또 어떤 사람들은 방언하는 자들을 보면서 조롱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행 2:13)
그 이후에 복음을 전한 것은 베드로였고,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도 아니었고, 또 외국어 방언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히브리어를 사용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게 됩니다.(행 2장)
복음 증거는 방언이 아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2. 방언을 말한 사람들은 회심자들이었지, 복음 증거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갑니다.(행 10장)
베드로는 외국어 방언이 아닌 일반 언어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 때 성령님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신 증거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6)
여기서 방언으로 말 한 사람들은 복음 증거자들이 아닌, 회심자들이었습니다.
또 방언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내용을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외국어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어가 아닌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방언>이라는 단어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외국어를 뜻할 때는 <다른 방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헬라어로 <헤테로 글롯사>라는 단어를 사용 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고전 14:21)
그러나 행 10:46절에서는 <헤테로 글롯사>가 아닌 <글롯사>가 사용 되었습니다.
외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헤테로 글롯사>가 아닌, <글롯사>를 사용 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방언이 아닌, 베드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던 것 이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행동과, 하나님을 높이는 행동이 서로 독립 되어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성령님이 계심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안수합니다.
그 때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 때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도구는 외국어 방언이 아니었습니다.
방언은 복음 증거자가 한 것 이 아니라 회심자가 한 것 이었습니다.
그 때 그 누구도 방언의 내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방언의 내용을 기록 할 수 없었습니다.
3. 성경 어디에도 은사로서의 방언을 외국어라고 기록한 성경 구절이 한절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방언은 외국어라고 기록 된 곳은 단 한곳도 없습니다.
오히려 외국어가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언어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믿는 자들은<새 방언>을 말 하게 된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새> 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카이노스>를 번역 한 것입니다.
<카이노스>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을 뜻합니다.
외국어, 즉 다른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방언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
믿는 자들은 새로운 방언을 말하게 된다는 약속이 있는데...
현재 많은 성도들이 받은 외국어가 아닌 알아 들을 수 없는 방언이 <새 방언>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것이 새로운 방언일까요?
누가 지금 그런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요?
이것만 생각 해 보아도, 새 방언은 현재 대부분의 성도들이 받은 방언,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4. 고전 14장에서 외국어를 말 할 때는 방언<글롯사>이 아닌 다른 방언<헤테로 글롯사>이라는 단어를 사용 했습니다.
성경에서 외국어를 말할 때는 지명이나 민족 이름을 붙임니다.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사 19:18)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단 2:4)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행 14:11)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행 21:40)
또는 <다른 방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고전 14장에서도 외국어를 말 할 때는 <다른 방언>, 헬라어의 <헤테로글롯사> 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고전 14장에서 은사로서의 방언을 말 할 때는 <다른 방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고전 14:21)
5. 현재는 초대교회 때 보다 언어가 다른 더 많은 민족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고 있지만, 방언으로 복음을 증거한 사례가 없습니다.
최근 30여 년 동안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승천 하신 이후 2000 여 년 동안 민족들에게 복음을 증거 한 숫자와, 최근 30여 년 동안에 민족들에게 복음을 증거 한 숫자가 비슷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각 민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로서의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또 오순절 날 외국어 방언 받은 제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몽골에 들어 온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몽골 내의 미전도 종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증거 할 때 입이 열리고, 저의 몽골어 능력 이상 유창한 몽골어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제가 이미 알고 있던 단어들을 사용했고, 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은사로서의 방언은 아니었습니다.
6. 외국어로 복음 전하고, 외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다시 통역해 주어라?
방언이 외국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발생합니다.
외국어 방언으로 말하고, 그들이 못 알아들으니 통역을 통해 다시 통역해주어라...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로서의 방언은 외국어가 될 수 없습니다.
7. 통역의 은사는 어떻게 설명?
은사는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필요를 따라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방언의 은사가 외국어 방언이라면 외국어를 아는 사람이 그냥 통역하면 되는 것이지, 통변의 은사가 필요할까요?
그리고 통변의 은사를 받아서 외국어를 배우지 않고 그냥 통역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은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추가 한다면...
방언은 두 세 사람이 각각 다른 언어로 하는데, 통역은 한사람이 합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 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고전 14:27)
외국어를 배우지 않고 통역을 하는데, 어떤 종류의 외국어라도 다 통역한다?
그런 은사를 소유 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가진 성도들은 많이 있습니다.
<<결론!>>
방언의 은사는 외국어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단 한번만 외국어로 성령님이 말 하게 하셨습니다.
통역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방언입니다.
또 복음을 증거 할 때, 방언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러게 하지 않았고, 또 오순절 날 외국어 방언을 했던 제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행전에는 방언 하는 사람들을 복음 전하는 전도자가 아니라,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방언은 외국어이고, 외국어 방언을 주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첫댓글 그렇습니다.
방언은 외국어가 아닌 하나님 나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외국어로 기도 하게하십니다.
저는 한동안 중국어 일본어 이태리어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중국어로 기도할때는 중국말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였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몰랐지만 옆에 있던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예수님을 믿지않는)듣고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아는 아픈사람을 위하여 방언으로 기도했을때 그 사람이 듣고는 믿을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방언에 관한 저의 간증은 너무나 많아서 다 쓸수 없습니다.
다른 방언(외국어)이 아닌 방언에 대한 명확한 성경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