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 싯다르타 (Gautama Siddharta)
인간의 고통은 끝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고타마 싯다르타 (Gautama Siddharta, B.C. 563 ~ B.C. 483)
불교를 창시한 인도의 성자로 성은 고타마(Gau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悉達多)이다.
고(苦)의 본질을 탐구하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수행에 들어갔으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라
불리게 되었다.
그의 존칭은 불타(佛陀), 여래(如來), 세존(世尊), 석존(釋尊) 등을 비롯하여 십 여 개에 이른다.
해탈(解脫)과 열반(涅槃)
불교에서는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을 이야기한다.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종종 구분 없이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다.
해탈은 벗어났다는 의미의 ‘vimutti’, ‘vimokkha’를 번역한 것이고, 열반은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는
‘nibbāna’를 번역한 것이다.
해탈은 벗어난다는 의미로 어떤 구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성욕으로부터의 해탈, 물욕으로부터의 해탈 등 구속이나 속박의 수만큼 해탈의 종류는 다양하다.
석가는 이 세상이 탐(貪:욕심) · 진(瞋:노여움) · 치(癡:어리석음) 삼 독(三毒)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고 하였다.
열반은 삼 독의 불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이러한 열반의 성취에 있다.
해탈이 특정한 어떤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열반은 모든 고뇌와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해탈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어떤 집착에서 일시적으로 해탈해도 다른 집착이 남아있으면
열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든 집착에서의 해탈만이 다시 집착이 생기지 않는 경지인 열반이다.
사성제(四聖諦), 인생의 모든 문제와 그 해결 방법
붓다는 인생 문제와 그 해결 방법에 대해 4가지로 설명한다.
고제(苦諦, 괴로움의 정의), 집제(集諦, 괴로움의 원인), 멸제(滅諦, 괴로움의 소멸), 도제(道諦,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팔 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4가지를 사성제(四聖諦)라고 하며 여기서 제(諦)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한다.
이 4가지 진리는 종파를 불문하고 모든 불교 교단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제(苦諦) : 모든 삶은 번뇌로 가득하다.
우리의 삶은 생(生)에서 시작하여 늙음(老)과 병듦(病)과 죽음(死)을 겪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며, 원한 있는 자와 만나기도 하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고통이다.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은 끝없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집제(集諦) : 모든 고통은 쓸데없는 욕망과 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중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어리석음으로, 어리석기 때문에 탐하고, 비교하고,
시샘하고 다투며 분노하게 된다.
멸제(滅諦) : 고통을 초래하는 욕망을 없애야 한다.
앞서 말한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을 제거한 상태로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도제(道諦) : 욕망을 없애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8가지 방법이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말, 바른 행동, 바른 직업, 바르게 나아감, 바른 기억, 바른 자기 몰입이 있다.
연기설(緣起 說)
연기(緣起)라는 것은 어떤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원인’과 ‘조건’의 협력으로 발생한다고 본다.
이는 단순하게 결과만을 논하는 인과율과는 다르다.
농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종자의 상태가 우수해야 하지만, 그것이 뿌리가 내리는 토양의 질도 좋아야 한다.
종자가 직접적 원인인 ‘인(因)’이라면 토양은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이라고 할 수 있다.
‘인(因)’이 가진 가능성이 ‘연(緣)’과 만나 협력했을 때 비로소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불교가 모든 결과의 근원을 인(因)에서 만 구했다면 결정론적 발전관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불교는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를 이상 세계인 극락정토로 바꾸는 것이 목표인데, 인(因)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입장을 취해서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인(因)과 연(緣)이 협력하여 결과가 나타난다는 논리에 따르면 인(因)이 먼저 주어져 있어도
연(緣)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불교는 결정론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기설(緣起說)은 모든 현상은 인연에 의해서 그러한 모습으로 성립되어 있을 뿐,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생(生)하고 멸(滅)하여 변화한다는 것으로, 결국 홀로 독립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불교의 핵심
이론이다.
우주 만물은 인(因)과 연(緣)에 의해 스스로 생성하고 소멸한다.
《중아함경 中阿含經》에는 연기(緣起)에 관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此有故彼有(차유고피유) :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生故彼生(차생고피생) :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此無故彼無(차무고피무) :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으며
此滅故彼滅(차멸고피멸) :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 《중아함경 中阿含經》
이는 앞서 설명한 제행 무상, 제법무아, 일체 개고 와도 근본적으로 통한다.
12연기설(十二緣起說)
붓다는 생사 인연의 고리를 세밀하게 고찰하여 그것을 12단계로 나누었는데 이를 12 연기라고 한다.
12 연기설은 붓다의 가르침 가운 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교리이자, 불교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이론이다.
12가지 요소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6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며 이에 대한 뜻은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 : 명(明)이 없는 상태란 밝지 못한 상태로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상태를 의미한다.
행(行) : 어리석은 상태인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행(行)함으로써 업(業)이 지어지는 것이다.
식(識) : 그동안의 행(行)으로 인해 축적된 것에 의해 분별하려는 의식이 발생하는 것
명색(名色) : 분별하는 의식인 식(識)에 의하여 명색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명(名, 비 물질적인 것)과 색(色, 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다.
정신을 명(名)이라 하고 형체가 있는 물질이나 신체를 색(色)이라고 한다.
6입(六入) : 눈, 코, 입, 귀, 신체, 의식의 외부 자극을 지각하는 6가지 감각 기관을 가리키며 지각 능력을 의미한다.
촉(觸) : 앞서 말한 감각 기관이 외부의 소리, 빛, 냄새, 맛, 촉감 등의 자극과 접촉하는 상태다.
수(受) : 감각 기관이 외부의 대상과 접촉한 결과로 나타나는 기쁘거나 불쾌한 느낌의 상태를 의미한다.
애(愛) : 인식에 의해 쾌락이나 고통에 따른 감수가 생기면 자신에게 불쾌함을 주는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원망하고
피하려는 욕구가 생기고, 자신에게 쾌감을 주는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심한 애증의 생각이 바로 애(愛)다.
취(取) : 앞서 설명한 애(愛)가 마음속에서 일어난 (고통과 쾌락을 구분하는) 차별적 욕심이라면
취(取)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취하고 버림이다.
유(有) : 욕망을 채우려는 애(愛)와 취(取)에 의해 인연에 따라 업(業)을 지어 과보(果報)를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生) : 지은 업(業)에 의해 현실에서 어떤 경험이 생기거나 멀게는 미래의 생(生)을 받게 되는 것.
유(有)에 의하여 생(生)이 생긴다.
노사(老死) : 태어나서 늙고 죽는 것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대표한다.
모든 중생이 윤회(輪廻)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불교에서 추구하는 목표다.
윤회라는 것은 각자가 축적한 선업(善業)이나 악업(惡業)에 따라 서로 다른 조건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성현들의 말씀을 본받아 선업을 많이 쌓으면 즐거운 곳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지만, 악업을 많이 쌓으면
축생, 아귀로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선업을 쌓아 좋은 곳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윤회를 벗어날 수 없게 되는데,
이 영원한 윤회의 고리로부터 벗어나 생사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되는 수밖에 없다.
즉, 중생의 고통은 무명(無明)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무지가 없는 곳에서는 업력과 인상도 없으니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기를 바라보는 데는 2가지 방식이 있는데, 순관(順觀)은 무명(無明)부터 노사(老死)의 방향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책에서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이다.
역관(逆觀)은 노사(老死)에서부터 무명(無明)으로 역방향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추리적 사색에 해당하며
수행의 방향이다.
석가모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관찰하고 그 원인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업보(業報)
업(業)이란 행위, 일, 활동을 의미한다.
업(業)을 발생시키는 것은 무명(無明)으로 인한 번뇌다.
그 번뇌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있다.
중생이 이 삼독심(三毒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에 번뇌를 겪으며 해탈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즉, 삼독심(三毒心)에 의해 업(業)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적된 업(業)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 과보(果報)다.
업(業)을 행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흔적과 세력을 남기게 된다.
그것들이 축적되어 남겨진 세력을 업력(業力)이라고 하는데, 이는 잠재적 에너지로 존재하다가
기회를 만나면 특정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모든 불교 이론의 근본
석가는 생전에 스스로를 신(神)이라 칭하지 않았다.
석가는 중생들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괴로움의 근원과 해탈에 이르는 방법을 사색한 철학자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신격화하여 불교라는 철학은 종교적 색채가 짙어지게 되었다.
불교는 석가 이후, 종교로 발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갈래의 종파가 발생하였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는 예수나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 사후에 제자들이 기억에 의존해서 기록을 해야 했다.
이후 매우 다양한 교리가 발생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석가의 교리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교설들이 부연하여
많은 종파가 생겨난 것이므로, 근본 교리인 석가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불교 이론의 전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붓다의 말
《법구경 法句經》은 석가의 입멸 후 등장한 경전 중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기에 편찬된 만큼,
석가의 경전 가운데에서도 석가의 말씀에 가장 가까운 순수성을 지닌 문헌이라 볼 수 있다.
《법구경》에 나오는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항상 할 것 같아도 모두 다 없어지고,
높은 데 있는 것도 반드시 떨어지며,
모이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죽고 만다.
- 한역(漢譯) 본 《법구경》, 무상품(無常品)
총명한 이는 지혜로운 이를 만나면 마치 혀가 음식 맛을 아는 것처럼 곧 도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나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가까이해도 마치 국자가 국 맛을 모르는 것과 같이 알지 못한다.
- 팔리어본 《법구경》, 우암품(愚闇品)
뿌리가 다치지 않고 튼튼하면 나무는 잘려도 다시 성장하듯,
애욕을 모두 없애지 않으면 이 괴로움은 언제나 되풀이하여 일어나리.
- 팔리어본 《법구경》, 애욕품(愛欲品)
[출처] 붓다(고타마 싯다르타) 2편 : 해탈, 열반, 사성제, 연기설, 12 연기설|작성자 작가 신성권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