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첫날
“커피를 나를 줄 줄 알았더니..”
한달에 한번인 산악회 정기 산행날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보통 집합시간이 8시 이전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만나면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도 궁금하다.
1박 2일 일정인 이번 산행은 더욱 그러하다. 오전 6시 45분 서울 가락시장역 8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희망과용기 회장과 알자지라 대장이 5분쯤 늦었다.
산바람 형이 운전하는 차에 희망과 용기 회장, 알자지라 산악대장, 뜬구름 총무, 아톰이 탑승했다. 뜬구름 총무와 아톰은 같은 동네라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온뒤 인근 편의점에서 커피를 한잔 샀다. 두명이지만 새벽부터 ‘각 잔’ 하기는 뭐해서였다. 그렇게 둘이서 나눠 마신 커피를 놓고 산바람 형이 한마디 한거였다. ‘운전자한테 커피 안 주나’ 이런 톤으로..
5명으로 만차가 이뤄진 차 안에서 운전석과 조수석에 자리한 40년지기 80형들의 일정에 대한 토크가 이뤄진다.
새벽에 나오느라 공복인 상태에서 아침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 휴게소에서 먹을 것인지, 좀 알려진 맛집을 찾을 것인지. 급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밥을 먹자고 의견이 모아진다.
휴게소에선 커피 한잔과 만쥬로 간단하게 요기만 하고, 진부 인터체인지 나가면 바로 있는 ‘부일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집은 예전에는 맛집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살짝 불친절해지면서(사람들이 많아 지면서 그런 것 같기도) 일부에선 꺼리기도 한다.
맛집은 세가지가 맞아야 한다. 우선 맛이 좋아야 하고 가격이 착하며 친절해야 한다. 이날 아침 부일식당 밥은 좋았다. 도착시간이 9시전이어서 한산해 편안하게 산채 비빕밥을 잘 먹었다. 아침 막걸리도 한잔했는데, 막걸리 병이 링겔병 비슷하게 생겼다. 누군가가 “병원에서 링겔을 놓는 이유를 아느냐. 링겔을 주사하면 그걸 꽂은 환자가 활동이 불편해 어디로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흰 소리를 한다.
기분 좋은 아침 밥을 먹으면 아무말 대잔치도 가능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이 식당에서 오대산 월정사 주차장 입구까지는 30여분여 걸린다. 바로 고고싱..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정동진이지만 산행은 오대산이다. 이번 정기 산행은 여자팀과 남자팀이 나뉜다. 남자팀은 1박 2일 동안 강원도 일대 산행, 바다길 산책 등을 계획했다. 첫날은 오대산 선재길을 걷기로 했다.
선재길은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 이야기를 차용한 길로 깨달음의 길이란 별칭도 있다. 월정사에서 출발해 상원사까지 가는 9km 길이다. 계곡길 느낌이 많이 들고 물 소리가 계속 들려서 걷기 좋은 길이다.
평탄한 길을 사부작 사부작 걷다 보니 섶다리가 나온다. 섶은 풀을 지칭하는 것으로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든다’는 위험한 행동을 말한다. 섶다리는 작은 나무와 풀을 엮어 만든 다리로 선재길에서 하나의 명물이다. 이 다리위에서 ‘비틀즈 아비로드 건너기’를 재현하며 쉬어간다.
선재길은 등산로라기 보다는 평탄한 둘레길이다. 길을 가다보니 중간에 약간은 기괴한 부처상이 있다. 구도자로서의 부처, 아주 마른 모습이다.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일까. 왜 태어나고 왜 죽는 것일까. 인생은 끝없는 고심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며, 살아갈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하면서 길을 걷는다.
2시간여가 지나면서 오늘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차를 월정사 주차장에 두었기에 원점 회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걸어서 다시 가기는 멀기도 하고 재미도 없다. 월정사 상원사 구간은 버스가 다니긴 하는데 거의 한시간 간격이어서 한 대를 놓지면 다시 타고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다 상원사 위 적멸보궁까지 가야 한다는 희망과용기 회장의 강한 주장도 있어서 논의가 이뤄졌다.
차주인 산바람형이 ‘나만 내려가 차를 가지고 올라오면 된다’고 제안한다. 함께 내려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적멸보궁을 봐야 한다는 회장의 굳은 의지에 따라 산바람 형이 혼자 버스 타고 다녀오는 것으로 결론. 상원사에서 잠깐 쉬며 커피를 내려 먹는다. 간식도 먹으며 잠시 휴식후 적멸보궁으로 오른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봉안한 사찰 건물을 말한다. 적멸은 모든 번뇌가 남김없이 소멸되어 고요해진 열반의 상태를 말하고, 보궁은 보배같이 귀한 궁전이라는 뜻이다. 한반도에는 다섯 곳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데,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에는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봉안했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고 희망과 용기 회장이 설명한다.
상원사에는 ‘세조와 고양이’, ‘문수보살과 세조’ 이야기들이 전한다. 앞에 것은 세조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고양이가 막아서서 들어가지 못했는데, 거기 자객이 있었다는 것. 세조는 이에 상으로 묘전을 하사했다고 하고, 상원사에 고양이 상을 세웠다고 회장이 설명했다. 뒤의 것은 문수보살이 세조 등을 밀어줘 세조가 피부병을 고쳤다고 하는 이야기로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대산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을 상원사 보살에게 물었더니, ‘쭉 올라가면 된다’고 해서 그리했는데, 이 길은 절에서 바로 올라서는 길로 약간 지름길 느낌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이 1킬로 이상 계속되는 길이었는데 선재길에 비해 상당히 험했다. 선재길이 깨달음의 길이라면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은 고행의 길 느낌..이었지만, 땀 좀 흘리며 산길을 만끽했다.
20여분쯤 걷자 상원사 사자암이 나타났고, 여기서 15분 거리에 적멸보궁이 있다. 올라가는 계단에 100, 150, 200 등 숫자가 써 있는게 특이했다. 숫자는 610이 끝이다. 그 위로 적멸보궁이 있다. 진신사리를 봉안한 무덤 같은 형태의 조형물이 있다.
올라가는 내내 염불 소리가 탑을 닮은 스피커를 통해 들린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오는 길에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우리가 올라온 길이고 오른쪽은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가는데, 알 대장이 안 보인다. “우리 뒤에 있었는데..” “전화해 봐봐..” 어느새 앞에 가 있다. 알 대장 별호가 ‘당최’ 선생인데, 산행할 때 가끔씩 사라지고, 전화를 잘 안 받아서 생긴 별칭이다. ‘당최 전화를 안 받아’ 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산행할 때 캐릭터가 뚜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희망과 용기 회장은 산행시 가능하면 많은 곳을 둘러보길 원한다. 세밀하고 촘 촘한 캐릭터다. 엄청난 기억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산행지에 대한 설명도 세심하다. 특히 불교쪽에 해박해 1박 2일 일정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동기인 산바람 형은 반면 여백의 미가 있다. 일정을 조금은 느슨하게 가져가며 편안하게 산행을 하려 한다. 무리하지 않는 산행이 산바람 형의 특징인 듯 싶다. 이날도 솔선수범으로 차를 가지러 버스로 월정사로 이동해 한시간여 상원사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려 줬다. 80 학번 두 형의 다른 캐릭터가 묘가게 조화를 이뤄가며 여행 재미를 더해준다. 한 사람은 전나무 길을 걸어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냥 가자고 하고. 티키타카가 좋다.
피플러버 선배와 여자팀이 머물고 있는 정동진을 향해 출발. 러버 선배가 5시 횟집 예약이라고 전하며 그 시간에 도착하라고 한다. 내비로 보니 정동진은 월정사에서 한 시간여 걸린다.
차안에서 정동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동진이 모래시계로 뜨기전에 정말 한적한 곳이었다는 이야기와 그 전에 또 다른 영화에 배경으로 나왔다는 이야기. 그래서 거기를 가봤다는 이야기는 희망과 용기 회장이 했다. 신혼초에 말이다.
정동진에 대한 이야기와 저녁 먹을 이야기로 한참을 하다보니 내비에 도착지 인근이라는 표시가 뜬다. “형, 저기 승마장이 그 곳인가 봐요”. 길가에 승마장을 겸한 펜션 간판이 보인다. 곧바로 진입한다. 승마장이 앞에 있고 뒤에 펜션이 자리잡고 있다.
반가운 얼굴들이 줄줄이다. 캐나다에서 귀국한 헬렌누님은 첫 조우다. 선배들도 무려 수십년만에 첫 만남이란다. 오랜만에 나타난 오솔길, 가상이도 반갑다. 몇 달만에 참가한 꼬맹이도 반가운데, 어라 좀 표정이.. 알고보니, 꼬맹이가 도착하자마자 사고를 쳤다.
어제 밤에 도착해 펜션에 들어서는 순간 미끄러져서 밤새 고생하고 아침에 병원까지 갔다왔다고 한다. 애고, 힘들었겠네. 여자팀은 그럼에도 바다 부채길을 걸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중간에 돌아왔다고 한다. 아무튼 회집으로 가기 위해 적당히 씻고 길을 나선다.
회집은 정동진해변 바로 앞으로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다. 각종 해산물을 앞에 놓고 폭탄주와 소주가 정을 타고 흐른다. 회장 건배사로부터 선배 후배들의 건배사가 이어진다. ‘위하여’는 술잔을 위로 한번 아래로 한번 그리고 맘에 드는 여자 혹은 남자를 위해 드는 것..이라고 회장이 건배 제안을 한다.
떠들썩한 술집 분위기와 창 밖으로 어두운 바닷가에서 터지는 폭죽을 보면서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한다. 적당한 술자리가 1차에서 마무리 되자 흥에 오른 2차가 시작된다. 인근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목소리 장인들의 노래가 시작된 것.
러버 전 회장의 쨍쨍한 소리와 오솔길의 맑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이동해서, 3차 시작이다. 희망 회장이 가지고 온 마이크가 빛을 발한다.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명태’를 열창한다.
명태는 결국 시인의 안주가 되고 만다.
7080 명곡들도 등장하고 헬렌 누님도 노래솜씨를 뽐낸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간다.
첫댓글 스트레이트 기사 한 꼭지에다가 날짜별 상세 스케치 기사 두 꼭지를? 다음에 산행기 쓰는 사람 부담되겠군. 어쨌든 오래 간직하고픈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줘서 고마워. 2일차 산행기도 기대할게.
써보니까 알겠습니다, 여행기 쓰시는 분들 대단하다는걸!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짱입니다!!! 산행기로 기를 죽이겠다는 소리가 흰소리가 아니었던 듯!! 맞아요, 현직기자!!!
헐, 그런 오만한 이야기를 했다고ㅠ, 무조껀 🍎 합니다
결국은 산행기 댓글을 세번이나 달아야 하는군요. 3번 댓글 다는게 번거롭긴 하지만, 워낙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정도 번거로움 쯤이야. 2일차 멋진 산행기도 기대합니다.
번거롭게해서 민망하네~~
댓글 달아주니 좋고,
부지런한 총무 역할에 감사!
말이 필요없군요 세상에 이런 산행기를 우리만 본다는게 통한일 따름이옵니다, 널리 세상에 알렸으면 합니다, 연합에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애고, 83들이 집중공세네~~
자복하자면, 과거 내가 쓴 산행기에 대한 반성이고, 기획은 원대했으나 마무리는 쫄아질 듯하네,
실로 몇 년 만인지...산행기에 제 얼굴도 보이네요. ^^ 편안하게 읽히는 글에 알찬 내용들이 빼곡하네요. 아톰 형, 잘 읽었습니다. ^^
그러네~~산행 하듯이 동행하는 만남이 있으면 좋을텐데, 나중에 그렇게 될테지?
편안하고 푸근하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따뜻함도 가득하고요^^
캄사! 12월엔 함께하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