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40대다.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처럼 이 험난한 시대를 함께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40대이다. 1968년 6월에 태어나서 80년을 초등학교 6학년으로 '광주'에서,
87년 6월 항쟁을 재수생으로 '서울'에서 겪은 나름 386 세대이기도 하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던 1996년. 대학 졸업과 함께 운(!)좋게도 대기업 계열사에 취업하여, 항공기 제조
회사에서 희망차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인 3년 차. 전 국민을 혼란으로 밀어 넣은 IMF 소용돌이를
통해 촉발된 사회 전체의 구조 조정을 온몸으로 겪었고, 뒤이어 불어닥친 벤처 열풍을 따라 '신기술'
사업 아이템이라 믿고 잘 다니던 회사를 뛰쳐 나와 조그만 사무실에서 30대의 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러나 눈앞에 왔을 거라 생각했던 '성공'은 멀고 먼 길이 되어갈 때 고민과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1998년생과 2001년생인 두 아이의 아빠로서 어느덧 40대에 접어들면서 초조함은 점점 커져갔다.
변변한 집한칸 마련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우리 부부의 미래가 불투명한 체로 반복된 일상을 살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 캐나다에서 살면서 밖에서 바라 본 대한민국의 모습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40대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이 글의 주제다.
그럼 첫 번째 이야기를 해볼까?
대한민국! '희망'은 있는가?
우리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걸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모습은 희망적인 것 보다 절망에 가까운 게 많은 게 사실이다. 경제는 성장
한다고 하는데 정작 살림살이는 팍팍해져만 가고, 학교는 삭막한 경쟁터로 변해 아이들은 학원과 성적에
내몰리기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기도 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언제 그만 두어야할
지 불안에 떨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 찬 범죄가 날로 증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희망'과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져가며 살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그러면서 다가올 아이들의 미래와 내 자신의 노후를 진지한 고민과 행동 역시 오늘의 40대가 비껴갈 수
없는 '숙제'이다.
우리가 집에 살았던 적이 있을까?
집이란 무엇인가? 한가족이 단란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공간으로 사랑과 정이 넘쳐나던 곳이
우리가 기억하던 집이 아니던가? 아버지의 새벽 밥상에 끼어서 따뜻한 밥 한술에 사랑이 넘치고, 고단한
하루를 편안한 휴식으로 마감하던 곳 말이다.
아침 식사도 거른 체 직장으로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기 바쁘고, 모처럼 만의 휴일도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TV에 붙잡혀 무의미하게 보내는 곳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집을 선택하는 기준도 가족이 먼저가 아니라 집값이 오를 만한 곳을 선택하고, 얼마나 행복한 추억을
남기면서 사느냐 보다는 집값이 얼마나 올랐나가 자랑이고 희망삼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집을 마련하면서 커다란 빚을 지고, 고스란히 그 빚에 허덕이기도 한다.
그리고는 집값이 오르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이라 믿고 산다.
그러나 기억하자. 2018년이면 우리나라의 인구 수는 정점에 다다르게 되고, 그 이후로는 점점 감소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둔화된 경제 성장율과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결정될 집값은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집값에 대한 환상을 치우고 집에 허덕이지 말고 집에서 살자.
고용없는 성장
국가 경제의 발전은 국민생활의 성장을 동반해왔다. 아버지 세대들은 고성장을 통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그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60~80년 대에 겪었던
고성장을 다시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규모가 커졌으며 수출만으로 경제 성장율을 끌어올리던 시대와는 환경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의 경제 성장율은 신규 인력 창출 효과가 거의 없는 대기업 위주의 무역 수지 흑자로 국민 대다수의 삶과는 별로 상관없는 '빈익빈 부익부' 성장이다. 거의 매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율을 증가하고
있으나 일자리는 그만큼 늘어나고 있지 않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대기업을 쪼은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국제 경쟁력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끝없는 구조조정으로 인력 구조를 최소화하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도 고용 사정은 나아질 것 같지는 않고, '취업'은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 되어 질 것기며, 이런
고민은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야 할 시점까지도 개선될 여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 교육의 실종
교육은 사회 진출과 자아 실현을 위한 지식을 쌓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어떠한가?
우리 세대가 다녔던 학교와 비교해 보자.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학문을 배우고,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곳이어야 할 학교가 학원 수업에 지친 아이들의 휴식터로 전락한 지 않았는가? 이거야 말로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갈수록 학원 수업은 대학 진학의 필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명문학원 수업을 위한 학원비도 만만치 않다. 수학, 영어 등 과목당 한달 학원비가 일인당 최저 생계비에
육박하고 있지만, 옆 집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보내지 못하면 도무지 불안해서 참지 못하는 것이 부모님들이
겪는 사교육의 현실이다.
아이가 공부에 지쳐 정작 필요할 육체적 발달이나 사고력 개발은 뒷전인 채 학교 등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교육시스템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하나만 생각해보자. 공부가 인생의 전부이던가? 학교 일등이 사회 일등이던가? 행복이 성적순
이던가?
아이들의 미래를 진진하게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주자. 아버지가 되었건 어머니가 되었건
우리 아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을 직접 가르쳐주자.
콩나물 교실에서 시험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어 주는 학원선생님에게 우리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
우리도 늙는다.
은퇴 후의 삶은 더욱 비참하다.
직장 정년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공무원처럼 고용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그렇지만, 일반 기업같이
정년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기업은 정년 나이인 55세는 커녕 50세 만되어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해야 한다. 기업은 매년 인력 구조 조정이니 명예 퇴직이 정기화되고 있지 않는가?
50세에 은퇴를 한다면 앞으로 50~80대를 소일거리없이 보내야한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지하철이나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폐지를 수집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살아왔던 40 여 년의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가야할 40년 남짓이 우리에게는 더욱 힘들고 벅찬
세월이 되어질지 모를 일이다.
인생을 절반 정도 살아온 40대.
그만큼 대한민국의 40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시대가 우리에게
쥐어준 사명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대였고, 아버지 세대가 경제 개발로
대한민국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우리 세대가 민주화 통해 사회의 발전을 이루었다면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왜곡된 사회를 바로 잡고, 개발 도상국을 벗어난 선진국으로 만들고, 아이들에게 살만한 대한민국을
넘겨 주어야할 게 지금 우리 시대에게 주어진 과제이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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