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한 사람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악을 행함으로 미디안 족속을 통해서 수탈(收奪)을 당하게 하셨고,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기드온(Gideon)을 들어서 사용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기드온은 미디안 족속의 약탈을 두려워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을 할 정도로 담대하고 강한 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11절). 그렇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主權)으로 오브라(Ophrah)에 사는 기드온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세우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여”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valiant warrior)라고 부르십니다(12절). “큰 용사”라는 말은 “강한 용사”라는 의미입니다. 기드온이 실제로 힘이 강한 용사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반드시 함께하시겠다고 하셨기에(16절),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여 큰 용사로 쓰임 받게 될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큰 용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기드온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압제와 약탈로 수난(受難)을 겪는 현실에 대해 한탄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셔서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지 않은 것이냐고 투덜댑니다(13절). 그렇게 불평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그래서 내가 너를 택하여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려고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기드온은 자신의 미약함을 토로(吐露)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기드온은 가장 작은 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겠다”라고 약속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쳐부수듯 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6절).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와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표징으로 보여달라고 요청하면서 재물을 가지고 와서 드릴 테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준비하여 염소 고기와 무교병(無酵餠)과 염소 새끼를 삶은 국물(Broth)을 바위 위에 올려 하나님 앞에 드렸고, 하나님의 사자는 지팡이 끝으로 그 제물에 대어 불이 바위에서 나와 모든 제물을 사르게 하였습니다(17절~21절).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비로소 자기 앞에 나타나신 분이 하나님의 사자인 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뵌 자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 두려워합니다(22절). 그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기드온은 다시 거기에서 제단을 쌓아 그 제단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23절, 24절). 여호와 샬롬(שָׁלוֹם)은 “평강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이란 의미입니다. 미디안의 압제와 약탈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뵌 기드온은 하나님의 평강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고 살았다는 고백에서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평강이 임할 것이란 고백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원하실 사사로 기드온을 택하셨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기드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충분히 미디안 족속을 쳐서 이길 강한 용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한다면 우리도 강한 용사로 쓰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평강 안에서 강한 용사로 쓰임 받게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