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박스를 열어 보고
보 릿 길(박 정 애)
문학 모임 1박 2일을 다녀오니 식탁 위에 통닭 박스가 놓여있다. 열어보니 싸늘하게 식은 통닭이 한 두 점을 먹은 듯한 온 박스 그대로다.
2만 원이 넘는 통닭을 둘이 먹자고는 잘 시켜 먹진 않는다. 손녀들을 데리고 아들 가족들이 오든지, 아니면 동생네 가족이나 친구들이 찾아와야 사람 수에 맞춰 남편은 모두가 좋아하는 통닭을 시킨다.
아무도 왔다 간 흔적이 없는데 통닭만 온 통이 그대로 있다. 통닭은 금방 시켜 따뜻 할 때 먹어야만 바삭하고 고소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다시 레인지에 덮여도 본래의 맛은 나지 않아 두고 먹을 음식은 아니다.
조금 있으니까 남편이 왔다. 온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식은 통닭 박스의 사유를 물었다. 내가 집을 비운 어제저녁 y대학에 연구소에 다니는 둘째 아들과 퇴근시간 맞춰 함께 먹으려고 통닭부터 시켜놓고 전화를 하니 아들은 천안 출장 중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했다. 나도 없고 저녁을 함께 먹자고 부른 아들마저 출장이라니 평소 즐기던 통닭을 혼자서 먹으려니 먹히질 않아 두 어점 먹고는 그대로 덮어둔 게 통닭의 사유라고 했다.
아들 직장이 이곳 경산이다 퇴근 후 2 부대학 강의라도 있는 날이면 일주일에 두 어번은 저녁을 먹고 제집으로 간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부담을 갖는다고 전화를 못하게 하지만 남편은 곧장 집 앞 마트에 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거리를 사 오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니고 두 아들이 다 대구에 살기에 자주 전화도 하고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온다. 그런데도 사람이 고픈지 잠시 저녁 한끼 먹는 시간이라도 아들과 마주 하고파서 집 부근에 근무하는 아들을 부른다.
대소가가 함께 살던 시골에서 유교사상을 받고 자란 남편은 아이들이 자랄 때 엄하게 키웠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아빠 엄마라고 부를 때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아빠라는 호칭을 아버지라고 고쳐 불렀다. 밥상에서 밥 먹으면서 떠들거나 응석을 부리지도 못하였다. 상급학교 올라가면서는 점점 밥상머리 교육이 내 귀에는 잔소리로 들렸지만 그래도 묵묵히 듣고 있어야만 했다. 큰 댁 종시숙께서 집에 들르시면 집집마다 돌려준 족보책과 가첩을 꺼내 놓으시고 가신분의 행적을 기리시면서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신다. 종 시숙 어른은 유교사상과 신문물을 겸비한 엘리트 노인이시라 나도 오시면 참 어려웠다. 말이 시숙 어른이지 아들이 남편보다 나이가 많아 시아버님과는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숙질간이라 시어른 같으신 시숙이셨다. 이런 가족관계라 자랄 때 우리 아이들도 엄청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해서 내심으로 부자간에 정이 없을 까 봐 걱정도 되었다.
둘째가 연애를 할 때 좀은 반대를 했다. 내가 둘째에게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으니 아가씨 집, 가족관계가 자유롭고 편안해서 좋다고 해서 할 말을 잃었다. 편안한 집, 어려운 집, 자유분방하질 않고 무엔가 매인 듯한 부자유로움, 사내아이들이 밤 10시를 넘기지 못하게 했기에 며느리가 연애할 때 10시가 가까워지면 서둘러 집에 가려는 작은아이가 이상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들어올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부모가 부담스러워 급하면 연락을 하던가 일찍 들어왔다.
결혼을 하면 자유롭고 편안함을 즐길줄 알았다. 30년을 넘게 생활한 게 갑자기 달라지고 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몸에 베이고 틀에 박힌듯한 생활이 갑자기 변하질 않아 며느리들은 남편이 편하질 않다고 불평한다. 아들들은 아버지 교육을 탓하지 않고 결혼 후 15년이 지났는데 오히려 옛날을 그리워하는 듯 지난 일을 자주 들먹인다.
가족을 호령하던 남편은 어느 땐가부터 호랑이가 순한 양이 되어 떨어져 나간 아이들이 자랄 때 일을 그리워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좀 색다른 음식을 사 오거나 장만하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잡숫기 전에는 먹으려고 생각지도 않고 주지도 않았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그렇게 키웠다.
지금 70을 넘긴 아버지는 좀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아이를 부른다. 외식이라도 하게 되면 퇴근시간 맞춰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한다. 우리 사회는 핵가족으로 변하면서 노인들은 대가족 때와 달리 외로움을 느낀다. 바빴던 세월을 그리워하면서 누군가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린다.
잠깐이라도 허전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아들과 맛있게 먹으려고 치킨을 시켜놓고 아들을 불렀다는 남편은 아들의 부재로 딱 맛을 잃어 한두 점 먹고는 밀쳐놓아둔 통닭 박스다. 바삭하고 고소해야 할 치킨은 하룻밤을 자는 동안 그 값을 잃어 나도 얼른 손이 가질 않는다.
맛보다 아까워서 둘이서 두어번 걸쳐 먹었다. 남편의 속도 모르고 전화도 해보지도 않고 치킨을 시켰다고 나무랐다. 불같은 성격을 꾹꾹 누르는지 말이 없다. 확 고함이라도 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남편이 많이도 늙었구나 라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외로움의 연습, 이별의 연습. 자제의 연습을 잘 받아드릴 때 아름답게 늙어간다. 라고 하며 노인 대접을 해준다는 걸 깨달았기에 남편은 자금 날마다 늙어가는 길을 연습하는 중이다.
첫댓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가족이라는 정겨운 어원은 유교사상에의 근본이 녹아든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겉으론 엄격하신 우리 아버님들도 속마음은 한없는 사랑과 따뜻함으로 자식들을 감싸면서 혹여 잘못될까봐 노파심에서 엄격하셨으리라 정의해 봅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통닭 모처럼 아들과 함께 하려든 아버님의 씁쓸한 마음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맘을 담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함께 살면서 서로를 너무 잘 알게된,
내외분의 깊은 사랑이 묻어나는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문운이 활짝 펴지시길 기원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부모의 눈에는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아이들을 키울때는 엄하였으나 노년에는 자식을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살아계실 때 잘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식은 통닭이 정말 맛나게하는 값진 통닭이네요.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식은 통닭이군요
식어버린 통닭 박스에서 애틋한 아드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식도 가족이 함께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통닭을 통하여 부자의 정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가족의 사랑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란 말이 있듯이 아버지 습성을 닮은 아들들 모습이 대견스럽습니다. 집안 분위기에서 다감함을 느낍니다. 다정한 가정 잘 꾸며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