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새해가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happy new year!"입니다. 개인적으로, "happy new year"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듭니다. 복(福)이 물질적 만족에 가깝게 느껴지는 반면, 행복(幸福)은 좀 더 심리적인 만족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뿐입니다. 2022년을 돌이켜보면, 마음이 고달팠습니다. 직접 불행을 당한 건 아니지만, 가족과 친구의 불행과 생로병사에 괴로웠습니다. 친밀한 사람의 불행은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서, 우리들의 행복은 저뿐만 아니라 친밀한 타인들의 행복에 철저히 빚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행복은 바랄수록 멀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저는 행복을 다행이라 바꿔 불렀고, 행복한 삶의 조건을 걱정이 적은 삶이라 정의했습니다. 좋은 일이 많은 삶보다는, 나쁜 일이 적은 삶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담담한 말 중에는 "나쁘지 않다!"가 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불행입니다. 행복은 불행과 멀리 동떨어진 것 같지만, 실은 짝패처럼 붙어서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골몰합니다. 술과 담배를 피하고, 운동을 부지런히 하며,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행복학의 대가 조지 베일런트 박사에 의하면, 행복해지는 조건 중의 으뜸은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입니다. 시인 잭 길버트는, 이 지혜를 자신의 시에서 고집스러운 기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회화는 창작의 예술이고, 사진은 발견의 예술에 가깝습니다. 흰 캔버스에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 넣는 창작이 회화작업이라면,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발견해서 카메라에 담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진작업과 닮아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미 우리 주위에 있는 행복을 발견해서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고로, 기다리는 한 시간이 불행이 될지 행복이 될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백영옥)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귀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행복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문제적 요소도 있게 마련입니다. 고로,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2)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인의 태도,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