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곡우에는 으례 모내기를 할 수 있는 단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이 비를 기다려 농사를 짓는다.
남녘의 많은 비는 곡우부터 시작되어 다음날에는 정선까지 올라와서는
세찬 바람과 함께 많은 비를 내리고,
정선의 작은 마을 북평에서는 빗 속에서도 잔치가 벌어진다.
해마다 4월초 면민의 날을 기려 북평사람들은 동네에 하나인 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체육대회로 즐기던 잔치가 거리로 나와 또 하나의 문화가 시작되었으니,
금년에 처음 시작되는 이 축제를 정선 토속음식축제라 부른다.
날이 갈 수록 젊은이는 줄어 어르신들만 남은 마을과 마을끼리
운동장에 모여 치르게 되는 체육대회는 힘겨울 수 밖에 없고,
어떤 마을은 웬만한 종목의 운동경기에는 아예 출전조차 힘들다.
따라서 예년의 잔치는 그래도 젊은 축들이 있는 마을에서야 이런저런 경기에 참여하고
그렇지 못 한 마을에서는 그저 하루를 즐겁게 마시고 먹는 날이 되니,
긴 겨울을 끝낸 농사의 시작은 이 날을 기점으로 하였다.
아우라지에서 흘러내려오는 조양강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북평마을은
예로부터 비단밭 나전이라 불러,
탄광이 문을 닫은 오늘날에는 그 전의 고즈녁을 되찾아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슬로우 시티가 된다.
전야제라 할 수 있는 개막식은 황소 등에 올라 말처럼 몰고 오는
목동의 힘찬 걸음으로 시작되고,
정선의 잔치에는 역시 아라리가 빠질 수는 없음이라
구성진 긴아리랑으로 시작되어 엮음아리랑은 신명난다.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않고 사람들은 구름같이 모여 잔치의 시작을 기뻐하여
고향마을의 잔치에는 언제나 오는 고구려밴드의 힘찬 리듬에 몸을 맡기고,
객석 여기저기에서는 어려부터 보던 그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불러 반가워한다.
도시의 축제야 워낙 인구가 많으니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숫자로 따질 수도 없으련만 작은 산촌마을은 집집마다 모두 나오고,
TV, 냉장고, 자전거 등등 경품은 어이하여 그리 많은지
아마도 집집마다 하나씩은 가져 갈 수 있겠다.
불러지는 추첨번호에 따라 한 아름씩 선물은 안겨지고
모처럼의 함박웃음은 싱그럽다.
날이 밝은 잔치마당에는 남녘에서는 진다 하는 벚꽃이 이제 피어 화사하고
어느 집 마당의 목련이 눈부시다.
동네에서 제일 큰 길을 막아 천막은 길게 이어지고
검은 치마 흰 저고리의 아낙들은 음식 준비에 부산하다.
황소 등에 올라탄 목동은 연신 행사장을 바삐 오르내리고
사람들은 말처럼 모는대로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다 한다.
어렸을 적 보고는 못 보던 소달구지도 아이들을 태워 동네를 돌고
논에서는 쟁기를 맨 소의 느릿느릿 써래질이 느긋하다.
못줄잡아 모를 내는 모습 얼마만인지 또한 정겹고
써래질이 끝난 소는 외양간에 매여 여물과 함께 한가하다.
어르신들은 따로이 천막을 마련하여 이제는 잊혀져가는 옛물건들도 모아놓고
짚으로는 손수 새끼를 꼬아 망태도 만들고 멍석도 만들어 아이들에게 일러준다.
산촌에서조차 이제는 쓰지 않는 똥장군도 보이고 여물써는 작두며
전기없는 시절에 쓰던 등잔, 촛대, 호야가 반갑다.
축제의 이름을 토속음식축제라 하였으니 음식을 만드는 천막으로 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큰 길 중앙에 무대를 만들어 우측은 옛날을 재현하고
좌측은 음식의 거리라 기름냄새 진동한다.
떡메치는 소리 종일 우렁차고 국수틀에 매딜린 장정들은 힘쓰느라 얼굴이 벌겋다.
동리마다 따로이 차린 천막에는 음식도 종류별로 할당하여
이 곳은 떡이요 저 곳은 죽, 또는 나물이다.
애시당초 강원 산간의 음식이란 쌀이 귀하였기에 감자, 옥수수, 메밀이 주인이라
여느 고을과 달리 이름에도 감자, 옥수수가 많이도 들어가고,
강원 산간의 토속방언으로 인하여 유달리 별난 이름이 많다.
또한 만드는 과정 역시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이 곳에 산다 하여도 보기 어려운 음식들이 한둘이 아니라,
이런 특별한 행사가 있어야 볼 수 있다.
콧등치기국수, 올챙이국수야 정선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장마당에서 맛볼 수 있지만
감자붕생이밥, 광쟁이밥, 능쟁이밥, 메밀느쟁이밥, 능군강냉이죽에,
콩갱이죽, 팥가랑죽, 봉골죽, 감자옹심이죽, 메밀국죽, 느릅국수, 가수기, 가시레,
꼴두국수, 감자투생이, 콩반대기, 박상반대기, 메밀전병, 노치, 수수부꾸미...
이루 헤일 수 없고 참으로 다양한 이름에 놀랍기만 하여
음식을 준비하는 어르신들께 여쭈어 몇 가지 이름을 귀동냥하니,
광쟁이는 강낭콩을 말하고 능쟁이는 명아주나물을 일컫고
반대기는 조청에 묻힌 콩이며 옥수수를 말하며,
들어도들어도 알 수 없는 이름도 많구나...
하나하나 맛을 보는 입에 들어가는 옛날의 어렵게 살던 시절의 이러한 음식들은
여느 지방의 맛갈스런 미각과는 거리가 멀다 하겠으나,
날이 갈 수록 몸에 좋은 성분들이 과학적으로도 밝혀지매
지금에 와서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 할 수 있겠고,
하나를 만들려 해도 며칠 아니면 몇 달을 걸려야 하는 이러한 음식들이야말로
진정한 슬로우 푸드라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슬로우 시티에는 슬로우 푸드가 따르고
사람들도 세월을 잊고 천천히 살아간다.
비오는 날씨에 천막을 날리는 세찬 바람마저 불어 어찌 할까 하는 우려도
온 동네가 하나된 뜨거운 열기는 막지 못 하여 준비한 음식은 이내 동이나고,
때를 맞추어 겨울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자전거의 행진은
벚꽃이 만개한 강변을 따라 유유하다.
여느 축제처럼 상인들의 잔치가 아닌 마을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치루어진 행사라
더욱 뜻깊다 할 수 있겠고,
이틀을 수고한 잔치를 끝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금년농사 또한 풍년이라...
첫댓글 메밀전병 먹고 싶어요~~~~
사진이라도 올릴끄나...ㅎ
수수부꾸미 처럼... 반 접어서
속에 맛있는 팥소 넣으면...으와...맛있겠다 ㅎ ㅎ ㅎ
맛있고말고요...
어제는 그 부꾸미 한 접시와 메밀국죽 한 그릇,
그리고 여러가지 떡들로 점심을 들었지요.
(약 좀 올리자...ㅎ)
아고고...쩝 쩝.
정말 먹고 싶어요.....ㅠㅠ
마치 축제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자세히 설명을 해주셔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빠른 변화가 불과 40년전이거만 우리는 먼 옛날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 하네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선에서 살아보니 말씀대로 사십년 전의 생활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듯 하다는...
글을 참 잘쓰셔서 안가봐도 보고온느낌이 듭니다 나전'이라는 마을 이름이 그런듯이 있어군요,감사합니다.
한자로 羅田이라 쓰지요.
축제장 모습을 상세하게 표현해주셔서 마치 다녀온 기분입니다.
향토음식 만드시느라 주민들 분주하셨고 외지에서 축제기간 방문하신분들도
향토음식에 만족하셨으리라 믿어집니다.
금년행사가 매 년 이어져 고장을 알리는 홍보효과와 토속음식을 전래, 보급하는
행사장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천 중 마을 주민 모든분께서 수고 많으셨네요.
쏟아지는 비와 강풍에 모두들 고생들을 했지요. 존경스럽다는...
며칠전 전철을 타려 서있는데 정선 토속음식축제라고 눈에 들어왔어요 이번주에 못가보면 끝이네 아쉬움이 있었는데..날씨도 좋지 않았는데 고생 많이 하셨네요
작은 시골마을의 축제 소식이 멀리까지 알려졌군요. 내년에도 열립니다.
아름다운 도시에 아름다운 삶들의 잔치가 열였었네여. 여기가 카나다라 가보지는 봇하지만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오드래요. ㅎ
정선 참 ㅡ좋은 곳입니다.
예전엔 비행기재 넘어서 다녔는데 ~~
터널이 뻥 뚫려서~~~
미탄으로 가는 길, 비행기재를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잔치에 다녀 온 저로서는 너무나 매끄러운 글 솜씨에 딱히 할 말이 없네요.
아, 정선에 오셨군요. 반갑네요...
아~유~ 가보고싶고 먹어보고싶고~ 왜 정선에만 그 재미있는일이 있는걸까요.
울아들 군대보내놓고 2박3일 정선에가리라...
재미있다고 생각을 하니 그런가봅니다. ㅎ
울방장님은 어쩜 글을 이케도 맛깔나게 쓰셨는지 마치 축제에 제가 다녀온듯 합니다.
어린시절 산골에서 먹기 싫어하던 음식도 지금은 별식중에 별식으로
각광 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좋은 세상이지요.
말씀대로 우리는 참으로 좋은 세상에 삽니다.
마음먹기 따라 한없이 편하게도 살 수 있는...
ㅎㅎ 일요일날 들렀지여,, 강원도 다녀오는길에 ㅎㅎㅎ
넘 정겨웠어여 벗꽃도 강변에 피고,,ㅎㅎㅎ
다녀가셨다니 반갑네요. 다음에도 오세여~
축제는 쾌청한 날씨라야 최고인데
하필 그때 사 말고 비가 내렸습니다.
하느님도 정선의 토속음식축제의
‘가수기,가시레’ 등의 온갖 웰빙 음식에 시기하셨던가...ㅎㅎ
암튼 비바람 속에서도 무사히 축제를 잘 마치셨다니
금년 가을엔 정선골에 풍년가가 울려 퍼지겠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축제의 열기는 막을 수 없더군요.
금년농사는 풍년을 보장받은 듯...
그많은 음식 이름을 어케 다 기억 하신데여,,,,,머리가 총명,,,하십니다,,,ㅎㅎㅎ
먹고사는 걱정 없는분들이 가서 살면 신선놀음 하겠네요,,,볼거리 구경거리 먹거리 좋아서요,,,
총명하기는요, 늘 갖고 다니는 수첩에 적는기여...ㅎ
애고오~
이몸은 다 필요없시요,
정선장에서 나그네님과 함께 들던 메밀전~!!
열 장만 먹어보고 싶으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치매가 올까봐 이렇게 열심히 공부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