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인데요 사실이라면 진로소주 마시지 말아야 겠습니다.지난 4월 13일 오후 6시경. 저는 남동생, 남동생 여자친구, 가족들과 같이 양양에 있는 한 횟집에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날은 동생이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는 날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 잔 먹으려고 '참이슬'을 시켰는데 병입구가 깨진 술병이 나왔습니다. 깨진 소주병을 반납하고 소주를 다시 시켰고 반쯤 먹었을 때 목에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뱉어보니 1cm 크기의 유리조각이었습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는 한 애주가의 이같은 제보가 접수됐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지 모르지만, 이 제보자의 문제제기가 소비자를 경시하는 기업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해 기자는 강원도 태백시에 살고 있는 제보자 김광진(41) 씨를 찾아갔다.
지난 5월 2일 태백에서 만난 김 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유리조각이 넘어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며 진저리를 쳤다. 그는 또 "태백중앙병원 김OO 내과 과장에게 '유리조각이 만약 식도 점막에 박혔으면 종격동염증이 생겨 생명이 위태로울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서민의 벗'이 과연 이래도 되나?
"제2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술값을 안 받겠다는 술집 주인의 제안을 뿌리쳤습니다. '서민의 벗이 과연 이래도 됩니까?"
▲양양의 한 횟집에서 술을 마신 김씨는 소주회사에 시정을 요구하기 위해 영수증을 보관했다.ⓒ 임경환
실제 횟집 주인 고아무개 씨(49)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소주잔에 유리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미안해서 콜라 두 병을 공짜로 준 적이 있다"면서 한달 전 일을 기억해 냈다.
고 씨는 이어 김씨가 유리조각을 고의로 넣었을 가능성에 대해 "남자들끼리 와서 술을 먹었으면 혹시 장난으로 유리조각을 넣었을 수도 있겠지만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답변했다.
김 씨는 그 뒤 한 달여 동안 영수증과 깨진 유리조각을 보관하면서 소주회사와의 '작은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 씨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주 월요일(4월 15일) 오전 (주)진로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전날의 상황을 설명하고 소주병에 기재되어 있는 소비자상담실 전화번호를 눈에 잘 띄도록 글자크기를 키워줄 것과 포스터에 소비자상담실 전화번호를 기입해줄 것을 요구했다.
"소주 회사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 몇 억 원씩 주고 광고하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좀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진로광고 포스터에는 연예인 얼굴만이 보일 뿐이다.
김 씨는 그후 일주일 동안 회사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회사의 무책임한 행동에 다시 한번 화가 난 김 씨는 22일 소비자상담실에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날 오후 강릉지점 영업사원은 소주 한 박스를 들고 김 씨를 찾아왔다. 이에 김 씨는 "내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정중히 소주 한 박스를 거절하고 일주일 전 소비자상담실에 요구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영업사원에게 환기시켰다.
다음날(23일) 오후 8시경 김 씨는 강릉지점 영업과장으로부터 "30일 저녁에 만나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30일까지 영업과장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더욱 화가 난 김 씨는 강릉지점 관리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주병에서 나온 유리조각은 1cm 정도.(원 내) ⓒ 임경환
"인터넷이나 언론에 띄우려면 띄워라. 나와 무관한 일이다"며 관리과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5월 7일 김 씨는 소비자상담실로 전화를 걸었다. (주)진로 조진규 소비자상담실장은 "유리조각으로 인해 육체적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사원이 찾아가 사과한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소비자 상담실 전화번호 크기를 키워달라'거나 '포스터에 상담실 전화번호를 집어넣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인터넷이나 언론에 띄우려면 띄워라."
그는 이어 "회사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고 김 씨에게 요구했다.
조 실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도 김 씨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실제로 소비자피해규정에 따르면, 회사측은 김 씨의 경우 유리조각을 삼키지 않았기 때문에 교환, 환불 조치만 하면 그만이다. 김 씨가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단돈 2000원.
하지만 김 씨는 "소비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데 고작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이 교환이나 환불에 그친다면 제조업체가 조심해서 물건을 만들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원창수 정책실장은 "육체적 피해를 입진 않았어도 미세가루가 몸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후에 김 씨가 받아야 하는 정밀검사에 대한 비용은 회사측이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김 씨의 '작은 전쟁'은 계속 되고 있지만 한달이 넘게 지속된 소주회사와의 싸움에서 김씨가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 씨는 이 기간동안 시간과 돈만 빼앗겼을 뿐이다.
하지만 녹색소비자연대 원창수 정책실장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구제제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도 부족한 현실에서 김 씨의 요구는 의미있는 문제제기"라고 평가했다.
▲반쯤 마신 소주병에서 유리조각이 나왔다. ⓒ 임경환
김 씨는 20년 동안 마셔오던 진로 대신 다른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또 다시 나올 지 모르는 유리조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주)진로 측의 무책임한 태도가 제품을 바꾸게 된 주된 이유다.
소비자를 '봉'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기업윤리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1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92년 2월 뉴멕시코에서 리에벡스(Liebecks. 79. 여) 씨는 마시던 커피가 엎질러져 허벅지를 뎄다. 이에 리에벡스 씨는 맥도날드사 쪽에 "커피가 너무 뜨거워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8일간 입원했으니 손해배상금으로 2만 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 맥도날드사는 "커피가 뜨겁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므로 리어벡스 씨의 잘못이었다"며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된 이 사례에 대해 재판관은 "컵에 '뜨거우니 주의하라'는 주의사항을 쓰지 않은 회사 쪽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리에벡스 씨에게 2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 사건 이후 맥도날드사는 컵에 '주의-뜨거움(caution ; hot)'이란 표시를 하고 있다.
이같은 외국의 사례는 아직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소비자보호원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소주에 이물질이 나와 신고한 건수는 작년에 6건, 올해 들어 1건에 불과하다. 이같이 미미한 건수는 실제 이물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쉽게 체념하거나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작은 권리'를 포기했다고 반증일 수 있다.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기업의 인식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지.
한 달여 간의 '작은 전쟁'을 치른 김 씨의 현재 심정은 어떨까?
"회사가 너무 크다고 소비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대하려니까 너무 힘이 들기도 하고요. 해결을 했으면 좋겠는데 거리도 멀고 시간도 너무 많이 빼앗겨서 힘이 드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홍보실장에게 '진로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진로보다 더 큰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얘기를 했죠. 지금은 방법이 없네요."
한편 (주)진로 강릉지점의 한 관계자는 "소주병의 세척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고, 운반과정에서 입구가 깨졌을 경우 간혹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서 "소주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제품번호와 출고날짜를 파악해 생산라인 직원들을 재교육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