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끝장낸 창작의 고통? 글쓰기에 기적의 조미료는 없다
천연우 (용접공 작가)
글 잘 쓰게 하는 강의·작법 넘치지만 대부분 알맹이 없는 유혹
뇌에 생각이 많이 쌓여야 좋은 글 나와… 더디고 괴로운 게 당연
선생님은 왜 페이스북만 쓰세요? 지금은 절교한 출판 관계자가 물었다. ‘노인정’ 다 된 SNS를 아직도 쓰냐는 뜻으로 들었다. 괜히 찔려서 ‘젊은’ 인스타그램도 쓴다고 항변하니 관계자 왈, “아니, 왜 페북에만 홍보를 하시냐구요. 인스타랑 브런치에도 올리셔야죠.”
대화를 진행할수록 이야기 주제는 돈벌이로 흘러갔다. 글쓰기 관련 책을 써라, 작가 명함으로 강의도 열어봐라, 왜 수익 추구를 극대화하지 않느냐…. 기분 나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사람이었다. 분명 선의에서 나온 제안이었으리라. 조용히 거절했다. “전 남 가르칠 실력이 안 됩니다.” 겸손 한 방울 안 섞인 진심이었다.
인공지능(AI)이 쓰고 그리는 세상이 온 지 좀 됐다. 창작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느꼈다. 생산 과정의 고통이 사라진 창작은 밀가루 반죽만 넣고 구운 붕어빵 아닌가. 당연히 생산 과정을 가르치는 창작 강의 시장도 사라질 줄 알았다. 맙소사, 아니더라. 여전히 강의는 많고 작가 명함 파고 싶은 사람들이 듣더라. 작가란 직함을 그만큼 선망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등단 소설가가 되고 싶어 작법서를 정말 많이 찾아봤다. 소설이라는 국을 맛나게 끓이기가 힘들어 미원이나 라면 수프를 찾아다닌 시절이었다. 안타깝게도 기적의 조미료는 없었다. 많이 쓰시오, 독서 알차게 하시오, 그리고 생각을 멈추지 마시오…. 어느 책을 뒤져도 작가 특유의 문체로 바꾼 세 가지 진리만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물론 몇 가지 자잘한 팁은 얻었다. 필사 많이 하란 설교가 가장 쓸모없었고, 단어 많이 알아두라는 조언은 금과옥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쓰기엔 지름길이 없었고 행하기 어려운 진리가 전부였다. 이런 나더러 글쓰기 강의를 녹화시킨들 유튜브 숏츠 하나 분량밖에 안 나온다.
사실은 글쓰기 강의한다는 사람들도 진리 외엔 곁가지임을 알고 있으리라. 알면서도 일단 텍스트 덩어리를 뽑아야 하니 쓰긴 쓴다.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다. 결과물엔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당연한 결과다. 글쓰기는 그저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해 표현하는 기술 중 하나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택배. 뇌라는 창고에 생각이 많이 쌓여 있을수록 내보냈을 때 가치 또한 크다. 보낼 물건 없이 빈 차만 오가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본인부터 내용 없는 글을 쓰면서 글쓰기로 마치 영적 체험을 시켜줄 듯 얘기한다. 사유가 충만해지고 자아가 단단해진다는 식이다.
아예 작가를 만들어준다, 등단을 시켜주겠다며 노골적으로 들이미는 예도 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문예지나 신춘문예 같은 기성 체계의 벽을 못 넘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신 다른 물증을 앞세워 쓸모를 얼버무린다. “보라, 내 글은 ‘좋아요’를 많이 받지 않느냐!” 주장하며 작가가 되는 길을 제시한다. 일단 많이 쓴다. 온갖 SNS에 게시한다. 그럼 유명해진다. 유명해지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 작가가 된다. 이미 핵심은 ‘좋은 글쓰기’나 ‘글 잘 쓰기’가 아니다.
여기까지도 양반이다. 어쨌든 글을 직접 쓰라고 하니까 말이다. 최근의 글쓰기 강의는 더 가관이 됐다. 이름하여 ‘AI로 글 써서 돈 버는 방법’, 이쯤 되면 글쓰기 강의가 아니라 경제학 과목처럼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쓸모없는) 텍스트 생산 및 유통법 개론’ 어떨까. 당연하지만 저런 방식으로 돈 버는 사람은 강의 파는 사람밖에 없다. 애초에 텍스트 자체는 예전부터 공급이 넘쳐났다. 생성형 AI 등장 이전에도 책은 안 팔렸다. 쉬운 글쓰기 방법은 없고 쉬운 돈벌이 방법은 더더욱 없다.
이리 쓰고 보니 세상사가 다 그렇지 싶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은 길게 이어진 데다가 압정도 잔뜩 깔려 있다. 걷다 보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누구나 한 번은 샛길을 찾게 되어 있다. 그림 잘 그리려면 인체 구도 명암을 공부하면 된다. 살을 빼고 싶다면 조금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 다 알지만 진척은 더디고 행동은 괴롭다. 어떡하랴.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에 몰입하지 않고, 미래에 더 나아진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정진할 수밖에 없다. 운동 가기 싫다는 말을 에둘러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