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스트레스성 소화불량
조선 14대 왕인 선조는 임금 자리에 오른 직후 극심한 콤플렉스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중종의 서자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었던 그는 조선 최초로 방계 출신의 왕이 되면서 시작부터 정통성 문제에 휩싸였다. 이율곡, 이황, 이순신, 이항복, 이덕형, 허준, 류성룡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그의 시대에 활약했지만, 그들은 선조를 항상 가르치려 들며 쥐고 흔들었다. 잘난 신하들의 압박은 방계 출신 왕의 정통성 콤플렉스를 더욱 자극했다.
“보잘것없는 몸으로 민간에서 성장해서 들어온 내가…”라거나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 실록 기록을 미뤄 보면 그가 얼마만큼 현실 정치를 버거워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선조는 재위 초기,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재위 7년 실록의 기록은 그의 소화불량 증상과 그 처방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체하고 내려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먹을 때는 편안하다가도 식사를 하면 체해서 답답해 몸이 편치 못하다. 의관은 ‘원기가 허약한 데다 담음(痰飮) 증세까지 있어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고 진찰했다.”(1월 7일)
의관의 처방은 양위진식탕(養胃進食湯)이었다. 양위진식탕은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소화불량 치료 처방으로, 비장과 위장이 허약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몸이 여위며 가슴이 더부룩하고 답답하고 트림이 나면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치료할 때 사용했다. 이 처방이 쓰인 것으로 미뤄 보면, 비록 실록에는 없지만 선조는 신물과 트림 증상도 심했던 듯 보인다.
한의학은 위장 질환을 세 가지로 나누는데 기능성과 신경성, 비위담음증이 그것이다. 기능성 위장 질환은 위장의 운동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 경우, 음식물이 위장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명치 아래가 항상 더부룩하고 트림이 잦고 신물이 올라오기도 한다. 신경성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면 소화가 안 되면서 배에 가스가 차고 옆구리 통증이 잘 생긴다. 설사와 변비가 교대하는 경우가 많고 조그만 일에도 화를 잘 낸다. 담음증은 몸의 진액이 순환하지 못하고 한곳에 몰려 비위장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증세로 항상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잘 난다. 소화불량성 두통이 동반되고 얼굴색이 누렇고 검게 변하면서 물 마시길 싫어한다. 밀가루 음식은 더욱 소화를 못 시킨다.
실록의 기록을 미뤄 보면 선조의 소화불량은 이 세 가지 유형이 모두 섞여 있다. 극도의 콤플렉스와 스트레스가 위장의 운동성과 소화 기능을 급격히 떨어뜨려 각종 담음 증상을 일으킨 것. 위장의 운동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데,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위장 운동을 방해한다.
소화(消化)라는 두 글자 중 소(消)는 녹이고 잘게 부순다는 의미고 화(化)는 삭여서 소멸시켜 새로운 생기를 만든다는 뜻이다. 한방에서 삭이고 부수는 능력은 뜨거운 양기(陽氣)가 그 바탕이 된다. 선조는 자신의 양기를 북돋우기 위해 양기 진작의 기본 처방인 사군자탕이 든 양위진식탕을 처방받았다. 처방 덕택인지 이후 크게 위장병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두려워하는 군주가 좋은 시대를 연다는 것은 마키아벨리즘이 아니어도 선조가 증명하였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