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독서토론회 후기 ---에라스무스 평전

[찰리브라운]

“연인처럼 왔다가 
도둑처럼 가버리는”(복효근/시월)
10월이 흔적도 없어 떠나버리고,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나태주/11월)입니다.

이번 달 책은 ‘에라스무스 평전’이네요.
하지만 주인공이 에라스무스인지, 슈테판 츠바이크인지 헷갈릴 정도로 대화의 촛점은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에 집중되었습니다.
독특한 문체, 섬세한 감정묘사와 드라마틱하게 펼쳐가는 이야기 솜씨로 많은 팬들을 거느린 저자답게 독토에도 광팬들이 꽤 있군요.

 도서목록을 검색해보니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발자크, 카사노바, 니체, 스탕달, 마리앙투아네트, 마젤란, 메리스튜어트, 조제프푸세..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인물들이 그의 펜으로 재탄생했구요, 그의 탁월한 필체 뿐만 아니라 그의 드라마틱한 삶 자체도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요소였지요.
그의 펜으로 묘사된 수많은 인물 중 선정위원장님과 다독가(多讀家)인 강모 회원이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다는 ‘발자크 평전’은 참석자 대부분이 필독서 목록에 찜! 해두는 분위기네요. 

뒤늦게 진짜 주인공으로 화제를 옮겨갑니다.
“왜 이 시점에 에라스무스일까요?”

모두들 선정위원장님의 답변을 주시하고 있는데요.

먼저, 우리가 얼마전 읽었던 ‘메디치가 이야기’에 나오는 교황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가 재위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에 나오는 사보나롤라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 다음으로, 대립과 광기의 그 시대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참조: 이 멘트를 할 때 선정위원장님의 태도가  Erasmusrous (記者의 신조어이니 사전 찾지 마시길)하게 조심 조심 눈치를 보면서 발언을 이어갔다는 점ㅠㅠ

말랑말랑한 책 두께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름 정도만 알고 있던 에라스무스를 심층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소감, 작가가 에라스무스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것 같았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에라스무스, 그의 삶의 태도에 대하여 공감이 되셨나요?
예상했던대로, 그 시대의 부패와 불의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보신(保身)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비겁한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다는 직설적인 비난이 날아옵니다. 
  그와 반대로, “저자가 역사의 승리자로 묘사한 루터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했느냐?  그리고 ‘우신예찬’에서는 교황에 대하여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 않느냐?”는 에라스무스를 위한 변호가 맞서지만 분위기상 역부족으로 보이네요.

 인류에 폭력을 가져오는 커다란 갈등의 책임은 인간에 내재한 폭력의지가 아니라 그 폭력의지를 추동하여 집단으로 덤벼들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에라스무스의 말은 새겨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우리 사회의 현실 상황에 대한 탄식이 이어집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양극단의 편가르기가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
답답한 현실에 참석자 모두가 한숨을 내쉽니다.

이때 튀어나온 한편의 개그...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는 TV조선을 틀어놓고 야당대표를 비난하고 있고, 손녀는 이에 맞서 대통령을 욕하고... 그러면서도 시어머니와 손녀가 손을 잡고 쇼핑을 함께 가는 아이러니..”라고 유모 회원이 탄식하자, 
옆에 있던 조모 회원이 깜짝 놀라며 “그 집 시댁이랑 우리 시댁이 같은 집인가요?”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하네요.

에라스무스의 시대나 저자가 산 시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모두 양극단 중 어느 한 편에 설 것을 강요당하는 시대인데, 그 어느 곳에도 종속되지 않는 나만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탄식과도 같은 이 질문에 모두들 물음표만 품네요.

에라스무스는 계몽을 통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한 것으로 믿었다지요.
그렇다면 인문학적 지식, 문학, 예술, 교양의 학습을 통해 과연 인류가 진보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젊은 시절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는 분도 있었고요, 클래식 음악을 따라 올라가면 그 끝에서 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님을 깨닫고 재즈의 길로 전환했다는 고백도 있네요.
그러고 보면 평생 계몽을 통한 인류의 진보를 믿었던 에라스무스보단 우리 독토회원들이 더 일찍 철이 든 것이겠지요?

이 밖에 예정론, 유전자 결정론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긴 커피타임에서는 음악이야기나 유럽의 미술관 이야기, 그 전날 발표회를 하신 박교수님의 공연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인문학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과학 이야기로 건너갈 차례네요.
다음달 책은 “과학의 반쪽사”(제임스 포스켓)입니다. 근사한 식당에서 재미있는 연말모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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