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월) 전도서 4:13-16 찬송 352장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개역 개정)
15-16절)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솔로몬은 인생들이 왕이 된 소년과 함께 있는데
그 백성의 수가 무수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의 인기가 선왕을 능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 그는 선왕과 달리 개혁 통치, 민생 통치를 펼쳤을 것이다.
또한 그는 지혜로운 인물인 만큼 선왕의 실패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통치자가 될 수 있는지 알았을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반전(反轉)이 이루어진다.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한 마디로 말해서 아무리 그 자체가 개혁 통치, 민생 통치를 펼쳤어도
이미 후세대에게는 맞지 않음을 말해 준다.
아니 이미 민심이 바뀌고 돌아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말씀을 통해 한 가지 귀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마음이란 조석변개(朝夕變改)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영구히 인정받고, 칭찬받으려는 기대는 어리석은 것이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인간이 주는 것이라면
환호가 되었든 야유가 되었든 지나치게 궤념치 말아야 한다.
칭찬이든 야유든 사람들이 주는 것은 원천적으로 그렇게 믿을 것이 못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를 외치던 자들도(마21:9)
이후 대제사장들의 사주를 받은 후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마27:22).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환호든 적의든,
칭찬이든 조롱이든 전혀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매료되어 왕으로 삼고자 할 때에도
조용히 비켜가셨으며(요6:15), 그들이 조롱할 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셨다.(사53:7)
실로 의연한 모습이다.
이같은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서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실패 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릴 수 있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추켜세운다고 거기에 춤추지 말고,
또 인정해 주지 않고 조롱한다고 해서 실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초연(超然)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나의 길, 믿음의 길만을 가는 것이다.
그뿐이면 된다.
무심(無心)한 삶 같지만 그것이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지켜야 할 심령을 보전한다.
실수와 실패로부터 우리를 온전함의 길로 인도한다.
무엇보다 이같은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우리가 변덕스런 사람이 아닌 한결같으신 분,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상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2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