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는 작곡가로서의 성공과 더불어 게으름뱅이이자 당대의 미식가로도 유명했습니다. 37살의 이른 은퇴이후, 그는 자신의 저택과 별장에 유명한 음악가들을 비롯한 지인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파티를 자주 열었고, 실제로 유럽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투르네도 로시니’를 비롯한 그의 이름을 딴 요리가 몇 가지 남아있습니다.
투르네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 – 스테이크와 푸아그라를 버터에 튀긴 후, 검은 송로버섯을 얹고, 데미글라스 소스를 뿌린 요리 [출처 - Wikipedia]
탐식하는 로시니를 그린 삽화 [이미지 출처 - ⓒ Google Images.]
“작곡하는 것보다 먹는 게 더 즐거워서지요” 일찍 은퇴한 이유에 대한 로시니의 대답
“로시니는 침대 위에서 작곡하면서
이 세상의 즐거움을 마음껏 맛보았고 식탁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중년이 되자마자 은퇴한 것이다” 로시니에 대한 어느 평론가의 말
“로시니는 음식을 탐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음악가다. 로시니의 음악은 올리브와 토마토, 장미와 로즈메리, 커버와 식탁보,
와인과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연상시키며 허브 향으로 가득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
이러한 로시니의 탐미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삶의 방식은, 다리오 포의 말처럼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음악적 이상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를 무대에 구현하는 ‘바로크 오페라’였고, 극한의 성악 기교가 필요한 장식음을 악보에 명기하여 가수들에게 이를 소화할 것을 주문했죠. 이는 기교적인 부분은 상당부분 가수의 자율에 맡겼던 기존 바로크 오페라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성공한 작곡가 로시니의 자신감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수많은 음표로 이루어진 기교적 선율이 화려하게 표현되는 ‘장식선율(Melisma)’, 소리가 점점 커짐과 더불어 수많은 음악적 장치를 통해 듣는 이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로시니 크레셴도(Rossini Crescendo)’, 그리고 현실적인 이야기보다는 절제되고 품위 있는 비극 혹은 밝고 유쾌한 희극을 통해 표현됩니다. 남성의 역할을, 남장을 한 알토나 메조소프라노가 연기하도록 한 ‘바지 역할’ 또한 바로크 오페라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식선율’과 ‘로시니 크레셴도’가 어떤 것인지 잘 나타나있는 영상 세 편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영상을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각각 다른 오페라이며 가수의 성별 역시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곡처럼 들리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는 로시니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자가 표절’로서,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단 당시 음악계에서 유명한 작품의 노래를 가져다 쓰는 것은 드물지 않은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로시니는 이미 본인의 작품이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필요에 따라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전용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영상에서는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맡는 ‘바지 역할’이 나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남성이지만 훈련을 통해 여성의 음역을 소화해내는 카운터테너가 등장합니다. 남성 연기를 하는 여성을 위해 작곡된 곡을, 여성의 음역을 소화해내는 남성이 맡는 이례적이지만 완성도 있는 무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 중 ‘이제 슬픔은 없어’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출처 – YouTube]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저항을 멈추시오’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출처 – YouTube]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 중 ‘아르사체의 아리아와 중창 모음’ 카운터테너 프랑코 파지올리 [출처 – YouTube]
같은 19세기를 살았던 푸치니는, 로시니와는 여러모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단순히 세대가 다른 것을 넘어서서, 본인 스스로 타고난 기질과 처한 상황이 많이 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푸치니는 불과 다섯 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으며, 성공의 계기가 된 첫 오페라 상연 직전에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특히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존재였던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죠.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이전, 지난했던 가난한 생활과 지속된 불안감은 ‘멜랑콜리’함으로 일컬어지는 우울의 정서로서 그의 삶과 작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루 종일 엄마 생각뿐이야. 꿈에도 나와. 오늘은 더 슬프네. 이제 성공한들 엄마가 없이는 행복할 수 없을거야.” 어머니의 죽음 후, 동생 라멜데에게 보낸 편지 중
“친구도 없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 외롭다.”
대본작가 일리카에게 보낸 편지 중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엘비라와 도리아의 스캔들 당시, 시빌 셀리그먼에게 보낸 편지 중
기본적으로 가진 그의 이러한 기질에 더해, 잘생긴 외모와 빛나는 성공을 지닌 푸치니에게 수많은 여성들과의 사건 역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이며 비극적인 사건이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와 하녀 도리아의 스캔들입니다. 1903년에 자동차 전복 사고를 겪은 푸치니에겐 그를 보살필 사람이 필요했고, 도리아라는 어린 하녀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푸치니의 바람기에 시달려왔던 아내 엘비라는 도리아를 의심했고, 갖은 괴롭힘과 동시에 거짓 소문을 주변에 퍼트리게 되었죠. 결국 도리아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 부검 결과 엘비라의 의심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혀졌습니다. 이 스캔들은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퍼졌고 푸치니 역시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비라(왼쪽)와 푸치니(오른쪽) [이미지 출처 - ⓒ Google Images.]
푸치니, 엘비라, 도리아 스캔들을 다룬 영화 ‘푸치니의 여인’ [이미지 출처 - ⓒ Google Images.]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작품에서, 질투와 의심에 찬 여성이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토스카’로, 순종적이고 남성에 종속된 소녀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나비부인’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낭만과 삶의 애환이 담긴 ‘라보엠’으로, 노동계층의 치정 살인극인 ‘외투’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본질적으로 그의 작품은 이상보다는 현실, 숭고한 사랑보다는 세속적인 사랑, 인물들의 사실적이고 강렬한 성격이 나타나게 되어 그의 작품을 ‘사실주의’의 표현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여담으로 그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 ‘투란도트’의 미완성에는 남성을 적대시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푸치니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이 그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실제 존재했던 장소 및 인물, 혹은 가난한 이들의 삶에서 오는 낭만 그리고 비참함 위에 로시니 특유의 수려한 선율이 흐릅니다. 다음 영상들에서 이를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실제 장소인 ‘산탄드레아 성당’에서 펼쳐지는 미사 장면과 로마의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의 악의 독백이 펼쳐집니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서민들의 노동현장인 항구를 배경으로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미켈레가 그 심경을 노래합니다. 마지막 영상에서는 파리의 다락방에서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바느질로 살아가는 여성 미미의 첫 만남이 그려집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테 데움’ 바리톤 암브로지오 마에스트리 [출처 – YouTube]
푸치니의 오페라 ‘외투’ 중 ‘아무도 없다. 조용하다.’ 바리톤 피에로 카푸칠리 [출처 – YouTube]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중 ‘내 이름은 미미’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출처 – YouTube]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어지는 다음 편 'Messa di Gloria : 로시니와 푸치니의 같은 제목 다른 작품'에서 두 작곡가의 '글로리아 미사'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연개요
공 연 명 : 서울시합창단 <명작시리즈III>
일 시 : 2018.10.25(목) 19:3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프로그램 : 푸치니, Messa di Gloria / 로시니, Messa di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