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15:12 ~ 19】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말씀 나눔】
믿는다고 말하는데 삶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그런데 삶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의사가 담배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그 사람은 의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실이 자기 삶과 연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는 것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분리시킨 것입니다.
당시 헬라 세계관에서 몸은 영혼의 감옥이었습니다.
죽으면 영혼이 그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오히려 역행처럼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논리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분리가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부활을 잘라내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빈 통이 됩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11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들이 하나같이 전파한 것, 고린도 교인들이 그것을 받아 믿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의 내용과 그들이 보인 믿음의 반응이 일치했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분위기가 갑자기 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사도바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묶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살아나시고 우리는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바울에게는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13절과 14절을 보면,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헛것'이라는 말은 원문으로 '케노스'입니다.
속이 텅 빈 것, 내용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을 빼버리면 복음은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증인이 아니라 거짓 증인이 되고 맙니다(15절).
오늘 본문에서 사용하는 ‘거짓 증인’은 법정 용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위증한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지 않으셨다고 증언한 자가 됩니다. 또한 기독교 전체가 2천 년을 이어온 거대한 거짓말이 됩니다. 부활이 없으면 그 복음을 전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증인이 아니라 거짓 증인이 되고 맙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16절과 17절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사도바울이 같은 논증을 한 번 더 반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깊이 내려갑니다.
14절에서 믿음이 헛것이라고 했을 때는 빈 통이었습니다.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헛되고는 14절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원문으로 '마타이아'.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빈 통에서 한 걸음 더 내려갑니다. 그 통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기계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집니다.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여기가 핵심입니다. 물론 죄를 위한 대속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의 희생을 받으셨다는 공개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유효성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는 처형 기록으로만 남습니다. 죄 사함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죄 사함의 확신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죄감에 시달리고,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실까 불안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 원인이 여기 있을 수 있습니다.
부활이 내 삶에 연결되지 않으면 죄 사함의 확신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8절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여기서 "잠자는 자"는 이미 죽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먼저 떠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던 사람 중에 먼저 간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그들은 망한 것입니다. 영원히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라고 말합니다.
부활이 없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주님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박해를 당하고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논리로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일본군 소위 ‘히로 오노다’는 필리핀 루방 섬에서 혼자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종전 소식을 적의 선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1974년까지 29년 동안 이미 끝나버린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오노다는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승패가 결정된 세상에서 여전히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죽음이 이미 패배했는데도 여전히 죽음이 최종 승자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지금 손에 쥔 것을 놓으면 다 끝나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19절은 조건절입니다.
부활이 없을 때만 사실입니다. 부활이 있다면 이 계산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주님을 위해 감수한 손해가 가장 불쌍한 것이 아니라,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박해와 가난과 수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됩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새벽에 우리는 말씀 앞에 서 있으며, 이 세상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던 것에서 자유롭고,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소망을 품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사함도 확신할 수 있고, 먼저 떠난 성도들과의 다시 만남도 소망할 수 있으며, 오늘의 손해와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활은 먼 미래의 약속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계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두려움보다 소망을 선택하고, 세상보다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하루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 하루를 돌아볼 때, 부활을 믿는 사람답게 살았습니까?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붙들고 집착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②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가장 놀라고 충격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 충격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느껴집니까?
③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납니까?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선언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④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7절)라는 말씀이 나에게 어떻게 닿습니까?
죄 사함의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 뿌리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
합니까?
⑤ 19절은 조건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하다"는 말의 역상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 삶에서 이 역상이 가장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⑥ 오늘 하루 "부활이 있는 사람"으로 다르게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⑦ 오늘의 결단을 짧은 기도문으로 적어보십시오.
【추천 찬송가】 172장 하나님의 독생자
【은혜의 찬양】
내가 주인 삼은 : https://youtu.be/h2U16lmPZCI?si=0JhVRrk0hJnjyunE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tRJLFJWln7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