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두밑창은 바깥쪽으로 닳는다. 다른 부분은 멀쩡한데 꼭 뒤축이 기형적으로 닳아 묘한 불균형에 문득 이를 바라보면서 쓸쓸히 혼자 웃는다. 나는 내 구두 밑창을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비교적 활동양이 많은 나에게 이의 수리는 다반사다. 젊었을 때는 집중적으로 다는 그 부위에 쇠징을 박어 본 적도 있다. 씨멘트 바닥에 부딪혀 따그닥 따그닥 하고 나는 소리가 그런대로 들을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그 것도 멋이라고...
일전 한국에 들어가려고 청도 터미널에서 배표를 끓고 시간이 많이 좀 남기에 무료함을 달래려 주위를 배회하다 구두수리하는 곳이 보여 굳이 수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비적인 측면에서 밑창을 수리한 적이 있다. 반달모양의 생고무 한 셋트에 3원(한화 360원)에 하기로 하고는 접이식의자에 앉으니 슬리퍼를 하나 내준다 꼬질꼬질하니 때가 낀 시커먼 슬리퍼를 신어야 할지? 말지? 주저하다 씨익하니 웃는 초로의 쥔장모습이 격의가 없어 나 역시 씨익하니 웃어주고 그 것을 신었다.
나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기에 길림이라 했더니 조선족이냐고 되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의 추측이 맞았다고 하면서 싯누런 이를 내보이며 즐거워한다. 요즈음 장사가 어떤지? 하루 얼마정도 버는지? 뭐 그런 일상적인 얘기를 나는 묻고 그는 내가 한국가서 돈을 벌어 좋겠다고 자신이 조금만 젊었어도 그리 할텐데... 그리 할 수 있는 당신이 부럽다고... 대충 그런 저런 얘기를 시시콜콜 나누고 있는데 서양사람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주저없이 신발을 벗고는 밑바닥 수리를 요청한다.
서양인인 그는 중국말을 하지 못하였다. 내 옆에 앉아서는 친근감을 내보이려는 듯 담배를 권한다. 그는 독일인 이었다. 나와 독일인의 열띤 대화가 몹시 궁금한지?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영어가 짧으니 거의 몸짖으로 하는 대화라... 내 허락도 없이 그의 구두를 먼저 수리하면서 나에게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독일인이라고 했더니 슬며시 변하는 인상이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 독일인의 신발은 랜드로바식의 누런 캐쥬얼화였다. 얼핏 보기에도 튼튼하고 견고히 보이는 신발이었지만 기가막히게도 바닥은 나와 똑같이 한쪽으로 닳고 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같은 동류의 의식이 공감되어 서로 되지도 않는 말을 지꺼리며 시간을 때울 즈음 이 수리공은 밑창을 다 수리하고는 다시 신발 면면을 살펴 보면서 순간접착제로 꼼꼼히 모든 부분을 땜질하는 것이다. 그 정성이 갸륵하기 보다는 내가 보기에 굳이 할 필요도 없는데 일부러 하는 것 같다. 오히려 가죽은 순간접착제가 뭍으면 뻗뻗해져 더 안 좋을 터인데도 그는 한참을 그렇게 꼼지락 하더니 다 되었는지 주인 앞에 신발을 털썩 내려 놓는다.
얼마냐는 물음에 수리공은 가차없이 30원을 얘기한다. 독일인이 기겁 팔짝하는 것은 당연했다. 나 역시 깜짝 놀랐다. 그 수리공은 한술 더 떠 믿어지지 않는다는 독일인의 눈앞에 30 이라는 아라비아 숫자를 큼지막히 써서는 잘 보라는 듯 흔들어댄다. 내가 정중히 타일렀다. 그건 너무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고 그러나 그는 완고 하였다. 너무나도 그의 태도가 밉상이라 당신 나쁘다 하면서 적당한 가격을 받으라고 충고까지 하였다.
독일인이 10원짜리 한장을 꺼내 주고는 휙 돌아선다. 순간 수리공은 잽싸게 일아나서 그를 가로막는다. 한참을 서로 실랑이를 하다가 독일인이 짜증이 나는지 주머니의 잔돈을 모두 꺼내 그 수리공 앞에 던지듯이 털어 놓는다. 정확히 4원 50전 그러나 수리공은 인정을 안한다. 나머지 돈을 더 내라고 찰거머리처럼 달라 붙는다. 그러자 독일인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크게 성질을 내면서 완력으로 수리공을 밀어 제치고는 도망가듯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독일인이 떠나고 난 후 수리공은 바닥에 떨어진 돈을 소중히 집어들고는 그런대로 만족을 했는지 나를 어줍쟎게 쳐다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독일 놈은 나쁜 놈이라고..." "그 독일이 예전 이 청도를 침략하였다고..." 피해의식이 그에게는 아니 중국인에게는 다분히 남아 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복수였다. 중국인이 돈과 복수는 유명하다지만 이렇게도 돈과 복수를 절묘하게 꿰 맞춰 실행하는 것에 나는 중국인의 그러한 면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나의 구두수리가 다 끝나 3원을 주고는 일어섰다. 돈을 받으면서 당신은 한국사람이 아니냐고? 아까와는 다르게 신중히 묻는다. 씨익 웃어 줬더니 한국은 한국사람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멀지않은 곳에서 그 독일인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전 회사에 주구장창 오는 일본쩍빠리들 델꾸 지모루 시장을 곧잘 가는데...자주 가는 단골집에 가서 별로 안 깍거든요. 이젠 점원한테 윙크하면 걍 알아서 가격을 부릅니다. 물론 저는 따로 가서 싸게 사죠. 잘해주고 싶은맘이 안 생기는 것보다, 오히려 골탕먹이고 싶은맘이 더 드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첫댓글 아주 훌륭한 작품이군요/많이 모으세요/훗날 베스트 될 거여요.
쑥스럽습니다. 이런 과분한 칭찬을 주시니~
대화동님 중국말 잘하시는 모양입니다. 부러버라...... 나는 언제 구둣발 뒷꿈치라도 따라 갈려나..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행색이 그리 보였을 겁니다.
대하동님 따봉입니다^^
다리를 다쳐 산행을 한주 쉬더니 또 밤낮이 바뀐것 아뇨?
이놈들 칭따오 맥주는 자랑하면서 피해 의식은 있어가지고...
젊은 친구들은 안 그런것 같은데 나이드신 분들은 그런 피해의식이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보고갑니다..나에게는 새로운 사실도 되고요..
참...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살아있는 글을 쓰시네요. 어떤 미사여구도 어려운 말도 없이 이렇게 멋진 글을 쓰시는 대하동님.. 이래서 제가 대하동님을 사모한답니다..^^
시사하는 바가 큼니다. 깊게 생각하게 합니다....감사!
독일인이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면서 이곳에 산다는것이 엄청 다행한 일인거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심한거 아닌가요? 복수치고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이 긴 글을 쓰시느냐 고생 많으셨을 것 같네요... 그래서 3번 읽었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정성을 다해 우선적으로 수리해 주고,계산은 바가지라....감정과 실리를 잘 구분하는 수리공일세...재미있게 읽었습니다.길림이 고향이라~~마 그래도 누가 의심을 하겠느뇨?
그래도 돈을 다르게 받는걸 보니 개안심더.. 괜찮아 보이는 구먼유.. 그러쟤잉~ ^^ 히히
대하동님 글은 읽고나서 꼭 생각에 잠기게 만들어요. 흠~~~역쉬 멋있는 분이셔~존경^-^ 저라면 어떻했을까? 흠...쉽사리 답이 안나오는데...아마~10배까지는 아니더라도 2배 정도는 받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 회사에 주구장창 오는 일본쩍빠리들 델꾸 지모루 시장을 곧잘 가는데...자주 가는 단골집에 가서 별로 안 깍거든요. 이젠 점원한테 윙크하면 걍 알아서 가격을 부릅니다. 물론 저는 따로 가서 싸게 사죠. 잘해주고 싶은맘이 안 생기는 것보다, 오히려 골탕먹이고 싶은맘이 더 드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글을 맛있게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부럽습니다 ^*^~~
맛갈스러운 글...잘 읽고 갑니다...말이 안통하다보니...물건 살때...다른 중국인들 계산하는 것 보고 물건을 구하곤 했는데...과일사고 5배 바가지 쓴 기억이 절로 나네요...ㅎㅎㅎ
우리 카페(심천)에 퍼 갔습니데이~~~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J^
많이 느끼고 갑니다~~ ^-^;;
역~ 쉬... 따~ 따거
수리공 말이 맞아요 예전의 침략은 나빴고, 지금 맥주 맛은 좋아요.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올듯한 편안한 생활조각 - 잘 읽었습니다.
전 중국생활 6개월쯤되는데 어설픈 중국어로 고향이 길림이라고해도 믿어줄까요? ㅋㅋ 궁금합니다.. 고수님들 답변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